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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Feb 07. 2024

1888년 조선의 새해 풍경

-그 아름답고도 낯선  풍습

19세기말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해 마지막 10년을 기록한 제임스 S. 게일은 조선의 새해 풍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19세기 말 서울


'정월 보름날 밤이면 조선 사람들은 가까운 다리 위에 자리를 펼치고 달을 향해 절을 세 번 한다. 새해에도 그 밝은 빛으로 잘 인도해 주길 기원하는 것이다. 시기에 따른 달의 모양이나 단계에 대해서는 수백 년간 기록되어 왔기 때문에, 마치 영국 사람들이 자기 말에 대해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이 땅의 모든 무당들은 달을 보고 위험성이나 좋은 징조 혹은 특별한 변화에 이르기까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묘사는 마치 새해 연하장에 그려진 그림만큼이나 이상적이면서 낭만적이다. 지금의 우리가 새해가 되면 동해로 뜨는 해를 보러 가는데 이 당시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정월에 주로 달을 보고 절을 했던 것이다. 게일은 음력을 처음 접한 서양인으로서 이해할 없는 시간 체계를 이해해 보려고 갖은 애를 쓴다. 왜 조선인들은 떡국을 먹고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일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두 살이라니 대체 무엇인가. 그는 고장 나버린 머릿속 개념을 뒤로하고 정월 하루 조선인들을 관찰하며 특이한 점을 관찰했다.


밤하늘에 초승달이 빛나는 음력 정월 초하루는 특별하다. 새롭게 맞이하는 이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낡은 것은 다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고 믿었다. 빚을 갚고, 새 옷을 해 입으며, 마을 어른들에게 새해맞이를 축하드리며 절을 하고, 어린 사람들에게 절을 받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뒤에도 아직도 불편한 것이 있었으니...


게일이 고용한 조선인 요리사는 '조선 사람 만의 새해맞이 방식'을 알려주는데 그것은 한 밤중 마당에서 연을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그 연에는 새해 처음 쓴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악귀, 조바심, 쌍욕, 싸움.....'

너무 어두워서 연은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연줄을 끝까지 풀어 하늘 가장 높이 날렸을 때 요리사는 줄을 잘라 연을 날려 보냈다. 이런 식으로 그는 그 자신 안에 있는 적을 없애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해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출처: 한국학 중앙연구원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은 짚으로 사람 모양을 넣어 그 가장 안쪽에 자신의 단점과 죄를 적은 종이와 약간의 돈을 넣은 뒤, 새해 첫날밤이면 집집마다 찾아오는 거지에게 가져가게 했다고도 한다. 거지는 짚에 들어가 있는 돈을 가지면서 동시에 그 안에 있는 악령도 대신 가져가는데 선교사의 눈에는 '돈을 받고 선한 영혼을 파는' 식으로 보였던 것 같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섣달그믐 (음력 12월 마지막 날)에 관한 묘사도 등장한다.


"조선 사람들은 '앙광이'라고 부르는 산타클로스를 막기 위해 문단속을 철저히 했다고 하는데, 광이는 저 하늘 위에 살면서 새해 선물을 가져간다는 늙은이다. 조선 사람들은 신발을 문 밖에 벗어 두는데, 새해로 넘어가는 그믐날 밤 광이 가 내려와 자기가 다녀간다는 기념으로 신발을 신고 가버린다는 것이다. 광이는 서양의 산타클로스처럼 후덕한 존재가 아니다. 광이는 장티푸스, 콜레라, 문둥병 같은 것을 선물로 주고 가는 아주 사악한 늙은이다. 당연히 기쁨 속에 산타를 기다리는 광경은 없으며, 온 집안을 가득 채운 것은 양광이에 대한 극심한 공포였다. 아기가 울 때 조선의 엄마들은 "뚝! 안 그럼 광이 가 잡아간다"라고 이야기했다. 이곳 동방에 다른 귀신들에 대한 대처법이 존재하듯 양광이 막는 법도 있었다. 첫 번째 방법은 신발을 전부 안으로 들여놓고 밤새 불을 밝혀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신발을 안으로 들이면 집안사람들에게 또 다른 액운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민가에서는 문 밖에 곡식을 거를 때 쓰는 '체'를 걸어놓는다. 그러면 집착증이 있는 양광이 가 그 체의 구멍이 몇 개인가를 세보려다가 날이 밝아오는 것도 모르고 새해를 맞는 바람에 사람들을 괴롭히지 못하고 가버린다."


사실 다른 자료를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섣달 그믐날 자면 눈썹이 센다'거나 '이날 자면 영원히 자는 것'이라고 해서 밤을 새우고 '수세'를 했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는데 우리 조상들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지만 한해를 맞이하는 들뜸의 표현으로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밤샘 하는 요즘시대의 풍습과도 약간은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선 시대 사람들도 새해가 오면 과거의 날들은 지워지고 새로운 시간들이 도화지처럼 다시 펼쳐진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이즘이면 꼭 있었던 연 싸움에 대해 게일의

찬탄을 보낸다. 4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연을 직각으로 꺾어서 상대의 연을 치는 기술을

보는 것은 지금의 에어쇼를 보는 것만큼이나

짜릿한 쾌감을 주는 볼거리였던 것


완전한 명절과 휴식의 의미로 해석되었던 설의 의미는 지금 이 시대에 사라진 지 오래지만 왠지 이 맘 때가 되면 조금은 설레는 것은 왜일까. 어른들로부터 설 이야기를 듣고 어렵게나마 이해했던 설에 대한 의미를 40이 넘어서 새롭게 다시 생각해 본다. 조선 마지막 시기를 보냈던 그 시기 역사적으로 어둠이 닥쳐오고 있었건만 민간에서의 설은 이렇듯 낭만이 있었던 것.    더러운 것을 보내고 온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는 눈 같은 깨끗함묻어나는 순수함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겉으로 보이는 새해맞이뿐 아니라 온전히 마음을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으로 새해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


새해를 시작하는 이 무렵은 정신이 확 들만큼 '쩡'하게 추운 게 차라리 나은 것 같다. 송구영신 글씨가 담긴 새해 그림이 너무 익숙해 더 이상 설날이 새롭지 않다면 진짜 설날의 의미가 무엇일까 다시금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설날은 다시 오지 않을 '올해의 첫 시작'이다.


이미지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도서 출처: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1888~1897. 제임스 S. 게일. 최재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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