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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Mar 07. 2024

240307 나가서 시간을 좀 벌어야지 싶다.

몰랐다. 이런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연말부터 쉬었던 피아노 학원을 다시 다니기로 했다. 예전 학원은 너무 멀고 비싸서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어제 첫 수업이 있었다. 수업은 밤 아홉 시 반에 시작. 퇴근 후 저녁 한 끼 챙겨먹은 게 다인데, 벌써 학원에 가야 하는 시각이었다. 휴. 퇴근하고 겨우 집에 왔는데 또 나가야 한다니, 귀찮은 마음이 앞섰다. 걷기엔 좀 멀고 차로 가기엔 애매한 거리, 어떡할지 고민하다 주차할 데도 마땅치 않아 뚜벅이로 출발했다.


몇 주 전에 상담 차 방문한 적이 있지만 학원은 여전히 낯설었다. 이 학원은 합주를 메인으로 하는 곳이다. 들어서면 작은 라운지 공간이 있는데, 각자의 악기를 챙겨온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딱 봐도 안 친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이 야심한 밤에 음악을 하려고 모였다니 진짜 멋있잖아! 속으로 생각하며 피아노 연습실에 들어갔다. 파이팅넘치고 쉽게 설명해 주는 선생님 덕분에 첫 수업을 재미있게 끝냈다. 오랜만에 건반을 누르는 감각도 좋았다. 


역시 귀찮아도 하고 나면 뿌듯해지는걸, 수업을 마치고 한 생각이다. 빠른 길로 가로질러 집에 갈 수도 있지만 일부러 호수길로 돌아갔다. 선생님이 연습하라고 한 곡을 들으면서. 밤 열 시 반인데 호수에 사람이 많았다. 나처럼 그냥 걷는 사람들, 데이트하는 커플, 삼삼오오 또는 혼자서 뛰는 사람들까지.


엊그제 밤에는 일이 있어 집 앞 커피숍에 갔었다. 거기도 사람이 많았다. 수다를 떠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홀로 온 사람들이었다. 책을 보고, 영상을 보고, 다이어리를 쓰고,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하는, 각자의 밤을 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몰랐다. 이런 밤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약속이 없어서 늘 밤이면 집에 머물렀고, 어쩌다 잡힌 약속도 술 약속이 대부분이라 맨정신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면서도 시간이 없다는 말만 입에 달고 살았다. 정말 그랬으니까. 퇴근하고 저녁을 챙기고, 도시락을 싸고, 씻고, 유튜브 좀 보고 나면 잘 시간이었다. 다이어리 좀 써야지, 책 좀 봐야지 하면서도 기운은 안 나고 눕고만 싶었다. 매일 그랬다. 


멋지게 밤을 보내는 몇몇 풍경을 보고 나니 시간도 돈처럼 나가서 벌어야 하는 건가 싶더라.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것도 너무너무 좋지만, 나의 경우엔 쉬기만 하면 시간이 더 없어지는 것 같다. 나가서 무언가를 배우고, 산책하고, 커피숍에서 사람 구경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좀 벌어야지 싶다. 


오늘 밤에도 기필코 나가리. 막상 집에 가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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