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으면 늦는 대로 할 일을 함으로써 얻는 것들이 생기더라.
월요일. 눈을 뜨니 평소보다 방 안이 밝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여덟시 반.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지각이다. 새벽에 분명 알람을 들었는데 왜 다시 침대에 누운 거지. 내가 한심하다. 이왕 늦은 거 몸도 안 좋은데 하루 쉴까,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다 몸을 일으켰다.
약속 시간보다는 적어도 십분 정도는 먼저 나와야 하고, 상대방이 늦는 건 괜찮아도 내가 늦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사람. 늦잠을 자서 지각할 것 같으면 회사도 학교도 째는 게 차라리 속 편한 사람, 그러고는 시간 약속을 못 지킨 것에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받아 짜증이 나고 우울해지는 사람, 바로 나다. 그날 아침도 그랬다. 늦잠 잔 것에 짜증이 너무 났고, 몸이 안 좋기는 했지만.. 시간을 확인 하자마자 한 생각이 오늘 그냥 회사 쉴까였다.
그렇다면 시간 약속을 안 하면 좋을 텐데, 사회생활하며 그럴 수가 있나. 게다가 나는 나 자신과도 시간 약속을 많이 한다. 그중 기상에 대한 시간 약속은 매일매일 하고, 매일 같이 어긴다. 그러면 또 이 하루를 통으로 쨀까 고민하고, 종일 짜증이 가득 차 있다. 무기력 해져서 하루 종일 잔다. 허리가 아파 누워있지 못할 지경이 될 때까지 침대에서 개긴다. 그러면 밤에 또 잠이 안 온다. 내일은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불안하다. 늦게까지 잠 못 들고, 늦잠 자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답은 둘 중 하나다. 시간 약속을 절대적으로 지키거나 시간 약속을 하지 않거나. 하지만 나는 어느 하나도 하지 못했다. 다행인 건 시간 약속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변한 것이다. 그게 뭐냐면...시간 약속에 덜 연연해 하는 거다.
다시 말하면 늦으면 늦는 대로 할 일을 하는 거다. 지각이 뻔하더라도 회사에 간다. 한 타임 수업을 놓치더라도 수업을 들으러 간다. 예상한 시간대를 벗어나더라도 운동하러 나간다. 단순한 것 같은데, 나는 이게 어렵고 힘들었다. (사실 지금도 힘들어.) 깨져 버린 리듬과 시간 속에서 할 일은 할 일대로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하니 늦으면 늦는 대로 할 일을 함으로써 얻는 것들이 생기더라. 이미 늦었지만 할 일을 함으로써 내 생활 리듬의 주체성을 다시 나로 돌리겠다는 의지가 생겼고 이렇게 그냥 하면 될 일인데 뭣 하러 시간 따위에 스트레스를 받지 하는 깨달음이 있었으며 어쩌면 중요한 건 시간 약속이 아니라 늦어도 그냥 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늦잠 잔 월요일, 지각은 가까스로 면했다. 몸이 안 좋아 하루 종일 처지는 느낌이긴 했으나 밤에 산책을 하니 좀 괜찮아졌다. 왠지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늦어도 그냥 하는 마음이고, 그렇게 하루를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