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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쌤 Jul 01. 2024

채식주의자 (한 강)

그녀가 간절히 쉬게 해주고 싶었던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는지도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견디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폭력일수도, 어떤 사람은 남들의 시선일수도, 어떤 사람은 끓어오르는 자신 안의 열정 혹은 욕망일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이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책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책이다. 해석도 여러 갈래로 나뉘며, 나 조차도 이 책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인터뷰를 보아도 이 책은 질문을 하는 책이지, 대답을 하는 책은 아니라고 한다.


채식주의자를 읽다보면 피폐해진다고 하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기괴하고, 어떤 면에서는 슬프고 잔인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아름다운 이 소설이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유명하고 예술적인 상을 받아서도 아니고, 재미있어서도 아니고 그냥 한 번 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인간과 이 세상에 대해 사유하기 좋은 책이다.


*줄거리


주인공인 영혜는 특별할 것 없는 아주 평범한 여자였으나, 어느날 꿈을 꾼다. 그 꿈을 꾸고 나서의 영혜는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남편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중요한 자리에서도 우유도 마시지 않고 채식만 고집하며, 가죽 옷과 신발도 다 버린 영혜는 전과는 조금 다른 특이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사실을 온 가족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영혜를 다시 그 전으로 돌리려고 한다.

월남전 참전 용사인 영혜의 아버지는 특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딸의 입에 억지로 탕수육을 집어넣으려고 하거나 뺨을 때리기까지 한다. 그 사건으로 영혜는 가족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손목을 긋고 정신병원에 실려간다.

정신병원에 실려간 영혜는 그 뒤에도 육식을 거부하며 가끔 햇볕이 좋을 때는 상의와 속옷을 벗은 채 가만히 마치 광합성을 하는 것처럼 앉아있기도 했다.


그 뒤로 영혜는 점점 더 생기를 잃어갔고 사람이 아닌 나무나 꽃이 되고싶어했다. 아니 어쩌면 계속해서 죽고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예술가인 형부가 나체인 몸에 꽃을 그리고 촬영을 하자는 이상하고 변태스러운 제안을 해도 오히려 좋아하며 어떨 때는 물구나무를 서고 한참 있기도 했다.

이미 영혜의 남편은 영혜를 떠났고, 가족들마저 영혜를 버렸다. 영혜의 언니만이 영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해 너무 말라버린 영혜는 30kg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영혜를 살리기 위해 언니도 노력을 다하지만, 삶에 지치는건 어쩔 수 없다. 영혜의 언니인 인혜도 돌봐야하는 자식이 있으며 남편도 떠나 기댈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남편이 기댈 곳이 되어주지도 못했다.

인혜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큰 딸로 살아온 무게감, 그리고 집을 떠난 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살아온 힘겨운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았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동생 영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인혜를 덮쳤다. 인혜는 그제서야 영혜의 마음을 이해한다.


폭력의 고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영혜를.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영혜를. 인간이 아닌 식물이 되어 땅속에 뿌리내리고싶어했던 영혜를. 모든 삶의 고리를 놓아버리고 싶었던 영혜를. 그제야 이해한다.


*

영혜의 '채식 주의'는 영혜가 그동안 억압받고 폭력에 고통받던 시절을 풀어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영혜에게는 그것만이 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살기 위해 채식주의를 선택했던 영혜에게 사람들은 더 가혹한 폭력과 시선을 들이민다. 우리는 누군가가 살기 위한 수단을 단순히 특이하고 이상한 것이라 치부하며 무시하고 있진 않을까. 그 사람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수단마저 묵살하고 있진 않을까 생각해볼 지점이다.


*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녀가 간절히 쉬게 해주고 싶었던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투영한다. 이 책에서는 인혜가 그랬던 것 같다.

영혜의 언니 인혜가 견디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과 자기 내면의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어도 참고, 기대지 못하고 계속해서 일하고, 누군가를 감싸고 지키는 일을 평생 하고 있었다. 심지어 남편을 선택할 때에도 남편이 너무 지쳐보이고 항상 힘들어보여 쉬게 해주고 싶다는 일념하에 결혼을 택한다.

하지만 그녀가 쉬게 해주고 싶었던 것은 남편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었다. 그가 쉬어서 편한 것이 그녀를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투영했던 것이다.

인혜는 마지막까지 모두 포기한 영혜를 포기하지 못한다. 영혜가 편하게 숨쉬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돕는 모든 노력이 사실은 영혜가 아닌 인혜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

'아내는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신이 자기중심적이고 무책임한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내의 인내와 선의가 숨막힌다고, 그래서 더더욱 자신이 나쁜 쪽이 되어가는 거라고 강변하고 싶었다'


우리는 가끔, 나 자신만을 위해 남을 이상하고 나쁜 사람으로 몰아간다. 그것이 더 이기적인 행동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리화를 멈추기 어렵다. 그게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인내로만 단단히 뭉쳐진 그녀의 삶도 함께 떠밀고 하류로 나아갔다.'

내가 살아가면서 견디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내가 찾고싶은 자유, 내가 이루고싶은 욕망은 무엇일까. 그것이 시간에 씻겨 내려가기 전에, 극단적으로 표출되기 전에,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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