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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Apr 15. 2024

240415_퇴사하기로 결심했다.

카누가 다 떨어질 때까지만.

마지막 글을 쓰고 한 달 정도 지났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몇 군데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다. 그중 관심 분야에 경력도 있어 자신만만했던 회사에 서류부터 탈락했다. 충격이었다. 예전엔 보통 면접까지는 쉽게 갔으니까. 또 원티드에서 처음 확인했을 때는 서류 통과라고 떴던지라 오후에 탈락으로 바뀐 걸 확인하고는 마음이 울적했다. 일하다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 뒤로도 줄줄이 서류에서 탈락했는데, 이제는 타격감도 없다.


퇴근도 귀찮던 어느 날엔 남아서 이력서를 정리했다. 쎄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니 팀장이 음흉하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나를 데리고 나가서는 그가 말했다. 너무 급하게 준비하지 말라고, 그러다 체한다고. 재작년에 그만두겠다고 말할 땐, 두 시간 넘게 붙잡고 면담을 했던 그도 이제는 나를 붙잡지 않는다.


몰래 면접도 봤다. 오랜만에 보는 면접이라 긴장된다고 했더니, 음악을 틀어주던 면접관. 신선했다. 업무 이야기를 듣고는 불러도 안 가야지 했는데, 그가 먼저 나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괜히 내가 진 것 같더라.


회사는 여러모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먼저 사무실에 새로운 문물이 들어왔다. 바로 폰부스. 동료가 서치해서 폰부스 금액을 알려줬는데, 올해 내가 올린 연봉보다 훨씬 비쌌다. 사람들이 잘 이용하면 좋을 텐데, 하루에 이용 빈도는 세 번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일로도 괴로웠다. 매출이 떨어진 이유를 보고하라고 한 것.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회의 직전에 취소가 되었다. 전략을 추가해서 가지고 오란다. 전략을 세우는 데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남짓,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뽑는 날에 출근해서 전략을 정리했다. 이제는 회사에서 마니또 이벤트를 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상대방한테 만원 이하의 선물을 하라고 하는데, 본사 직원이 백 명 정도니까 총 백만 원이 든다. 물론 자부담이다.


지난 주말,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누워 있었다. 핑계를 대자면 생리통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담배도 안 폈으면 말 다했지 뭐. 평소에 보지도 않던 쇼츠와 영화 리뷰 콘텐츠를 보며 시간을 흘러 보냈다. 어제 저녁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도시락을 챙겼다. 결국 하는 일이 도시락을 싸며 출근을 준비하는 일이라니.


오늘, 출근은 했지만 여전히 컨디션이 안 좋다.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 있지만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퇴사와 이직을 하염없이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곳에 출근해야 할까, 막막하고 싫고 불안하다.


그러다 커피 한 잔 타 먹을 생각에 카누를 집으며 결심했다. 기한을 정하기로. 기한 내 최선을 다해 이직을 준비하고, 안 되면 그냥 퇴사하기로. 그 기한은 카누가 다 떨어지는 그때까지. 세어보니 예순여섯 개의 카누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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