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마시고 나니 집에 왔구나 하는 감각이 살아났다.
뜨거운 여름, 현관문을 열자마자 책가방을 던진다. 가방 때문에 등이 땀으로 축축하다. 저벅저벅 냉장고로 직행한다. 냉장고 문을 열고, 음료 칸에서 그것을 꺼낸다. 마구 흔들어서 가라앉아 있던 것들을 섞고, 유리잔에 한가득 따라낸다. 선풍기 바람을 쐬며 이것을 벌컥벌컥 마시면 차츰차츰 더위는 가신다. 그제야 집에 돌아왔다는 감각이 살아났다.
어릴 적 여름철이면 냉장고에 항상 그것이 있었다. 바로 엄마표 수제 토마토 주스다. 엄마는 매 여름마다 강판에 토마토를 갈아 주스를 만들었다. 토마토 주스를 사 먹을 땐 엄마의 토마토 주스 맛이 안 난다. 엄마의 주스엔 꿀과 요구르트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로 단맛과 새콤한 맛을 낸다.
한동안 이 맛을 잊고 지냈다는 걸 깨달은 건 토마토 축제에서였다. 토마토 축제니까 토마토로 만든 다양한 음식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웬걸 토마토 주스뿐이었다. 엄마의 토마토 주스가 떠올라 한 잔 사서 마셨는데 그냥 달고 밍밍했다.
이제는 엄마를 대신해 남편이 토마토 주스를 만든다. 남편에게 엄마의 토마토 주스 이야기를 했더니 이제는 자기가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엄마처럼 강판에 토마토를 갈지는 않는 대신 먹기 좋게 때마다 한 잔씩 만들어 준다.
덥고 습한 여름, 집에 오자마자 가방과 몸을 내려놓는다. 온몸이 축 처진다. 저벅저벅 화장실로 가 손발을 씻고 나온다. 테이블 위에 토마토 주스가 한 잔 놓여있다. 선풍기 바람을 쐬며 벌컥벌컥 마시면 차츰차츰 오늘의 수고가 가신다. 새콤 달콤한 그것을 마시고 나니 집에 왔구나 하는 감각이 살아난다.
퇴근 후 집에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남편은 토마토 주스를 만든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다홍빛 토마토 주스를 건넨다. 그렇게 토마토 주스는 여름철 우리집 웰컴 드링크가 되어 하루의 수고를 위로하고, 집에 돌아온 나를 맞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