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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Jan 29. 2020

면접장에서 배운 인생의 뷰티

취업 과정 이야기


나는 승무원병에 걸렸었다.

승무원 준비생들 사이에는 합격을 해야만 완치가 되는 병이다. 항공사 면접을 보러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이다. 합격하기까지 채용 공고가 있는 모든 항공사에 지원했다. 그러면 전에 어디 면접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도 한다. ‘저 친구도 저번에 떨어졌나 보구나’ 이런 생각을 서로 할 것이다. 그러다 정말 지금까지 친구가 된 사람이 있다. 원하는 항공사의 채용 공고가 나면 다 같이 철새처럼 우르르 이동했다.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러다 몇 년이 금방 갔다. 투자한 몇 년이 아까워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서류 포함하여 면접에 몇 번이나 탈락했을까? 너무 많아서 횟수가 정확히 기억 안 난다. 떨어진 이유나 피드백도 없는 면접에서 몸소 패배를 경험하며 실수를 줄여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었다. 대체 승무원이 뭐라고 늘 멀리서 고고한 손짓을 하며 나를 애타게 하는지. 그럴수록 로망은 강해지고 내 마음은 약해졌다. 승무원이 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그런데 또 떨어졌다. 여기까지 왔는데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벌써 몇 년째인데, 메이크업 비용, 정장과 구두, 프로필 사진에 이 취업 준비과정에는 돈이 많이 든다. 붙은 애들은 나와 무슨 차이인지 오기가 생긴다. 오매불망 이것만 생각났다.


승무원 중독병에 걸려서 7년 후에 완치된 이야기는 놀라거나 동정할 일이 아니었다.

난 24살부터 승무원 준비를 시작하여 26살에 3년 만에 되었다. 정말 어느 순간 되어 있었다.

내가 승무원이 되기를 갈망했던 이유는 내 인생을 바꿔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거의 신앙 수준이다.  처음으로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을 스스로 찾았기 때문이다. 사회인으로서 첫 목표라서 더 소중하고 귀한 거였다. 경쟁률이 높고 많이 뽑지 않아서 더 귀했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승무원만 되면 인생이 성공하는 것처럼 말했다. 미스코리아나, 아나운서처럼 되기만 하면 흙수저 인생도 여기서 끝이라 생각했다.

내겐 그나마 지금 상황에서 화려하게 등극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 시간에 다른 공부나 자격증을 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열정, 각오, 오기, 시기, 질투라는 온갖 감정들만 키워나갔다. 준비할 게 뭐가 있나. 합격해야지. 면접을 통과하기 위한 어학 실력? 외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어차피 콩글리쉬에서 업그레이드일 텐데 완벽이란 건 없는 거다. 내가 꿈 때문에 끙끙 앓다가 세월만 죽인 거지.

주변에 다른 길들이 있는데 그때는 승무원 아니면 다 싫었다. 오로지 이 길밖에 없다는 각오가 사람을 지치고 피폐하게 만들었다.


면접장의 모습을 단면도로 보면 여자들이 어디를 가나 일렬종대형으로 나란히 모여있을 거다.

메이크업을 위해서다. 화장실에서는 여자들이 모두 입을 벌리고 립스틱을 바른다. 엄청난 집중력이다.

 거울 앞에서 서로를 흘깃거린다. 화장이 잘 먹었나. 볼 터치가 너무 붉은가. 립스틱이 너무 흐려서 생기가 없어 보이는 건 아닌지. 오늘만큼은 내가 제일 예쁜 날이면 좋겠다.

화장실 세면대 앞 거울은 화장 용인가 세면용인가. 그 앞에서 화장하면 미안해서 비켜줘야 하는 걸 보면 화장이 우선순위는 아닌가 보다. 요리조리 앞뒤 좌우로 움직이며 잠시 그들에게 손을 씻게 공간을 내어주느라 면접장 화장실은 신경전 중이다.

그러나 제발, 이건 미인 선발 대회가 아니다. 그랬다면 나는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단지 두 다리를 모았을 때 붙을 것, 이가 가지런할 것, 피부가 깨끗하고 건강해 보일 것. 이 정도면 평범한 기준인지 모르겠다.

진짜 승부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재치와 순발력을 담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어떻게 발산할 것인가에 달렸다.

화장실은 전쟁이라며 얼른 나와 대기실에 들어갔다. 여기도 아무 데서나 사람들이 손거울을 꺼낸다. 입을 벌려 미소 연습을 하는 듯하더니 립스틱을 바른다. 완벽하게 선명하고 촉촉한 입술을 위해 긴장으로 바짝바짝 마른 입술을 채운다. ‘빱빠빠빠’ 윗입술과 아랫입술로 만드는 소리 중 립스틱이 자연스럽게 퍼지게 하는 마지막 터치다. 지속력을 위해서 한 번 더 티슈를 입술 안에 넣고 ’ 압’. 앞니에 묻어나지 않게 하는 도장 찍기다.

10명을 선발하는 자리에 한 조에 7명씩, 하루에 30조는 되는 듯하고, 면접은 5일 동안 진행한단다. 경쟁률을 보니 불안해서 대범하기가 쉽지 않다. 분위기에 휘말려 가방에서 화장품 파우치를 열게 된다. 작은 것에 완벽하기 위해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면접에서 답변할 내용과 자신감인데 대기실에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장 두려운 건 지금처럼 원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울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스스로 간절함을 확인하는 것이다.

모두 혼자 이곳에 와 있으며 경쟁자이다. 아직은 친구이자 동료는 아니다.

“어땠어요? 뭘 물어보던가요? 분위기는 어때요?”

면접을 마친 지원자가 대기실로 들어온다. 숨죽이고 탐색을 한다. 갑자기 이때부터 동병상련이 된다. 방금 면접 보고 나와서 정신이 혼미한 지원자의 표정은 메이크업으로 감춰지지 않는다. 아이라인을 그리는 일처럼 위태롭고 예민한 표정이다.

“정신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면접 잘 보세요... “

면접 진행을 위한 관계자도 마스카라를 칠하듯 눈꺼풀을 들어 지원자들을 살핀다. 누구를 고정하여 보고 있는 것인지 안경 너머로 짐작할 수 없는 눈빛이다.

아이라인을 그리다가 갓길로 새지는 않았는지 눈에 경련이 날 지경이다. 대기실에서부터 이러면 면접장에 들어가서는 어쩌려고 난 이리도 쫄아 있는가. 단 한 번의 기회라고 하면 뭐든 부담이다. 본모습을 보여주려면 여유를 가져야 한다.


자~! 시원하게 에어쿠션을 덧바르자. 시간이 지나면 다크 현상(얼굴 톤이 어둡게 회색 조로 지저분해짐)이 생겼다. 내 지원 번호가 불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팡팡! 두들기며 초집중이다. 거울 속 나는 물아일체다. 들뜨지 말고 잘 붙어 있어라. 화장이 아니면 내가? 찰칵. 셀카 찍는 소리는 아니고 콤팩트 뚜껑이 닫히는 소리다.


 면접 준비부터 모든 과정은 여성적이다. 그러나 입사 후, 실제 업무는 남녀가 평등하여 거칠고 오히려 남성성이 강하다. 아이라인의 두께와 방향, 마스카라의 높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마음 자세가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내 차례가 다가왔을 때, 자유롭고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감이 넘치게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를 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면 기회를 주지 않을까를 생각하니 진심으로 간절히 원했기에 고생하며 진지하게 준비했던 경험들이 타임랩스처럼 스친다. 면접관을 만나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주로 성과를 이뤄낸 경험 위주로 나를 계속 도전하게 만든 부분을 자랑스럽게 스토리텔링 했다. 면접에서 그들이 듣고 싶은 인생이 나였다.

면접은 연애의 모습과 닮았다. 주어진 시간 내에 매력과 호감을 느끼지 못하면 최종 면접 즉, 애프터가 없다. 면접에서는 이력서에 나온 경력보다 면접자의 본모습과 성격을 보려고 한다. 알면 좋아진다. 관심을 가지면 금방 보이는 것처럼.

상대방의 조건보다는 첫인상과 호감이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고 그동안 어딨다가 이제 나타났냐고 고백을 하는 과정이다.

종종 멋지게 한 말씀을 해야 할 자리나, 면접처럼 나를 짧은 시간에 소개해야 할 일들이 생길 때 이런 생각을 한다.

1. 눈치 보면 자존감이 떨어진다. 잘 보이려고 부담을 가지면 형식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된다. 자신감은 말과 행동이다. 자신에게 굳은 믿음과 신뢰가 필요하다.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당황하지 마시길. 누가 연애를 할 때 질문과 답변을 미리 준비하겠는가.
2. 수다 떨면 모두 떨어져 나간다. 자기 이야기만 계속하고 동문서답, 흥분(과장 행동), 과도한 긴장으로 말이 많이 하게 되면 손해다. 명랑이란 유쾌하고 활발한 에너지로 주변을 밝고 환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해맑게 들뜨고 어수선하다는 의미와 다르다.
3. 감각이 떨어지면 매력 떨어진다. 세련미와 따뜻함을 갖추면 그것으로 완벽하다. 센스란 내면의 에너지에 가깝다. 갖춰진 매너가 쌓여 습관이 되듯이 말이다.


승무원 준비생을 졸업하던 날, 경쟁, 조바심, 두려움은 곧 내게 다가올 희망의 뒷면에 있다는 걸 알았다. 마치 그걸 아는 듯이 한껏 웃어 본다. 날 기다리고 있는 세상으로 가는 기회의 문이 열렸다. 가장 기쁜 것은 내 노력과 마음을 알아줘서 오랜 목표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내가 생각하는 매력 있는 사람은 실패해도 자신을 끝까지 믿어준다. 결국, 나를 인정해 주고 좋아하는 면접관을 만난다. 또는 그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매력이 없는 사람은 몇 번의 실패로 자신은 안 될 거 같다며 금방 포기하는 걸 봤다.

진한 인간미를 풍기며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인생이 장거리 경주라면, 완벽하게 말만 잘해서 업어달라는 사람과 함께 갈 것인가. 아니면 진솔하게 뭐라도 함께 하자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과 뛸 것인가.

직업을 떠나서 누군가 매력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감있는 모습, 그 사람의 근성과 태도에서 나온다.

결과는 각자의 몫인 우리의 태도에서 나온다. 너무 괴롭고 마음이 기쁘지 않고 자괴감이 크다면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포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빨리 깨달을수록 좋다. 버티는 노력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린 다른 걸 해도 열심히 열정적으로 할 사람들이다.

노력보다는 자신감과 용기가 더욱 필요한 시대 같다.          

    

꽃밭만 다니세요~!




도자기를 만들다말고 승무원이 되어 85개국을 비행했어요.

퇴사 후가 진짜 시작이더군요. 버텨냈더니 이야기가 되더군요. 할 이야기가 많이 쌓이니 강연을 하고 계속 도자기와 글을 빚고 있습니다.  sarahmics@naver.com

인스타그램 @sarahmics_k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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