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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May 23. 2024

다들 잘 살고 있는 걸까

세 끼 밥먹는 거 말고 대체 뭐가 중요한 거죠

지난 딸 생일에 남편과 싸웠다. 둘째의 8살 생일을 맞이해 화창한 봄날. 축복을 해줘도 모자란 날에.

남편과 그렇게 싸우고 온종일 밖을 걸어 다녔다. 공원에 멍 때리고 있으니 공원에 앉아 놀고 있는 

커플들과 부부, 아이들의 모습을 하염없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같으면 풍경 속에 내 아이 외에는

관심이 없었을 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날은 그림 밖에 나와서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묘했다. 

그렇다고 공원에 나 혼자 있었기 때문에 슬프거나 외롭다거나 짜증 났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날은 그냥 궁금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이.

지금까지 내 영역을 지키느라 보지도 못했던 다른 사람의 모습들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걸까? 

적어도 평화로운 주말 오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늘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비싼 놀이공원은 아니지만 지루한 오후를 집 밖에서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그 와중에 어쩌면 나는 홀로 괜찮지 못한 상태로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불만을 잔뜩 가지고.

어쩌면 내가 그 시간에 겪었던 40대의 꺾어지는 듯한 심각하고 지독한 마음의 고통은 남들에겐 없을까. 

아니면 다들 고통을 묵인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걸까. 일면식도 없는 그들이지만 문득 묻고 싶어졌다.

다들 잘 살고 계신 건가요.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고통을 이겨내고 사는 것도 아니고. 그 원인을 캐거나 고치고 사는 것도

아니지만 막연히 아는 그 묵직한 그 고통을 마치 없는 듯이 못 본 척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는 걸.

할 말이 없었다. 내 코도 못 푸는 주제에 타인에 대한 연민이라니..

 


어릴 때 어른들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라고 말하시는 걸 들은 적 있다. 그 말의 깊은 뜻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인데, 이 말의 뜻은 사실 네가 그 나이에 겪는 문제를 나도 겪고 그 사람도 같이 겪는다는 뜻이다. 사실 다들 안 그런 듯 보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겪게 되는 고통이나 질병 외로운 감정,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부정적인 감정들을 대부분 다 똑같이 거쳐간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우리는 어른이라서'. 최대한 티를 안 내고 자연스럽게 참고 웃으며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그렇게 배워왔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고 그렇게 스스로와 타인에게 말하면서 살아왔던 것. 뭐 말 그대로 이유는 없다. 그렇게 윗사람한테 배워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원에서 엄마 역할을 땡땡이치고 무작정 앉아있는 나는 '어쩌다 어른'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사소한' 이유로 더 이상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없어 그곳에 앉아있고, 남편에 대한 분노를 참지도 못하고 딸 생일에 철부지처럼 화딱지나 내고 다니니 말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그런 감정의 제어가 터무니없이 부당하게 느껴질 만큼 내 감정은 상승과 하강 곡선을 오가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인생의 한 지점을 향해 내려찍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이게 중년이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나는 역할이 규정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감정통을 느끼는 나는 나였다. 아이들이 성장통을 겪어가며 기분의 상승곡선과 하강곡선을 겪듯 나는 나이 들어가면서 똑같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이다. 우습게도 내 옆에 있는 내 남편이 나랑 같은 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여곡절과 우당탕탕하는 감정을 뒤얽고 싸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인생 앞에 두 철부지이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몰랐다.


10대에는 나보다 몇 년 앞선 오빠가 항상 인생교과서였다. 그것은 보고 배울 점이 있어서라는 뜻이라기보다

오빠가 겪는 문제를 몇 년 후에 내가 겪는 '반면교사'의 의미로 새겼다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나와 상황이 

다르고 성별도 다르니 같은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의 예측의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이 맞다.

그건 40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결혼 10년 차를 맞았던 그의 우당탕탕한 부모 인생 고민이 문득 나에게 다가와 있는 걸 본다. 단지 그때는 시점이 늦었을 뿐. 나는 내 형제가 겪은 그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나는 문제가 없어. 우리 가족은 항상 행복하고 항상 단합이 잘돼. 이렇게만 항상 자신 있어할 일이 아니라

생각하니 왠지 김이 빠졌다. 가족을 이룬 지 10년 차에 좋은 일만큼이나 맥이 빠져가고 있는지 몰랐다.

서투른 도끼질만 알았지 우리 집 기둥뿌리 썩는 줄은 모른다고,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좋은 가족과 결혼생활을 위해 나는 노력하며 사는가? 

이 질문이 머릿속에 들자 생각은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을 안정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것에

익숙하고 더 이상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앉은자리가 그나마

제일 살만하다는 것에 갇혀 더 이상 바꾸고 싶지 않은 상태로 살고 있었다. 왜? 이 나이에 더 이상 깨지고

상처받는 것은 감당하기 힘드니까. 복잡하고 아픈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힘든 일이니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웃으면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가끔은 못처럼 튀어나온 진실에 발이 찔리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8년 전 장미꽃이 피었던 5월의 출산일이 기쁘면서도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다는 게 문득 떠올랐다. 아이의 출산일이 행복이기도 하지만 엄마에게는 죽을 만큼 아픈 시간이었기도 했다는 걸.

장미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빨간색이 피의 색이기도 하다는 걸.

그보다 더 먼 10년 전 봄날에 내 첫 아이는 뱃속에서 곧 태어날 탄생을 맞이하고 있었고, 뉴스에서는 수학여행 떠난 고등학생들의 슬픈 사고소식이 들려왔다는 걸. 나는 그때 무슨 생각으로 이 험난한 세상에 아이를 낳겠다고 자신했던가.

어쩌면 내가 여기에 남아있는 것은 그저 운에 불과 한 건지도 모른다. 내 아이가 옆에 있는 것도. 약해빠진 내가 아무런 마취도 없이 이렇다가 진짜 죽겠다 싶은 진통의 순간에 아이를 낳았다는 것도 지나고 보면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앞둔 우리 반은 살 얼음 판 같은 분위기였다. 만약 내가 그날 하루 괜찮았던 하루를 보냈다면 그건 내가 성적이 좋거나 좋은 학생이어서가 아니라, 예민한 반 친구들과 선생님과 안 부딪히고 운 좋게 잘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오늘 상태가 안 좋은 내 친구의 모습이 내일의 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지나친 과신이었다. 친구가 걸린 변비는 곧 내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수면문제나 시험날 컨디션을 망치는 음식사례를 읽으면서 나는 같은 상황을 겪는 사람의 입장을 일말의 동정을 가지면서 지켜보곤 했다. 그것은 내부적으로 특별히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이다. 시험기간에 임박해 똥도 못 싸고 시험도 망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온갖가지 대책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었을 것이다. 당면한 문제가 너무 절박했으니 난 스스로 최악을 피하기 위한 자기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그래도 그 시절이 남긴 교훈은 무엇일까.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불평하고 하루를 운에 맡기는 대신 내가 생각했을 때 제일 가치 있는 것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직장시절을 돌아보면 아침과 점심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오전시간만큼 업무 집중도가 높은 시간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오전시간을 오늘 점심은 뭘로 할까 고민하며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짧은 오전시간에 의미 있는 뭔가를 채워 넣을지는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그나마 바꿀 있는 것은 사실 시간에 하는 집중 해서 하는 업무 자체이고, 밥시간이나 메뉴는 사실 바꿀 있는 선택지가 그렇게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밥시간처럼 피차에 어쩔 없이 해야 할 일에만 점을 찍은 채 나머지 짧은 인생의 선택 부분에 대해서는 무제한으로 풀고 살았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면 기분이 좋았던 것도 밥이었고 잘 못 먹거나 굶은 날에는 짜증이 났다. 그놈의 밥, 밥, 밥..

어김없이 밤에는 잠을 자야 하고 씻어야 하고 남은 시간에는 운동이라도 좀 해야 했다. 하기 싫은 청소, 연락

이런 것도 결국 못 바꾸는 일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도 인생은 늘 거기에 매여 살았다. 어떻게든 편하게 

살려했지만 늘 할 일에 치여 살았다는 것은 인생의 제일 큰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나는 수능날 변비에 걸린 학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 했던 노력만큼이나 인생의 나쁜 경우를 막기 위해서 해야 했을 노력을 안 하고 사람이었다는 후회가 지금에야 든다. 생존을 위한 온갖 잡다한 시간을 지불하고 난 그 약간의 자유분과 선택분을 찾기 위해서 나는 노력하고 살아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지금에야 든다. 단 10분이든 1시간이든. 나를 가치 있게 만들 그 시간을. 과거의 나는 그런 것에 대해 너무 모르고 살았나 보다. 


오늘의 질문: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목표와 지향점은 과연 무엇인가? 아이인가? 가족인가? 나 자신인가? 일인가? 돈인가? 


이미지: 게티 이미지 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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