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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Jul 12. 2022

내가 풋살을 시작한 이유

학생 시절 제일 좋아하고 잘하던 과목은 체육이었다. 공부는 별로 못했다는 뜻이다. 매일 한 살 터울 남동생과 좁은 골목과 개천에서 어울려 놀았다. 엄마는 여자애가 맨날 남자애들하고 우르르 몰려다닌다고 타박했지만 나는 인형놀이와 역할놀이가 정말 재미없었다. 또래 친구들이 베르사유의 장미나 세일러문 만화를 볼 때 나는 피구왕 통키, 축구왕 슛돌이, 슬램덩크를 보며 매일 공을 가지고 놀았다. 당연히 학교에서 달리기, 피구, 발야구 등 모든 종목의 스포츠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학년이 높아질수록 나는 점점 남자아이들의 운동장에서 밀려났고 남자 무리에도 여자 무리에도 잘 섞이지 못했다. 나처럼 뛰어 놀고 공놀이하기 좋아하는 여자는 거의 없었기에 내가 유일하게 즐거워하던 시간이 여고의 체육시간이었다. 유일하게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시간,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여고의 운동장은 경계가 없었다. 



작년 여름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고 벌써 1년이 되었다. 꾸준하게 달렸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1분만 달려도 헉헉대며 숨을 쉬던 나는 이제는 1킬로 정도는 힘들지 않게 달린다. 그리고 올해는 달리기 외에 새로운 운동을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염두에 두고 있던 운동은 수영과 풋살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수영장에 가서 시간과 비용을 알아보고도 망설이고 있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에 우연히 내가 속한 한 오픈 채팅방에서 ‘풋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날 우연히 성별에 상관없는 풋살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 글을 보고 충동적으로 신청을 했다. 나는 언제나 우리 집 어린이보다 일찍 잠드는 엄마라 저녁 운동을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밤에 외출을 하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라 밤길을 나서는 것도 무서웠다. 하지만 어린 시절 땀을 뻘뻘 흘리며 즐기던 축구를 다시 즐거워하며 할 수 있을지 궁금했고 그저 무용하게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까만 밤하늘에 달빛이 밝게 빛났다. 대학 교정의 운동장은 모두 불이 꺼졌으나 함성이 들려오는 먼 곳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임을 확신했다. 어두운 밤길이 무서워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고 자동차 열쇠에 달린 호루라기를 손에 꽉 쥐고 뛰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풀살 연습장에는 남녀의 성비가 비슷하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옆 코트에서는 여성 풋살 동호회 회원들이 레슨을 받고 있었고, 내가 참가한 모임도 남녀가 섞여 한 팀을 이루었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바로 미니게임을 시작했다. 게임을 시작한 이후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공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그곳을 향해 달릴 뿐이었다. 



지금 공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내가 어디로 향해 달리고 있는지만 중요해지는 순간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없었다. 나는 나로 그라운드에 서 있었고 우리는 팀을 이루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뛰고 있었다. 사실 골을 넣고 안 넣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 내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실수를 하면 미안하다 외쳤고, 좋은 시도였다고 서로에게 박수를 쳤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몰랐다. 풋살 그 자체가 아니라 지금 당신의 모습 그대로 잘하고 있다고. 우리 함께 노력해 보자고. 끝까지 뛰어보자고.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고 그렇게 함께하는 거라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7분 30초로 나누어 3번의 경기, 2시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렀는지 어느새 시간은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라면 집에서 곤히 자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었을 시간에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해서 쓸어 넘기고 호흡을 고르며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나 보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시간. 안정과 평안의 가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낯선 시간과 공간에 가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바라보는 것. 내가 나임을 잊지 않고 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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