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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Oct 28. 2019

기류가 불안정한 소개팅

워싱턴에서 전격 만남


스탠바이 티켓으로 워싱턴에 소개팅가다.          

워싱턴에서 소개팅 기회가 왔다. 두바이에서 비행기로 14시간 거리에 있는 사람과. 승무원에게는 물리적인 거리는 문제가 안 된다. 오랜만에 하는 소개팅이라 기대감이 컸다. 

만나기 전 몇 번의 연락을 통해 네가 올래, 내가 갈까 실랑이하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각자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성공을 한다며,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비행기 타고 가는 걸 잘하니 워싱턴에서 만나자고 했다. 정말 가도 되나?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는 거다. 만나봐야 내 운명의 짝인지 알 수 있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사랑을 찾아 국경을 넘기로 했다.


항공사 직원에게는 비행 요금의 90% 할인이 되는 혜택이 있다. 스탠바이 티켓이라고 한다. 비행기에 남는 자리가 있어야만 내가 탈 기회가 온다. 남아야 타는 티켓으로 떠나는 여행의 시작으로 나만의 이야기를 남긴다. 남는 자리에 껴 타려다 여유 좌석이 없으면 튕겨 나간다고 표현하고 OFF LOAD 된다고 말한다. 

  가게 될 지도 모르니 완전한 준비를 하고 공항으로 간다. 워싱턴행 비행기가 탑승 절차를 모두 마칠 때까지 빈자리가 있기를 바라며 기다린다.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조바심을 낸다.탑승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어찌 된 건지 모르겠다. 탑승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야 탈 수 있을 지경에야 허락된 불안한 항공권이다. 다행히 자리가 났는지 지상 직원이 대기 중이던 내 이름을 부른다. 여권을 들고 출국 심사대를 거치면 그믈을 끊고 모험가가 될 준비가 된다.       


공항은 신비한 공간이다.

여권에는 나에 관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 들어있다. 이름과 국적과 생년월일,

직장에서의 평판과 가족들, 친구는 없다. 나의 꿈, 경제 상황등도 필요 없다. 여권에는 단지 생물학적인 존재인 나 에 대해서만 적혀있다.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시공간으로 가려면 공항에 가야한다. 최소한의 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공항을 빠져나가고 나면 여권에 적힌 대로 나 일뿐, 그 이상이 아니게된다. 계급장과 출신은 출국장 문이 닫힌 문 너머에 두고 왔다.

출국장으로 들어설 때, 한 번쯤 꼭 돌아보게 된다. 누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거나 인사를 하러 내 뒷 모습이 보이지 않을때까지 기다려 보고 있다. 그들과 나는 그믈처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사는 세상, 나의 환경이다. 내 수준이다.      


공항을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싶은 욕망이다. 비행기를 타려고 출발하는 항공편들의 목적지와 시간을 볼때마다 심하게 설렌다. 새로운곳으로 떠난다는 매혹적인 일. 여권은 여전히 손에 꼭 들려있다. 나 자신을 증명 할 수 있는 것은 나 혼자다. 내가 세상을 향애 무한 질주를 하더라도 내가 누구인지는 중요한 문제였다. 또 나의 존재에 사로잡혀서 나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 하는 곳이 공항이다.     

공항에서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존재와 나 자신 사이의 어떤 것이다. 온전하게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이 다른 존재가 되는 길이다. 이름 성별 나이 국적을 시작으로 내가 다시 꿈을 꾸고 있다. 공항에서 비행기표와 여권을 들고 있으면 출국 심사대를 빠져나갈 때마다 다른 존재가 된 착각이 든다. 환상과 착각의 무대다. 스쳐가는 모든 것들만이 현실이다. 그것도 잠시다. 여행의 기간에 따라 원래의 나로 돌아오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아슬아슬하게 모험을 감내하며 비행기를 탔지만, 혹시 상대가 마음에 안 들면 백악관과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을 실컷 구경하고 오면 되니깐 억울할 거 없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만남에 이번에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직은 만나기 전이니까 기대만 있을 뿐, 실망 전이다. 


기류가 불안정한지 비행기가 흔들린다. 긴장한 탓에 얼굴에서 열이 나는 것 같고 몸이 재봉틀처럼 떨렸다. 마음도 요동친 기억이 난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도 혼자라는게 강하게 느껴진다. 독립된 공간은 나의 우주다. 사회적인 관계의 네트워크를 연결 할 필요없이 차단을 해도 상관없다. 비행기에서는 어차피. 기본 욕구만 쾌적하게 유지되면 되니까.      

워싱턴 D.C (Dulles International Airport) 공항의 입국 심사대로 향한다. 미국은 올 때마다 괜한 긴장감을 준다. 무슨 일로 왔냐며 심문하는 표정과 말투에 잘 대답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든다.


“미술관 여행하러 왔어요.”

“혼자요? 얼마 동안요?” (소개팅하러 왔단 말은 빼야지)

“친구를 만나서 2주일간 미술관 여행할 거예요.” (그래, 정말 그럴 거니까)

“2주 동안 뉴욕의 미술관을 다 못 볼 텐데 워낙 많아서…. 무슨 일을 하나요?”

“도예가예요, 글도 쓰고 작품에 영감을 받으러 왔어요. 에미레이트 항공 승무원이었는데 워싱턴에 여러 번 온 적이 있어요. ”

혹시 여기서 눌러앉아 살까 봐 예리하게 심문 조사하던 분위기는 갑자기 사라지고 믿음직스러운 눈빛으로 변했다. 좋은 여행 되라고 도장을 신나게 팡팡 찍었다. 겨우 통과했다는 느낌이 시작부터 주눅 들게 했다. 잠시 후, 도착한 승객들과 함께 쏟아지듯 미국에 왔다. 뉴욕까지 날라왔다는 것은 기대와 불안감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던져보기로 한 것이다.    

 

 치과 의사라는 소개팅남과 워싱턴 국립 미술관에서 만났다. 댄디하고 귀족 같은 이미지를 기대했으나 그는 순박한 외모에 피곤과 신경질이 가득했다. 거기에 경상도 사투리는 대화가 아닌 질문 공세였다. 워싱턴에 들어올 때 했던 입국 심사를 또 하는 줄 알았다. 어찌 될 줄 모르는 인연이라 말도 조심스럽고 흠을 잡히지 않도록 최대한 예의 바르게 대했다. 회사의 최종 압박 면접을 보는 것 같았다. 서로에게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관찰하는 부담으로 두통까지 올 지경이다. 면접에 비유하자면 주어진 시간 내에 서로 매력과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대화란 서로 호감에서 오가는 내면의 소통이다. 끌림이 있어야 하는 거지 불편하다는 것은 맞지 않는 옷 같다. 그도 멋진 인생을 위해 서로의 삶을 협업하려고 했으나, 잠깐의 만남으로도 판단이 빨랐던 우리 둘은 원래 각자의 자리로 떠나갔다. 

 두바이에서 14시간이나 걸려 워싱턴에 왔는데, 나에겐 나라와 나라 사이에 거리보다는 마음의 거리가 더 멀다는 것을 알게 해준 만남이었다.

 새로운 만남은 늘 설레지만, 이상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느낌이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구체적이지 않으면 결혼을 못 한다고 하는데 진짜 느낌이 중요한 거다. 결혼의 조건이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 매번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삶의 여정을 함께 하며 내 삶을 여며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 어느 비행에서 만난 인도 승무원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남자는 너를 지켜주지 못해도, 직장은 너를 지켜줄거야.”

결혼으로 인생을 멋지게 바꿔보고 싶었던 나에게 그때 왜 이 말이 생각났을까?    

        

내게 이 직업이 허락되었다면 그건 더 멀고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또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용기 있는 여자로 만든 건 떠나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여행이었다. 어느 순간 이제는 떠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그러면 지구를 돌고 돌아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비행기처럼 스쳐가고, 티켓처럼 튕길 수 있는 낭만적인 워싱턴이여 안녕.      


입국장의 문이 열린다. 귀국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가족, 친구들이다.

내가 누구인지 내 환경이 어땠는지를 바로 직시하며 보여준다. 외국에서 느꼈던 환상도 희망도 없어져버린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두고 왔다.

집밥을 먹고 익숙한 교통 수단을 보면 여기가 집인 것을 느낀다. 완전히 이방인이고 관광객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꿈결처럼 흘러가버렸다. 

공항은 나의 인생에 마법을 걸어줄 희망으로 넘치는 은밀한 탈출구다. 

반복이다. 돌아와도 다시 같은 감정을 느낄테니까. 결국 나는 생물학적인 나를 바꾸려고 시공간을 바꾸어도 우리의 삶을 지하철 순환 노선이고 왕복 항공권이다.      


비행기처럼 스쳐가고, 티켓처럼 튕길 수 있는 낭만적인 소개팅이여 안녕.
지금 저의 기류는 굉장히 불안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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