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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송날송 Dec 05. 2023

여자가 테니스 동호회에 가입하면 생기는 일.

나는 바람에 흔들리기 좋은 갈대였다

1년 이상 테니스 레슨만 받던 나는 동호회라는 곳에 가고 싶어졌다. 더 이상 볼머신이 아닌 사람과 테니스를 치고 싶다는 욕구가 들기도 했고, 동호회에 가입해야 실력도 더 늘 수 있다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도 부담스러웠고, 나같은 테린이는 거부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1회성 참여조차 부담스러웠다. 한참을 고민하다 무슨 용기에서 였는지 혼자 게스트를 신청하게 되었다.


첫 동호회는 3040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동호회였다. 그곳에서는 나를 격하게 환영해주었다. 허둥지둥 공을 받다가 테니스를 치다가 자빠지기 까지 했건만 첫날부터 가입 권유를 받았다. 어디에서 나를 또 받아주겠냐 싶어서 나를 환영해준 그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다. 아저씨와 오빠 사이 그 어딘가의 클럽원들은 술자리를 갖는 걸 좋아했고, 빼지 않고 참석했던 나는 인기가 좋았다.


클럽의 미모 담당이라는 여자 회원들에게 의례 던지곤 하는 그런 말들에 취했고, 운동 후 술자리에서 나를 쉽게 보고 다가오는 남자들의 호감 표현에도 불나방처럼 좋다고 달려들었다.


첫 동호회가 식상해질 때쯤 이곳저곳 게스트를 신청해서 돌아다녔다. 여러 동호회를 돌아다니며 휴대폰에 남자들의 연락처가 쌓여갔고 아는 남사친들도 많아졌다. 구력이 높은 오빠가 매일 연락하며 코트 예약부터 라켓 스트링까지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챙겨주었고, 테니스도 가르쳐 주었다. 여왕벌이 된 것 마냥 기분이 우쭐해졌다.


그러던 와중 두번째 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정착하게 되었다. 두번째 동호회에서 외모가 매력적이었고, 연하인 남자친구를 만났다. 30대에 연하남을 사귄다니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이 아니던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같은 연하남과 연애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TV 드라마가 유행하고 있을 때라 드라마 주인공이 된 마냥 어깨가 으쓱해졌고, 자연스럽게 나는 테니스 동호회 예찬론자가 되었다.


어떤 모임을 나가도 존재감이 별로 없던 내가 테니스 모임만 나가면 인싸에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남자가 절대 다수인 운동 동호회 특성상 여자들이 가면 인기를 얻는 건 식은 죽 먹기인데, 이 본질에 대해 잘 몰라서 내가 정말 잘 나서 그런가 보다 착각 속에 살았다.


나는 인기에 취해 있었고, 바람에 흔들리기 좋은 갈대였다.


내가 결혼한 후에 이런 상황에 놓였었다면 나는 분명 바람난 유부녀가 되었을 것이다. 조금만 잘해주는 '잘생기고 자극적인' 남자에게는 금방 사랑에 빠져 정신을 못 차렸다. 반면 쉽게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들'의 호의를 너무 당연시 여겼다. 첫 동호회 활동을 할 당시에는 진지하게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에게도 소홀해져 인생에 다시 없을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던진 적도 있다.


여자들에게 운동 동호회에서 남자 만나기는 정말 쉽다. 그런데 몇 번의 썸과 연애를 경험하고 나서 남은 것은 구력과 허무함밖에 없는 것 같다. 동호회에서 만난 남자들과 쌓은 추억은 테니스와 술 그 뿐이다. 32살에 다시 솔로인 나는 여러 남자가 아닌 단 한명을 만나고 싶다. 함께 둘만의 추억을 만들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남자. 그러기 위해서는 갈대같은 나를 바로잡고, 단단한 내가 되어야 겠다. 구력이 쌓인 만큼 이제는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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