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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걸음 May 05. 2023

우연이라는 세계에 뛰어드는 용기 같은 것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은 죽음을 앞둔 철학자와 의료인류학자가 주고받은 편지글이다. 질병과 죽음, 현재와 미래, 선택과 가능성에 대한 두 사람의 철학과 사유가 나를 자주 멈춰 서게 했다.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겁먹고 도망 다니기 바쁜 내가 포기해야하는 많은 우연과 가능성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이를테면 우연이라는 세계에 뛰어드는 용기 같은 것. 



나는 언제나 죽는 것이 두렵다. 비행기를 타면 추락할 것 같아서 안절부절 몸이 먼저 반응하고, 낯선 곳에 가면 건물이 무너져 내릴까 무섭고, 어느 날 갑자기 죽을병에 걸릴까봐 노심초사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지인이 내게 병원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라고 진단을 내려주었지만 나는 불안과 두려움을 야기하는 것들에서 멀어지는 방법으로 간신히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관이나 백화점에 가지 않고, 비행기를 타지 않으며,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죽게 될까봐, 갑자기 찾아오지 않을 미래를 상상하며 종종 겁에 질린다. 



그러다 아빠의 죽음으로 내가 살던 세계의 기준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더는 내게 내일이 없을지도 모르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혹은 받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죽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두렵고 용기 없는 존재이지만 지금을 제멋대로 살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서울에 가고, 내가 바라보는 세계를 사진과 글로 기록한다. 매일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가정주부의 일상에서 나를 찾으려고, 이름을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일들이다. 내일을 기약하지 않는다. 다음을 기다리는 않는다. 그 언젠가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오래전에 좋아하던 드라마의 대사처럼 ‘지금을 사는 일’에 집중한다.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지만 가끔은 이기적으로 가족의 품에서 도망친다. 나에게도 엄마와 아내로서의 삶 말고도 다른 선택과 가능성이 있을 거라 믿는다. 무엇이 되려는 거창한 꿈을 꾸지 않더라도 내가 나의 시간과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뻗어나가는 선으로 연결되는 또 다른 선이 있을 것이고 그 연결되는 선에서 ‘아름다운 선’을 조금이라도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를 위한 삶을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타인을 위해서도 조금은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가족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동물을 위해서, 생명을 위해서, 지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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