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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sun Cho Aug 23. 2019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아이들에 관한 영화

-영화 '파수꾼'

제작예산 5000만원짜리 영화가 이렇게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고,

하나의 장르로 평가받을 줄 누가 알았을까?


내가 사람들에게 가장 자주 추천하는 영화는 바로 '파수꾼'이다.


얼핏 보면 학교폭력물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한 심리묘사물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기태(이제훈 분)의 죽음을 보여준다.

이미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보이는 기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영화는 기태의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추적해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기태와 백희(박정민 분)의 사이의 미묘한 균열이 시작된다.

둘은 학교 밖에서는 대등한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학교라는 틀 안에서는 기태가 백희 위에서 군림한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망을 보라고 하고,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리지어 폭행을 가한다.

갑작스러운 신분의 변화는 백희에게도 큰 혼란과 상처였을 터.


영화에서 가장 명장면이라고 생각하는 장면은

기태가 백희에게 화해를 청하는 장면이다.

기태가 쑥쓰러운 표정으로 엎드려 자고 있는 백희에게 다가서지만

백희는 자신은 전학을 가기로 했고, 더이상 기태의 사과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을 한다.


이 때 멍해지는 기태의 눈빛, 잠시 멍하다가 일그러지는 표정은 정말 좋았다.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이야기해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애가 무슨 상황인지 이해도 느리고 부당한 상황에서 호소도 못한다고.


영화 파수꾼 역시 고2 남자아이들의 깨지고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다루는 영화이지만

그 마음 위에 덧입혀지는 대사들은 하나같이 편면적이다.


여학생이었으면 순간순간의 상황에서 조금 다른 표현을 할 수 있었겠지만

기태, 백희의 입에서 나오는 표현들은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지 못한다.

마음이 입에서 막혔을 때의 감탄사는 씨발, 새끼 등이다.

기태가 고민고민해서 자신에 대해서 설명한 것은 "나는 너희와는 다르게 집에 가면 밥을 혼자 해먹어. 집에 혼자 있어" 정도에 불과하다.


기태는 백희가 전학가고 난 후 남은 친구 동윤(서준영 분)에게도 마음과 다른 표현을 해서

동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는 서툰 화해를 청하는데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기태의 말에

"잘못된 건 없어. 처음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라고 답하는 동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이후 기태는 하루 온종일 아무도 없는 집에서 생각하고, 고민하다가

난간 위로 올라선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파수꾼'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감독은 J. D.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기 때문에 제목을 파수꾼으로 정했다고 한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어린 스스로를 지켜내지 못한 주인공들에 대한 목격담이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학생들은 사건을 겪고, 이를 통해서 성장해나간다.


하지만 영화 '파수꾼'에서의 백희는 스스로 전학을 택하고, 물리적으로 멀어짐으로써 관계맺음을 버렸고

기태는 자신의 서툰 행동으로 인해서 망가져버린 친구관계를 해결하지 못하다가 스스로를 버렸다.

동윤은 기태의 자살 이후 학교를 자퇴함으로써 성장을 멈췄다.


3명의 무명(당시 이제훈은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배우의 연기력 만으로 걸작이 된 '파수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 중 하나이다.


덧. 지금 보니 음악이 무려 DJ소울스케이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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