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안 그럴려고 했는데, 또 올라왔다. 쇼핑몰만 가면 물욕과 비교의식과 설움이 물 위로 등장한다.
딱히 사야 할 물건이 있어서 목적을 가지고 가면 기분 좋게 빨리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데, 어느 순간 아이쇼핑을 운동 삼아 돌아다니면 기분이 꼭 상한다는 걸 알았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물건들을 보는 게 재미 없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라앉은 배처럼 멍하니 옆에 있는 나의 단짝은 나의 지랄병을 겪게 될 것이다.
3, 2, 1…. 액션!
여기서는 사람들이 다리에 닿아 흔들거리는 브랜드 이름이 박힌 쇼핑백을 들고 있다.
한 손에는 강아지를
끌고 다니거나,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신이 났고, 남자들은 짐을 들거나 유모차를 밀고 뒤를 적극적으로 따라온다.
큰 화분 옆에 있는 벤치에서 한숨을 돌리려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핸드폰을 보거나, 매장 쪽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는 이들은 남자다. 확 트인 야외 공간에서 열리는 특별 이벤트장에서 고객들의 흥분을 유도하는 음악 소리와 행운권 추첨으로 들썩인다.
브랜드 이미지를 확실히 인지시키는 선명한 간판들, 잘 닦아 놓은 유리 문에는 커다란 SALE 표시판을 붙여 꼭 사야 할 것처럼 유혹하는 이곳은 아울렛 쇼핑몰이다.
에스컬레이터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모자를 쓴 젊은 커플들이 엉겨서 내려온다. 그러더니 팔자걸음걸이로 나이키 매장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같이 밀려들 듯 간 매장에는 계산대 앞에서 차례로 돈을 내려고 줄 선 사람들이 많았다. 피팅룸에 옷을 입어보려고 줄 선 사람만큼, 입어보고 방치한 옷도 잔뜩 쌓여있었다.
상품으로 가득이고, 세일도 가득이다. 나의 마음도 살려고 가득하나, 바닥에 떨어진 영수증들이 굴러다니는 걸 보니 나도 월말이라 빠져나갈 돈이 가득한 걸 깨닫게 한다.
돈을 쓰고 난 뒤 후회하거나 낭비한 느낌이 너무 싫다.
비교하면 마음이 작아진다. 마음이 작아지면 심장이 떨리고 간도 작아진다. 떨리면 몸도 작아진다.
어둡고 슬픈 마음에 잠겨있게 된다. 그 마음은 내 속에 있는데, 표현하지 않으면 모를 것 같아서 잡고 있던 남편의 손을 놔버렸다. 온몸으로 심통을 표현하다가 혼자 매장을 돌아다녔다.
무전기로 책임자를 부르는 스태프들, 서로 스치는 옷걸이 소리, 깡충깡충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 속에서 우리는 왜 쇼핑몰에 있는 걸까.
우리는 다르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다르다. 우리 이거 살까?라고 말하며
”사고 싶은 거 다 사“
”내꺼는 됐으니 세라 꺼 사“
라고 하겠지만.
”왜 이거 안 사는데? “라고 묻지는 못했다. 말 못 하는 마음도 다르니까.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다 같이 다니는 사람, 잡아당기지 말고, 누르지 말고, 빨리빨리 가 잘 안되는 사람이다.
억지로 내 흥을 돋우려는 쇼핑몰은 실패했다. 말 수가 점점 줄고, 발걸음도 느려졌다. 아무리 좋은 물건을 봐도 오히려 마음이 어둡고 무거워졌다. 쇼핑몰에서 내 크기도 개미처럼 작아진 것 같았다. 남편도 말이 없었다.
“우리 얼른 가자. 주차장 어느 쪽이지?” 도망가는 아이처럼 뛰어서 차에 올라탔다.
그의 말 할 수 없는 마음에 화를 못 이겨 배고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미안한 듯 잠잠히 운전하는 그에게 온갖 생떼를 다 피우고 나니 민망해졌다. 창문을 열어 놓고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바람을 맞으며 마음을 식혔다.
마음아 작아지지 마라
어둡고 슬픈 마음이 들지 않게
잡은 그 손 놓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