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과 스타일
항공사에 입사하니 유니폼을 제공했다.
블라우스 4개, 치마 3개, 바지 1개, 재킷 2개, 앞치마 3개. 같은 옷을 이렇게나 많이 준다. 유니폼을 입고 세상을 누비니 자동으로 마케팅 효과도 있다. 직업의 특수성을 나타낸다. 나와 회사의 경제 활동을 위해 회사에서 브랜딩 해주는 옷이다.
좋은 점은 출근할 때 입을 옷을 걱정하지 않아서 좋다. 비행 후에 세탁소에 맡겨 찾아와 깨끗한 새 유니폼을 입으면 되니까. 가끔 세탁소에 가기가 귀찮아서 몇 번의 비행 후에 맡겨 놓지 않으면 입을 옷이 없어서 냄새나는 꾸깃한 것을 다시 입어야 하는 것은 우리끼리 비밀이다. 환상과 부러움을 자극하기 위해 공항과 기내를 왔다 갔다 한 것이 아니다.
비행할 때 10시간 이상 신었던 팬티스타킹은 땀도 피도 안 통했다. 커피색깔이 나서 커피 스타킹인데 커피향 대신 상상도 못 할 꼬쑨향이 났다. 몸에 붙는 H라인 펜슬 스커트는 하늘에서 배가 부풀어 똥배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타이트해졌다. 프로답게 보이는 블라우스 셔츠는 단추로 되어있어서 기내에서 일하기에 움직일 때마다 치마 밖으로 삐져나와 화장실에 가서 수시로 넣어줘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머리는 쪽 머리를 해서 실핀으로 고정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스프레이를 뿌려 숨도 못 쉬게 했다. 머리를 종일 묶고 돌돌 말아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면 머리카락도 중력을 거스르며 딱 붙어 있다.
그렇게 열사의 나라에서 비행을 하다가 퇴사할 때 기념으로 입던 유니폼을 가지고 나왔다. 승무원 유니폼이 아직 비행기와 나 사이에 탯줄을 못 끊어 냈는지, 빨간 실이 아직도 연결되었는지 유니폼을 부적처럼 옷장 속에 넣어 두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에서 선녀가 사랑에 빠져 땅에 정착해서 날개옷을 비상을 챙겼듯이 나도 언제든지 다시 날개를 달고 어디론가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의미했다.
승무원에서 삶의 방향을 틀었을 때, 도예가로 거듭나기로 했다. 예술적인 감각과 창의성을 살리는 옷차림으로 결정했다. 흙먼지가 묻어도 티가 나지 않는 미색에 세탁이 쉬운 면 티셔츠, 역시 세탁이 편하고 행동에 편한 쫄바지, 작가로 보이는 작업용 앞치마는 모든 옷차림을 작가답게 만들었다. 헤어스타일도 쇼트커트로 바꿨다. 쇼트커트가 어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 본인은 그동안 귀엽고 여성스럽게 하고 다녔을 거예요.
근데 사실은 잘생긴 얼굴이라 짧을수록 더 잘 어울릴걸요? 한번 해봐요. “
그 이야기를 들은 날부터 나는 그 미용실 단골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다 보면 그 역시 단골 이발소를 정해 놓고 8년 동안 자주 갔다고한다. 한번 단골을 정하면 바꾸지 않는 데는 어떤 스타일을 해야 할지 딱 보면 알기 때문이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많은 사람을 스타일링하다 보니 나보다 객관적으로 어떻게 하는 게 어울릴지 아는 것이다. 책속에 주인공들은 티셔츠에 면바지는 세련된 느낌이고 감각 있는 옷차림으로 묘사된다. 하루키 역시 편한 옷차림에 단정한 머리가 글을 쓰는 유니폼이라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나.
그럼 나는 지금은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일에 따라 옷이 가장 먼저 바뀌더라. 도자기를 만들거나 글을 쓸 때, 나는 요가도 안 하면서 쫄바지보다 운동 효과가 날 것 같은 요가 팬츠를 즐겨 입는다. 날씬해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스타킹을 오래 신은 버릇이 있어서 몸을 긴장하게 하는 느낌이 좋은지도 모른다. 모양새 나는 유니폼 대신 감각적인 옷을 내 마음대로 입고 아트를 하겠다고 했다. 누군가는 열심히도 살았다고 한다. 직업 운이 너무 좋아 항공사를 3번이나 갔다고도 한다. 맞는 말이지만 내가 가진 재능을 써먹겠다는 목표가 있었기에 한 우물을 파기보다는 하고 싶은 거 다 하며 살았다.
또 다른 9년 뒤에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다양한 스타일로 바꾸기를 시도하면서 감각 있는 옷을 입고 일하고 싶다. 창의적인 것을 만들고 교육을 하며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해낼 때마다 정체성(Identity) 을 가지겠다. 날개 달린 유니폼은 아니지만, 자신의 개성이 나타나는 가장 나 다운 옷을 입고 나를 브랜딩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