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유후인 온천 마을에서.

엄마의 환한 웃음

by 꿈꾸는 앨리스

하이고 살찌다. 살찌다~

오래된 일본식 정원의 작은 연못 속 잉어를 보며 엄마는 말했다.

풀벌레 소리 들리는 시골의 고즈넉한 밤 이 깊어갔다.


일본식 정원의 잉어.




양팔을 휘휘 저으며 아침 산책하는 엄마.

일본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엄마를 모시고 일본 식 전통여관(료칸)에 가기로 했다. 나의 장롱 일본어 면허증을 실컷 발휘하기 위해 씩씩한 일본어로 기차표도 길 묻기도 척! 척! 성공했다. 우리 엄마는 코리안 마미답게 칭찬이나 감정표현이 잘 없었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외국어로 말하면 왠지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더 뽐냈다.




일본의 온천마을 유후인에 도착했다. 도착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일본인 주인에게 픽업을 위해 전화를 해야 했다. 휴..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유후인 에끼(역)라고 했으니깐 오긴 올 것이다.


도착해서는 안주인 분이 넓은 집을 안내하며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이용 시간은 언제이며, 주의사항은 무언지에 대해 일본어로 설명해 주셨다. 눈으로만 봐도 대충 알 것 같았고 안내문을 따로 주기 때문에 나중에 떠듬떠듬 읽어도 될 일이었다. 이용시간은 숫자일 테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시골이고 일본 현지인들도 많이 오는 곳이라 영어로 고객 맞춤의 서비스를 기대하긴 어려웠지만 난 그 점이 좋았다.


룸이 업그레이드가 됐다.

1박에 1인당 50~80만 원도 호가하는 높은 단가를 자랑했던 료칸으로 가장 작은 방으로 예약을 했는데 마침 객실이 비어있다며 룸을 업그레이드받았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 효심? 덕분일까 스타트부터 기분이 좋았다.


엄마와 유카타를 나눠 입고 또각또각 일본식 나막신을 신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저녁에는 안내받은 대로 대중 노천탕에서 목욕을 했는데 끝나고 나올 때를 위해 미리 얼음물에 담가놓은 시원한 차와 흰 병우유가 인상 깊었다. 우유는 너무 진하고 비려서 다 먹지 못했지만 만화 플란다스의 개 '파트라슈'가 배달하는 그 우유가 떠올라서 재밌었다.


차가운 물에 담근 병 우유.




눈이 내리는 노천탕엔 엄마와 나 외 아무도 없었다. 어두컴컴한 밤이었지만 뜨듯한 온천물에 몸을 녹이니 마음까지 노곤히 녹아내렸다. 엄마는 어디 가서 이런 호사를 누리겠냐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마치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그때 처음 보았다. 내 나이 30대 초반이었으니 30년 평생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내가 본 엄마의 모습은 항상 의무와 굳건함에 짓눌린 모습이었기에.


강한 엄마였다.

어릴 때는 동생들 건사하고 결혼해서는 시동생들, 그다음엔 자식들. 엄마는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유후인 노천탕의 아침



식사 또한 훌륭했다. 카이세키 요리는 나도 처음 먹어 봤는데 방안까지 요리의 향연을 펼쳤다.

엄마는 깜짝 놀라 아이고. 그만 가져 오라 해라 아깝다. 말했다.

"엄마, 돈 많이 냈는데 다 먹고 가야지!"


가이세키 요리의 향연.


뜨끈하게 온천도 하고 밥도 많이 먹었겠다,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 티브이를 보며 엄마와 차를 마셨다. 곧바로 잠에 들었고 때는 새벽으로 다음 날로 넘어가고 있었다..




"씨발놈...!"




갑자기 욕이 들려왔다. 으잉? 여기 한국말하는 사람은 엄마와 나 둘 뿐인데.

범인은 엄마였다.

깜짝 놀라 엄마!! 했더니 엄마가 겸연쩍어하며 "안 잤나~"

한다.

"이 새벽에 왜" 그것도 웬 욕을..........

이불이 폭신한 침구.

렇게 시작된 엄마의 한풀이 한마당.

그 화젯거리는 아빠의 식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응어리가 많았다. 너무나 행복한 시간에도 불쑥불쑥 옛 기억들이 찾아왔고 굳건한 엄마도 어쩔 도리가 없이 허물어져서 다시금 그때를 떠올리며 분해했다.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기도 하고 맞장구를 치기도 했는데. 마음으로 우리 엄마도 언제 편안하게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가지런히 정리된 현관.


우리 엄마는 힘들게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태가 참 곱다.

그리고 마음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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