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돌아왔는데, 뱃 사공이 좀 많습니다.
(이 글에는 많은 양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일단 아이들 관점에서 보러 갈 만한가? 하는 질문에는 디즈니를 좋아하는 초등생이 아주 좋아했다고 답하고
싶다. 어느 정도 좋냐고 하니, 거기에 나오는 노래를 모두 외우고 싶을 정도라고.
디즈니에 관심이 없는 둘째도 재밌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롤러코스터와 바이킹을 좋아하는 아이입장에서
마치 아마존 익스프레스를 탄 듯 한 시각적 효과를 느껴서 그런 듯하다. 거기에 영화 러닝타임 내내 좋아하는 디즈니적 요소들 (귀여운 동물, 바다, 모험, 노래, 이야기, 공주님 등등)를 꾹꾹 눌러 담은 선물 박스 같은 작품이다. 겨울왕국 시리즈 이후에 블록버스터 급 디즈니 영화가 적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아이가 중학생이상이라면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이끄는 오락적 매력은 그 자체로도 즐겁지만, 영화의 아래를 구성하는 여러 문화적 요소들에 대한
스토리 텔링이 영화를 풍부하게 만드는 하나의 축이다. 모아나의 이야기의 기반인 폴리네시아 문화권에 대한
다양한 요소들이 담겨있어 찾아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를 느꼈다. 위키 백과에 따르면 이들이 인근의 섬에 자리 잡은 것이 3천 년 정도라고 하는데 각각의 섬에 흩어져 각자의 문화를 만들어낸 이들이 서로 간의 교류와 연관성이 적은 개별적인 상태로 살아왔다니, 모아나는 아마도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반에 만들어진 이야기인 듯하다.(실제로도 스토리를 짜기 위해 자료조사를 상당히 많이 한 흔적들이 보인다)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영국인들이 호주대륙을 찾기 훨씬 전부터 폴리네시아 인들은 타이완과 동남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섬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 항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근거들이 있는데,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다. 모아나 1과 모아나 2에서 모아나가 항해를 통해 모츠누이의 섬 밖으로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려고 하는 시도를 하는 것이 실제 역사와 부분과 겹치는 면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화는 영화니 영화적인 측면과 목적성 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영화적인 관점은 모아나가 자연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어떤 식으로 친구가 되고 어떤 식으로 대적하고 어떤 식으로 다스리게 되느냐를 주제로 한 통일된 스토리를 말한다. 스토리의 목적성은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이야가가 무엇인데?'를 말한다.
이러한 면에서 모아나 1은 자연이란 아직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영역에 대한 경외가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모아나가 이야기하는 것은 나에게 좋은 것은 '선' 나쁜 것은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판단하는 시선에 대한 반기였다.
(모아나의 아버지가 처음 바다를 싫어하게 된 것도 그곳에서 자신의 친구가 죽었기 때문이 다. 이는 부족 자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점차 바다로 나아가지 않는 폐쇄적인 섬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로 인해 섬의 저주라고 표현되는, 생산성의 저하와 섬 외에는 다른 곳에 갈 수 없는 부족들이 겪는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모아나가 맡게 된 것이다. 모아나는 항해술의 부활을 이끌고 다른 미지의 공간으로 확장시키려는 목표를 세운다. 1편에서는 이런 모아나의 뜻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자신의 애완 닭 헤이헤이와 단 둘이 항해를 시작한다. 뜻은 있지만 외로운데다가 아직 항해 기술이 없는 모아나를 돕게 되는 존재가 반신반인인 마우이다. 마우이는 사실 빌런과 조력자의 중간 정도 역할에 있는 캐릭터인데, 마우이는 인간을 돕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신의 영역에 도저히 테피티의 심장을 훔치는 바람에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처럼) 자신의 주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갈고리를 뺏기는 형벌을 받았다는 설정이다. 마우이는 인간을 도우려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테피티의 심장을 전해주었는데, 인간은 마우이를 그저 무서운 존재, 악마 같은 존재가 되어 비리니 그는 억울하다.)
모아나 속 바다는 그 자체로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살아있는 존재다. 선과 악을 판단하지는 않지만,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치유하고 싶어 하고 아프다는 것을 직접 표현한다. 하지만 바다 인간 스스로 바뀌길 원한다. 바다가 다른 부족원들을 밀어내지만 다행히 모아나를 받아준 것은 모아나가 겸손한 태도로 바다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가 허락한 단 한 명의 인간 모아나에게 임무가 주어진 것. 바다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신의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치유하라고 모아나에게 테피티의 심장을 전해준다. 인간인 모아나가 직접 불과 용암의 악마인 테카에게 가서 테피티의 심장을 돌려주고 용서를 구하라고.
나는 사실 다른 관점에서, 마우이가 전해준 것이 기술(Technology)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우이라는 신적인
존재 덕분에 인간은 부족 사회라는 문명을 일굴 수 있었다. 영화 밖의 현실에서도 모든 기술이 인간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생각보다 자연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우연으로 얻어진 것도 꽤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은 기술의 이런 고마움을 좋은 쪽으로 쓰고 겸손해지기보다는 다른 식으로 기술을 이해한다. 자연이야 어찌 되던 인간위주의 관점에서 일단 편한대로 쓰고 보자는 식의 사고 말이다. 바다가 자꾸 부족을 섬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파도의 경계선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은 첫 번째는 인간이 자연을 잘 모르기 때문.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인간을 받아주지 않는 자연은 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좁은 시야 때문이다. 어쩌면 자연은 자연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모아나 1 시리즈는 그렇게 마우이와 모아나가 용서를 구함으로써 성난 자연의 여신을 달래, 평화로운 섬으로 만들고 다시 돌아오는 내용에서 끝이 난다. 어쩌면 이 자체가 하나의 완벽한 서사의 구조다. 마치 과거 자연의
재해로부터 백성들을 구해달라고 왕이 직접 나가 기도했던 기우제와 천도재처럼 모아나가 하는 것은 부족장이 하는 '대속' (남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음) 의식이다. 그 보답으로 모아나와 부족은 항해술을 부활시켜 섬의 생산력을 높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모아나 2에서 모아나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섬에 사는 사람이 아닌 다른 섬에 사람을 찾는 내용이다. 모아나는 다른 섬의 정상에서 고동소리를 상징적으로 부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지구 밖에서 새로운 문명을 찾고 싶어 하는 컨텍트 같은 SF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이후 모아나에게는 1편에서보다 훨씬 적극적인 조상과 자연의 계시가 내려와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그 바다 저끝 너머까지 뻗어있는 별똥별이 방향과 목적성을 알려준다. (겨울왕국 2의 여정처럼) 모아나는 각각의 섬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로 섬을 가라앉힌 악의 신을 물리치고 저주를 깨 모든 섬의 중앙역할을 할 수 있는 섬을 찾아 부활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도와줄 신인 마우이와 다시 찾아 협력해야 한다. 얼핏 들어도 어마어마한 미션에 배에 같이 탄 여러 명의 챙겨야 할 사람들과 귀요미들까지. 러닝타임 내내 모아나는 정말 쉴 틈 없이 바쁘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하나 뜯어봐서 나쁠 게 없긴 한데, 캐릭터들이 왜 거기에 존재해야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 (한배에 너무 많이 태웠다..)
이 막중한 모험과 역할의 무게 속에 번아웃 된 모아나, 거기에서 더 나아가 혼수상태까지 간 그녀를 살리기 위해 지인들과 자연 그리고 자신의 조상들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혼들의 합창까지 등장한다. 그야말로 인간과 자연 영적세계까지 모두 동원해 그녀를 살리는 것. 그러나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자연에 대속하는 1편의 목적과 다른 2편의 '목적성' 말이다. 모아나는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사라진 부족과 섬을 찾아서? 다른 섬에 무엇을 주고 싶은걸까? 자신과 부족의 교통을 만드는 목적성, 다함께 하나되어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야기가 엄청 넓다.그러나 긴밀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은 다같이 모이는 파티가 뭐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
그런면에서 모아나가 최후의 목숨까지 걸면서 한 행동 '사라진 섬에 인간의 손이 다시 닿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좀 모호했다. 1편의 결말이 여신과 화해하면서 끝나는 것이었다면, 2편에서 마우이가 가라앉은 섬을 끌어올리는 것도 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었다. 인간과 신 그리고 자연 이라는 관계에서 악의 주체가 신이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이고, 심지어 섬을 다시 살리는 것도
반신반인인 마우이가 하는 일이니말이다. 말 그대로 모아나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신들이 싸우는 링밖에서 지켜보거나 자연을 달래주는 정도로 작아지는 것.
자연과의 교감을 중시헸던 1편과는 그런면에서 확실히 달라진 관점이긴 한데 악당들의 구도까지 여러 명 섞이다보니 다른 식으로 이야기가 풀릴 것 같다. 그런 면에서 3편에서는 모아나와 친구들이 훨씬 적극적이고 호전적인 캐릭터가 예상된다. 마우이가 혼자 싸우기에는 아무래도 전력이 좀 많이 부족해 보이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개봉 첫 주에 본 영화는 한 번의 관람으로는 다 이해하기가 너무 벅찬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오랜만에 돌아와서 그런지 관객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풀어야 할 이야기도 많아 보이는 모아나였다. 어쩌면 아이들과 팬들에게는 다시 한번 스크린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이긴 한데, 모아나가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온 것 같아 좀 안쓰럽긴 하다. 미니 시리즈를 좀 자주 냈더라면 이렇게 6년 동안 미뤄놓은 에너지를 한 번에 풀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블록버스터 급 이야기도 좋지만, 디즈니가 단편 시리즈 와 디즈니 채널에 방영되었던 애니메이션 시리즈와 같은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OTT에 불만있는 1인..) 아이들의 꿈을 사랑하는 원래의 마음이 잘 살아있는 다양한 작품이 계속 나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