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입시험 1
정신없이 서류 준비와 마지막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12월이 되었고, 편입학 지원시기가 왔다.
대학별로 모집요강들이 줄줄이 발표가 되었지만, 상당한 변수가 생겼다.
지원에 제한이 없는 편입 시험의 특성을 이용해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은 전부 지원할 예정이었는데, 시험 날짜가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대부분 겹치는 대학들이 정말 많았다.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더욱 예상치 못했던 것은 지원하고자 했던 대학들에서 사범대 모집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일정과 전공에서 현실적으로 타협을 봐야 했다.
고심을 거친 끝에 나는 가천대, 건국대, 경희대, 동국대, 단국대, 한국외대, 홍익대 총 7곳에 지원을 했다.
가고 싶었던 사범대 모집은 단국대와 건국대밖에 하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시험일정과 엄청난 경쟁률 속에서 최대한 타협을 해 지원을 한 결과이니 일단은 다가올 시험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학교 경쟁률이 적게는 20대 1 정도에서 심하게는 100 대 1 수준으로 아주 치열했다.
특히 홍익대 같은 경우에는 내가 지원한 경영학과의 경쟁률이 무려 135 대 1이나 되었다.
편입이 바늘구멍 뚫기라더니, 경쟁률을 보니 이제야 정말 실감되기 시작했다.
시험 일정은 거의 3주 동안 이어질 예정이었다.
12월 중순부터 경희대 시험을 시작으로, 1월 초까지 한국외대 시험을 마지막으로 시험이 끝날 예정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그냥 최선을 다하기로 굳게 다짐한 뒤 시험날까지 묵묵히 마지막 정리를 이어나갔다.
드디어 첫 시험인 경희대 시험날이 왔다.
전날 잠은 잘 잔 것 같았다. 시험 시간은 9시 반이었지만, 8시 반까지 입실을 완료해야 해, 집에서 꽤나 먼
회기역까지 가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했다.
나는 집 앞에서 택시를 탄 뒤, 노래를 들으며 바깥 풍경을 보며 경희대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에 조금이라도 긴장감을 없애보려 노력했다.
시험장에는 꽤나 일찍 도착했다. 시험시간까지 1시간 반이나 남은 상태였다.
나는 그냥 단어장을 꺼내서 단어를 보았다.
단어장의 단어를 다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걸릴 것이므로,
딱 단어장을 다 보고 시험을 응시하면 되었다.
단어장을 다 볼 때쯤 감독관이 들어와 유의사항과 시험지와 답안지를 배부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첫 시험이구나. 긴장하지 말고 준비한 것만 완벽히, 후회 없이 보여주자.'
나는 마음속으로 계속 후회만 없이 시험을 보자며 긴장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감독관이 시험 시작을 알리고, 나는 바로 단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경희대 시험은 문제 수에 비해 시간이 아주 넉넉히 주어져 급할 것은 없었다.
먼저 10번까지 단어 영역이 있었다. 다행히도 모두 아는 쉬운 단어들이 나왔다. 푸는데 거의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자만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음 영역인 빈칸 넣기 논리 영역으로 넘어갔다.
조금은 헷갈리는 문제가 한 두 문제 정도 있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논리 영역은 답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냥 최대한 답인 것 같은 것으로 고르고 넘어갔다.
이제 침착하게 독해파트로 넘어갔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독해 영역의 첫 지문을 읽었는데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읽어도 그냥 글자를 글자 그대로 읽을 뿐, 독해가 되지 않았다.
'아, 또 시작이네.'
또 중요한 시험이라 긴장을 너무 한 탓인 건지, 패닉이 왔다.
예전 수능 볼 때처럼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나는 잠깐 펜을 내려놓고 1분 정도 눈을 감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로 했다.
'이번에 편입하려고 먼 길 힘들게 돌아왔잖아. 준비도, 계획도 오래 했잖아. 여기서 이렇게 망칠 수는 없지.'
나는 이번만큼은 이렇게 내 입시를 망칠 수 없다는 말을 계속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지문을 읽어나갔다. 다행히 금방 평정심을 찾고 다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읽다 보니 공부했던 지문들이 두 개정도나 나왔다.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진짜 또 겁먹고 쉽게 포기했어봐. 이런 것도 발견 못했지.'
시험이 전반적으로 어렵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내 모든 것을 다 쏟아낸다는 마음으로 시험이 종료될 때까지
계속 검토하고 고민하였다.
그렇게 첫 시험이 끝났다.
시험장을 나오는 발걸음이 꽤나 가벼웠다. 일단 잘 보고 못 보고를 떠나서, 최선을 다하고 나왔다는 생각에
후회는 남기지 않았다. 망설임이나 후회 없이 다음 시험으로 정진할 수 있었다.
다음은 일주일 뒤 크리스마스날에 단국대 시험을 봐야 했다.
나는 첫 시험에서 부족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오답과 피드백을 하며 다음 시험을 준비했다.
단국대는 집에서 더욱 멀었다. 다행히 주말이라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주시면서 같이 가기로 했다.
부모님과 같이 가서 그런가 가는 내내 긴장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국대에 도착하니 엄청난 인파와
함께 많은 차들이 주차를 위해 애를 먹고 있었다.
나는 일단 차에서 내려 혼자 시험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적당히 시간에 맞춰온 것 같았다. 시험시간까지는
40분 정도 남아있었다. 조금 단어를 공부하고, 화장실에 갔다 오고 나니, 감독관이 유의사항을 안내를 한 뒤,
시험을 시작했다.
단국대는 기출로 계속 합격선에 있어 개인적으로 자신감이 좀 있던 학교였다.
시험이 시작되고, 바로 단어 영역을 풀기 위해 시험지를 펼쳤다. 생각보다 모르는 단어가 좀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일단 모르는 문제는 남긴 뒤 빠르게 다음 영역인 문법 영역으로 넘어갔다.
문법은 원래도 조금 취약 부분이라 자신은 없었지만, 모르는 몇 문제를 제외하고는 그럭저럭 풀어낸듯했다.
단국대는 경희대만큼 시간이 넉넉지 않아 조금은 빠듯할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은 아는 문제, 풀 수 있는 문제라도 빠르게 풀어내야 했다.
독해도 생각보다 굉장히 까다로웠다.
어려워서 안 읽힌다는 느낌보다는 헷갈리게 출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르고 넘긴 문제들이 꽤나 많았는데 이거 진짜 큰일이 난듯했다.
어찌어찌 다 풀어내긴 했지만, 경희대를 봤을 때만큼의 자신감은 없었다.
단국대는.. 마음을 좀 편하게 먹고 합격 가능성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기로 했다.
사실 단국대 시험이 끝나고 3일 뒤에 바로 가천대 시험과 그 뒤로 또 바로 건국대 시험이 기다리고 있어
단국대 시험에 대해 이리저리 생각해볼 시간 없이 다음 시험을 대비해야 했다.
가천대는 하향으로 지원한 학교라 긴장이 크게 되지는 않았다.
그냥 망치지만 말자..라는 생각이었다.
가천대 시험시간은 오후로 배정이 되어서 편입시험 일정이 시작한 뒤 처음으로 오후에 시험을 보게 되었다.
아침에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보기보다 오후에 조금은 더 멀쩡한 상태에서 시험을 보니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가천대 시험장에는 한 30분 정도 남기고 도착을 했다. 가볍게 정리했던 단어들만 보기로 했다.
화장실에 갔다 오니 또 감독관이 들어와 유의사항을 알려주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시험을 시작했다.
가천대 편입시험이 워낙 상당한 난이도로 유명하지만, 생각보다 더욱 까다로웠다. 과연 가천대 합격점수가
60~70점대라고 하더니 그 말이 이해가 가는 난이도였다.
도대체 지문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근데 하향지원이라서 그런 것인지.. 이상하게 긴장은 되지 않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갔다.
'아 몰라.. 왜 이리 어렵냐.. 이게 맞겠지 뭐..'
시험 보는 내내 이런 식으로 시험을 풀어나갔다.
시험이 끝나고 나와서 어떻게 시험을 풀었는지도 잘 모를 정도였다.
일단 문제는 전부 풀어냈으니 차분히 결과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제 이틀 뒤에 가장 가고 싶던 건국대 시험이 있을 예정이었다.
이미 가천대 시험을 준비할 때도 건국대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시험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마음이 완전히 건국대 쪽으로 쏠려있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기도 했고, 일단 무엇보다 가장 배우고 싶은 전공인 교육공학으로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전공 때문에 이번 편입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잘 보고 싶었던 시험이었다.
건국대의 시험 난이도는 쉬운 편이어서 잘 본다기보다는 실수를 줄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다행히도 모의고사 점수가 계속 고득점이 나와주어서 시험 당일에 실수만 많이 하지 않으면 여기도
충분히 합격을 노려볼만했다.
그렇게 건국대 시험날이 다가왔다. 평일 오전이어서 사람들 출근 시간과 시험장까지 가는 길이 겹쳐 가는데
조금 고생을 했다. 지하철 구석에서 반은 찌그러진 상태로 건국대에 도착을 했다.
시험장은 큰 강당 같은 곳이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인원이 교육공학과에 지원을 했다.
여태까지 경쟁률에 압도된 적이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내가 정말 가고 싶은 학과여서 그랬던 건지
시험 보기도 전에 경쟁률에 조금은 압도가 되었다.
'와.. 이 많은 인원 중에 4명밖에 뽑질 않는다고? 이거 진짜 다 맞을 각오로 풀어야겠네..'
잠깐 단어를 보고, 유의사항을 듣고 시험지와 답안지를 받고 시험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으나, 평소 건국대 기출보다는 분명히 난이도가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도 아예 못 풀 정도는 아니어서 계속 막힘없이 풀어나갔다.
독해 영역으로 넘어오자 헷갈리는 선지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이걸 넣어도 맞는 것 같고, 저걸 넣어도 맞는 것 같았다. 계속 고민하다 보니 패닉이 좀 왔다.
이런 지문이 여러 개 있었다. 결국 계속 고민하다가 근거를 확실히 잡지 못한 상태에서 답을 다 골랐다.
시험장에서 나오자마자 건국대는 탈락했음을 직감했다.
나오면서 계속 속으로 화가 치밀었다. 뭐가 잘못됐던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에는 실력 부족이었겠지만, 제일가고 싶었던 학교를 탈락했다는 생각이 드니 너무나 침울했다.
당장 세 학교나 다음 주에 바로 시험일정이 남아있었는데도 동기부여가 전혀 되질 않았다.
집에 와서 일단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건국대 시험에 대한 미련을 최대한 빨리 떨쳐내야 했다.
저녁에 문득 이거 진짜 큰일 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본시험은 4개. 그나마 잘 봤다고 확신할 수 있는 시험은 경희대 하나뿐이었다.
단국대와 가천대는 어려워서 잘 푼 지 안 푼지도 몰랐고, 건국대는 보나 마나 탈락이었다.
자신감 있는 경희대도 상위권 대학이라 실력자들이 더 많은 데다가 모집인원도 9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거 정말 방심하다가는 흔히 편입판에서 말하는 '올킬'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준비할 때는 항상 모의고사 점수가 괜찮게 나와서 나름 안심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시험이 시작되니
확실히 편입판은 바늘구멍 뚫기라는 것이 다시 한번 체감이 되었다.
심기일전해서 다음 주 1월에 있는 시험 3개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하면 전부 탈락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1월의 시험을 준비하며 2022년 새해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