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심방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민아 Jan 02. 2019

먹을 갈면서

오랜만에 벼루에 먹을 갈았다.     

 

긴 세월, 오십여 년 동안 서예 인생을 살아오면서 벼루와 먹은 평생 나와 함께 공생한 동반자였다. 작업실에는 종이, 붓, 먹, 벼루의 문방사우가 있어 늘 그들과 시간을 함께한다. 많은 서예 공모전과 그룹 전시회가 반복되면서 붓은 마를 새가 없었고 벼루에는 항상 먹물이 가득했다. ‘연습이 선생님’이라는 말이 있듯이, 붓글씨 공부는 끊임없는 연습으로 습득해야만 하기 때문에 필요한 양의 먹물이 항상 갖춰져 있어야 한다. 파지에 연습을 할 때나 고급지에 집중하여 작품을 할 때나 먹물의 농도는 별반 다르지 않기에 먹물의 질 또한 일정해야 한다. 


서예는 종이에 붓이 밀착할 때 적당량의 맑고 부드러운 먹물이 매개되어야만 생동한 기운이 발하여 좋은 글씨가 나온다. 발묵에 따라 먹색과 농담이 달라지기 때문에 벼루에 먹을 가는 작업은 신중해야만 한다. 붓을 들기 전에는 언제나 조용히 앉아 손에 먹을 쥐고 심연을 가다듬으며 명상하듯 벼루에 먹을 간다. 그 과정은 작품 제작 이전에 심신을 정화하고 서도의 깊은 뜻을 음미하는 필수 의례이기도 하다. ‘먹을 갈 때는 병자처럼, 글씨를 쓸 때는 장사처럼’이라는 말처럼, 최대한 손의 힘을 덜고 오랜 시간 먹을 갈아야 좋은 먹물이 만들어진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점 먹물의 빛깔이 은은하게 변하고 독특한 먹향이 풍겨 나온다. 이에 나의 마음 또한 한껏 순화되어 먹빛처럼 차분히 가라앉는다. 먹물의 색과 농도가 적당한 비율이 되어가면 준비된 화선지를 펼치고 글씨 쓸 자세를 갖춘다. 붓에 먹물을 축여 하얀 화선지에 정교하게 움직여가노라면 글씨와 먹색이 균형을 이루어 멋진 서체의 작품이 탄생한다. 정성을 담은 먹물과 나만의 자유로운 운필이 조화된 작품이 완성에 이르면 고난의 시간도 잊게 된다.     

 

추사 선생은 10개의 벼루가 구멍이 날 때까지 먹을 갈았다고 한다. 이처럼 정신수양의 의미가 강했던 서예의 기본 작업인 먹 가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먹 가는 기계’라는 이름의 새로운 도구가 나오면서부터이다. 기계 손잡이에 먹을 부착하고 회전 버튼을 누르면 윙윙 돌아가며 짧은 시간 안에 적당한 농도의 먹물을 만들어 준다. 먹을 부여잡고 적게는 몇십 분, 많게는 몇 시간 동안 힘들게 팔을 돌려야 하는 서예인의 노고를 말끔히 덜어주니 참으로 고마운 존재였다. 


이 기계 덕분에 시간을 덤으로 얻은 많은 서예인들은 쾌재를 부르며 연습과 작품에 공을 더 들일 수 있었다. 곧이어 갈린 먹물을 튜브에 담은 상품이 출시되면서 서예인의 성수와도 같은 먹물을 화방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 품질은 직접 간 먹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나빴지만 바쁜 일상 속 시간을 쪼개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나로서는 그나마도 기특한 상품이었다. 그 기능성 먹물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화선지에 펼쳐질 붓글씨의 모습을 상상하며 먹을 갈던 초창기 서예 공부 시절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과거 손에 의한 장시간 노동의 결과물로 얻었던 귀한 재료들이 이제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상품이 되어 장바구니 안으로 들어간다. 심지어 직접 제품을 볼 필요도 없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 버튼만 누르면 순식간에 상자에 담겨 배달되기도 한다. 제품 생산 방식이 한층 다원화되고 물류 네트워크가 촘촘해지면서 이제는 기다림 자체가 무의미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비록 요즘 무한 속도경쟁에 지친 마음의 공허함을 달래고자 느림과 성찰을 중시하는 풍속이 생겨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효율과 편리함을 쫓는 변화의 속도는 가파르게 상승 중인 것 같다. 


아무리 어제와 오늘이 확연히 다른 세상일 만큼 변하고는 있지만, 곰삭은 작가의 경험을 양분으로 훌륭한 작품이 제련되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단 한 번의 붓질로 우주를 완성하는 서예는 그래서 더욱 붓을 들기 전 천천히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글씨가 안 나온다고 자신을 닦달하거나 어서 대가의 서체에 도달하려고 서두르다 보면 결코 좋은 작품이 나올 리 없다. 남들보다 빨리 가려는 욕심에 바깥으로 뛰어들어 휩쓸리기보다는 내면의 울림에 애정을 품고 집중하는 것이 서도의 요체가 이닌가 한다.  

    

 내가 서예 공부에 입문한 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꿈꾸어온 나의 모습이 있다.  고운 한복을 정갈하게 갖춰 입은 대갓집 안방마님이 되어 천정 높은 널따란 대청마루에 고요히 앉아 찬찬히 벼루에 먹을 갈고 하얀 화선지에 내가 좋아하는 시 한수를 붓글씨로 쓰는 모습이었다. 그 작품에는 나의 개성과 깊은 소양이 어우러져 고색창연 (古色蒼然)한 예스러운 정취가 담긴다. 학문이 깊고 고매한 옛 선비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그 우아하고 품위 있는 자태를 따라 하고 싶었다. 그렇듯 멋지게 폼을 내며 글씨를 쓰는 것이 서예인의 참모습이라고 흠모해 왔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그 상상의 장면이 떠나지 않고 있다. 


 고혈을 짜내는 작품 제작 과정을 한바탕 겪고 나면 고아함은 온데간데없이 제멋대로 널브러진 연습지와 마음속의 허탈함만 남는다. 과연 다음번에도 이 고통스러운 창작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면서도, 어린 시절부터 떠올렸던 정갈한 서예인의 자태를 기억하며 다시금 먹과 벼루를 추스른다. 여태껏 그저 흉내만 내느라 그 많은 세월 붓을 잡고 지낸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후회가 밀려온다.     

 

지금도 옛 고향집 사랑채 마루에서 엄숙한 표정으로 붓글씨 쓰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며 막연한 감상에 젖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폭에 담은 무지갯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