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의 사물들
승무원도 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근무 중인 승무원의 좌석이다.
1860년대 마차에서 임시로 가져다 설치한 좌석에서 비롯된 말이다. 이건 항공기에서 승객에게 제공하지 않는 보조석으로 비상구, 겔리, 조종실에 있다.
안전 수칙에 따라 승무원은 이착륙 시 정해진 좌석에 앉는다. 승객과 마주 보게 될 때가 있어서 눈이 마주치거나 이야기를 나누곤 하시는 손님들도 있다.
비상시 승객을 대피시키는데 쉽도록 객실 비상구 근처에 설치되어 있다. 평상시에는 공간 확보를 위해 접혀 올라가 붙어 있고 6초 이내에 접고 펼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내가 느끼기엔 딱딱하고 불편한 치과 의자 같이 생겼는데 거기에 꼬빡 앉아서 묶여있어야 하는 느낌 또한 그리 편하지 않다. 차라리 승무원은 승객들이 먹고 자는 그 시간에 돈을 번다. 자유롭게 다닐 수도 있고 먹고 싶을 때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모두 자기 맘이다. 졸음 참기 빼고는 승무원의 시간은 승객들과 다르게 흐른다.
점프식에 앉는 경우는
1. 기내가 흔들릴 때 바로 착석한다. (아무 데나 가장 가까운 점프싯에 앉을 수 있다. 나에게 지정된 내 자리 찾으러 가다가 사고가 나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으면 된다. 마치 자리 뺏기 게임 같다.) 참! 정말 자리가 없을 경우는 승객의 무릎에 앉아도 된다고 매뉴얼에 나와 있다는 것도 승객 입장에서는 재밌고 황당한 사실일 테지만.
2. 승무원의 휴식 시간, 잠깐 앉아 식사하거나 할 일이 없을 때 앉는다.
3. 기내 안전 체크를 마치고 이착륙을 할 때이다.
이때쯤 피로가 많이 누적되어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8시간 내내 비행기에서 잠을 쫓기란 너무 괴롭다. 나를 마주 보며 관찰하고 유심히 보는 승객들의 시선을 받고 있으면 절대 졸거나 자서는 안 된다.
한 번은 눈을 까집고 버티다가 심하게 졸았던 경험이 있는데, 승무원들 모두 착석하라는 기장님의 방송을 듣고 안전띠를 매고 착륙을 기다린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졸다가 누군가 내 발을 툭 하고 건드리는 느낌에 떠보니 다리가 긴 외국 승객이 모르고 닿았는지, 나의 자는 모습이 흉해서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항공사 직원이라 내가 조는 것이 비행 규칙상 위반되어 일부러 센스 있게 깨운 건 아닌지 아직도 별 경우의 수를 생각만 해도 여전히 웃음이 난다. 쿵 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도착해있었더라는 회사가 알면 잘릴 만한 일이다. 문제없이 여태 회사에서 연락이 안 온 것을 보니 내가 안쓰러워 보여서 그냥 넘어갔거나. 회사에 알리는 것을 잊어버렸나 보다.
승객이 혹시 봤다면 오히려 더 민망했을 것이다. 아무리 피곤해서 비몽사몽 중이라도 표정 관리를 해야 한다. 쳐다보는 눈이 몇백 명인가. 어쩔 수 없이 마주 앉은 승객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관광지 정보를 주고받을 때도 있다. 잘생긴 이성이 타면 절대 졸 수가 없어서 유용하다. 그러나 그날은 정신력도 소용이 없었는지 아주 그냥 자버렸다. 다행히 점프싯 앞에 마주 보고 있던 승객들 모두 머리를 젖히고 코를 골며 함께 자는 동안 랜딩을 했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멍하게 앉아 쉬고 있어도 되는 자리가 아니다. 승무원으로서 해야 할 최종 점검의 시간이다.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Silent review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내가 즉각 대응해야 할 일들과 탈출 순서를 리뷰해보고 머리로 시뮬레이션한다. A(Aircraft location), L(my jump seat Location), E(Equipment), R(Responsibility), T(Threat)이다. 비행기가 추락 시, 승객들의 구조 구호는 외칠까는 점프싯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방향의 기준은 조종실이 내 앞에 있는가 뒤에 있는가로 기준 삼는다. 조종실과 반대로 등지고 앉으면 머리 뒤통수를 점프싯에 붙인다. 조종실을 바라본 자리에 앉아있다면 고개를 숙이고 손깍지를 목 뒤에 하고 머리 보호를 위함이다.
점프싯은 승무원의 상징이다. 일의 연장선인 중요한 자리이며, 주목받기 쉬운 거꾸로 앉아있는 자리다. 교회에 가면 장난꾸러기 꼬마가 목사님 설교 중에 앞을 보지 않고 뒤를 돌아 나를 돌아보며 말을 걸고 싶어 눈에 띄고 싶어 안달이 난 모습이 떠오른다.
승객들과 다른 방향으로 거꾸로 앉아있다. 비행의 목적 자체가 반대라는 것이다. 그들은 여행을 가고 나는 일을 하러 집을 떠나왔다.
홍콩 비행 중 있었던 일이다. 우리 비행기가 홍콩에 가까워 왔을 때 태풍이 심하게 느껴졌다. 깡마른 치와와 강아지가 온몸을 떨며 짖어대듯 비행기가 요동을 쳤다.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안전띠를 단단히 조이고 진지하게 죽음을 대비하는 자세로 마지막 임무인 탈출 훈련에서 배운 대로 비상 대비 사태를 그려보았다. 그리고 떠오른 한 생각.
내가 마지막이라면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올랐다. 내가 놓친 건 아닌지 확인을 못 했던 사람. 이 비행에서 살아서 나간다면 그 남자에게 연락해야겠다. 외국의 직장을 택한 것으로 떠났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잘 될 수도 있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았었다고 마음을 전해야겠다. 지금 그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왜 목숨이 위태로운 마지막 순간에 많은 사람 중 왜 그 남자가 떠올랐을까?
삶이 다하는 날 가장 소중한 건 결국, 사람이다.
보통은 점프싯에 앉으면 여러 가지 잡생각에 빠진다. 도착해서 할 일, 여행 계획, 현지에 도착해서 쇼핑할 목록 등을 생각하는데 그날은 달랐다. 피곤하고 어두울수록 생각이 깊어진다. 여긴 어디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난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철학의 기본이 저런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던데, 정말 짧은 시간에 심오한 것을 집중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철학을 다루는 시인이 될 것만 같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시끄럽다. 육체노동이 끝나고 몸이 조금 편해지니 생각을 못 했던 것들에 대해 이젠 반대로 뇌가 극성이다. 마음이 요동치고 감성이 살아났다.
비행기는 까만 하늘 한가운데를 통과하여 별과 구름을 갈랐다. 두바이에서 출발하여 코펜하겐을 가는 비행 중이었다. 인생의 항로에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을 느꼈다. 나는 기내 서비스를 마치고 비행기 창문가의 점프싯(jump seat-승무원들이 비상구에 앉는 자리)에 앉아 틈만 나면 늘 그렇듯 골똘히 생각에 잠겨 노트에 계속 쓰곤 했었다. 비행기에 있는 모든 종이는 노트, 만나는 사람들은 아이디어, 떠오르는 생각들은 습작이 되었다. 불투명하나 이유 없이 설레는 앞으로의 퇴사 후 계획과 일상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Sarah! 너 모해?”
동료들은 나를 사라로 불렀다. 샤넬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이름을 가진 프랑스 승무원 동료가 물었다.
“나 나중에 도자기 공방 내면 이름 뭐로 할지 생각 중이야. 나 도자기 전공했거든. ”
“네 이름이 사라(SARAH)에다가 전공이 도예(Ceramics)니까 둘이 붙여봐”
불쑥 나타난 새빨간 립스틱에 피부가 하얀 샤넬이 말했다.
나의 브랜드 이름이 하늘에서 유레카를 외치며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영어에서 소유격을 나타내는 ‘를 가운데 점을 찍은 공방 컨셉을 점프싯에서 계획했다..
점프싯은 영감이 떠오르는 자리이다. 나를 위한 시간이다. 잠시의 휴식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게 되어 중요한 결정에 이르는 놓치지 말아야 할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비행기에 있는 모든 종이는 나의 아이디어 연습장이 되고 떠오를 때마다 갈기는 메모는 습작이 되었다. 비행이 취미이고 본업은 도예가인 슬기로운 이중 생활인 셈이었다. 세계의 미술관을 돌며 공예의 유행과 작품들을 보고 창업 준비를 해야겠다고 미션을 갖고 있었다.
나의 다음 꿈을 위한 점프의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