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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Feb 13. 2020

썸 타는 기내식

비행기 안에서

  


네가 최고, 짱이다, 오케이, 알았어, 지장을 찍을 때
어떤 손가락이 떠오르는가?
그리고 어떻게 동작을 하는지?




엄지손가락이 어떤 나라에선 다른 의미로 쓰일 줄 전혀 몰랐다. 이란, 테헤란 비행에서의 일이다.

자신의 배고픔은 비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특히 식욕은 스스로 챙겨야만 했다. 깜깜한 기내에서 지루하고 심심하면 오감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옆 승객이 먹으면 냄새를 따라 나도 먹고 싶어 진다. 이곳에 있으면 분위기가 먹는 분위기다.

 시속 900km로 구름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에서 식사를 준비한다.

승무원들의 동작들이 물 흐르듯이 신속하고 유연하게 이루어졌다. 이동과 재배치 과정에서 아무런 말이 없다. 서로의 동작을 보기만 해도 그것을 돕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인다. 업무의 반복을 통해 감각으로 익힌 것이다. 아름다운 노동이 뒤에서 펼쳐진다.


무대로 나타나면 경쾌한 미소로 바뀌는 내 이름은 익스큐즈미다. 사람들은 Excuse me, Excuse me 하고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그들은 내게 이런저런 진심을 고백한다. 물을 달라고, 그거 있냐고, 저건 없냐고. 손님들의 팔과 다리를 다치지 않도록 중력을 거스르며 뒷걸음으로 카트를 계속 끌고 간다. 나도 내 이름을 부른다.

 ‘실례하겠습니다’를 연속 재생으로 속삭이면 승객들의 집중을 받는다.

사람 한 명이 지날 수 있는 기내 복도 서면 자동으로 안면 근육이 의식하여 예쁜 표정이 나왔다. 그게 가능하다는 것. 오랜 숙련과 상황의 적응이다.

 비좁은 복도와 좌석 사이를 뚫고 서비스 정신이 넘치는 복식 호흡으로 가능한 목소리가 낭랑하게 들린다. 한 명 한 명에게 메뉴 선택을 묻고 기내식이 전달된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오마샤리프를 닮은 승객이 눈에 띄었다.

탑승할 때부터 눈에 띄게 잘생겨서 승무원들이 갤리에서 수군대던 사람이 분명하다. 조각이 걸어 다닌다는 둥, 멋진 승객이 혼자 타면 싱글 동료들에게 괜한 설렘을 준다. 우리의 눈빛은 영롱하게 빛났고, 승무원들의 분위기는 생기발랄했다.

기내를 돌아다닐 때마다 그와 눈이 자꾸 마주쳤었다. 지나갈 때마다 그의 호감 있는 시선이 등 뒤로 꽂혔다.

마치 내가 목에 두른 아주 긴 스카프의 끝자락을 그가 붙잡고 있는 느낌이다. 허리를 곧게 펴고 엉덩이를 흔들면서 걸음걸이를 의식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메이크업을 고치고 그의 앞을 들락거렸다.

없는 일도 만들어서 굳이 오마샤리프의 시야에 잡히는 구역을 서성이고 있었다.

혼자만의 썸이라 해도 즐거운 자양강장제가 되어주었던 오마샤리프.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하며 썸을 타는 재미에 비행이 힘든 줄도 몰랐다.

“안녕하세요, “닭고기, 소고기 요리가 있습니다. 아라빅 요리는 소진되어서 죄송합니다.”

마지막에 식사를 받을수록 선택한 메뉴가 이미 소진될 수가 있다. 우리 비행기에서는 언제나 아라빅 음식이 인기였다. 병아리콩으로 만든 하무스(Hammos), 일명 걸레빵이라고 부르는 납작하고 얇은 고소한 밀전병, 당근과 샐러리, 허브, 파슬리, 고수, 민트, 오이에 올리브 오일이 들어간 타볼레 샐러드.

“그럼 있는 거 중에 주세요.”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이국적이다. 영어권에 사는 사람은 아니다. 어느 나라 사람일까?

“잠시만요, 그래도 제가 혹시 갤리에 여분의 음식이 있는지 찾아볼게요.”

그가 내 호의에 흐뭇한 표정이다.

남은 음식이 없는 게 분명해도 오마샤리프가 드시고 싶다니 비행기 앞과 뒤를 모두 뒤져서라도 찾아내겠다는 내 태도에 호감 점수 50점 획득이다. 서비스가 진행 중이라 카트를 복도 중간에 세워두고 갤리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인터폰이 없이도 승무원들끼리는 표정과 손 모양으로 소통할 수 있다.

내가 필요한 게 있으면 엄지 척을 하고, 없으면 인상을 쓰거나 입을 동그랗게 해서 노~ 하면 멀리서도 수어처럼 알아들었다. 아라빅 음식이 있냐고 소통하기 위해 내가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하는 표정의 무언극을 했다.

 다행히 여분이 있었다. 어때요? 저 최고죠?라는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들어 오마샤리프에게 썸 섭(Thumbs up)을 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그의 영화배우 같은 미소가 사라지고 당황하는 표정이다.

내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뭐가 문제지? 최선을 다해 겨우 찾아냈는데. 감정 변화가 심하네. 싫증을 잘 내는 스타일인가. 역시 잘생긴 남자는 예민하군.

기내 복도를 아무리 왔다 갔다 해도 눈빛이 오가지를 않는다. 오히려 냉랭해졌다. 이유도 모른 채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꼈다.

갤리에 가서 이런 상황에 대해 동료들과 나눴다. 그러더니 한 승무원이 이란 사람들에겐 엄지를 들어 올리는 동작이 그 나라에서는 쌍욕이란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비행기 한가운데에 서서 엄지 두 개를 올렸다니.

내가 한 쌍 따봉은 정말 쌍욕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모든 승객이 대부분은 이란 승객이었다. 그는 이란계 승객이었던 거다.

바디 랭귀지는 나라마다 의미가 달랐다. 다시 50점이 감점되었다. 아무리 잘해도 한 번에 모든 점수를 잃었다.

 기분이 엉망이 된 승객에게 사과했다. 회사에서 배운 방법이 있다.

음식을 나눠 먹는 기내의 풍경은 이토록 치열했다. 카트에는 작고 납작한 그릇에 담긴 밥이 뒤엉켜 있었다. 모든 서비스를 마치고 15분 동안 식사를 했다.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일한 후에야 노동의 대가로 밥을 먹었다. 밥을 벌기 위한 모든 노동이 우리의 현실과 같다. 할 일을 다 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 고단한 인생이다. 밥벌이는 힘들고, 밥을 먹기도 만만치 않다. 갤리에 커튼을 쳤다. 우리의 인간미 넘치는 허기진 모습을 들키지 않도록. 고개를 숙여 밥을 마주하니 뱃속, 맘속이 헛헛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로 매콤한 썸을 쌈 싸 먹느라 밥이 안 넘어간다. 창피해서 기내로 돌아다닐 기분이 나질 않는다. 기운을 차리려고 트레이에 이것저것 먹을 것을 담았다.

잠시 후, 서비스 콜벨이 울린다. 흥미가 떨어져서인지, 썸의 기운을 잃어 김이 샜는지 움직이기가 싫다.

내 대신 다른 동료가 음료수를 들고 복도 속으로 멀어져 갔다. 갤리에 남은 승무원들은 다음은 내 차례임을 알고 쟁반을 무릎에 올려두고 기다린다. 그리고는 갤리 커튼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동료들이 멀어질 때까지 바라본다.


비행기 창문 덮개를 열고 착륙 준비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쁨과 설렘에 승객들의 표정이 햇빛에 닿으니 반짝거린다. 그 안에서 노동은 아무에게도 없던 일처럼 평온해 보였다.

내릴 때 승객들은 수고했다며 감사의 인사로 엄지를 올려 내게 따봉을 했다. 이건 분명 최고란 뜻이었다. 보통은 그런 뜻이다. 오마샤리프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문화 차이로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그리고 내 구두에 위에 말라붙은 밥알을 보았다. 재빨리 다른 쪽 발로 밥알을 뗐다.

 밥 냄새는 어디에나 스며 있었다.              

Bye, 오마샤리프 

마음으로 인사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기내 서비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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