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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쌤 Jun 27. 2024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신성한 것, 가치가 있는 것, 존중할 만한 것은 무엇으로부터 연유하는거지





나는 불교는 아니지만, 불교의 교리를 좋아했다. 


대학생 때 교양으로 들었던 한국사상의 지평이라는 수업에서 불교철학이라는 책을 읽은 뒤부터였던 것 같다. 


'모든 집착의 고리를 끊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누구나 열반에 오를 수 있다'라는 말이 욕심과 집착 속에서 사는 나에게는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불교의 완연한 목표는 '생사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집착과 윤회의 고리를 벗어던진 해탈'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게 가능한가 싶었다.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수행을 하는 스님들은 가능한 삶일지 몰라도,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 마음에서는 속세의 욕심이나 집착을 끊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싯다르타는 수행을 열심히 하기도 하고, 타락에 빠져보기도 하며 자신만의 깨달음을 완성한다. 삶의 모든 것을 뒤로 미뤄두고 대단한 수행을 거치는 사문이나 승려의 삶도 나타내지만, 직업을 가진 보통 사람, 그리고 자식을 가진 아버지 등의 보통 삶을 가진 사람에게서의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완전무결하게 고귀하고 고고한 깨달음, 그러니까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를 한심하게 보고 사치하고 향락을 즐기는 삶들을 무시하는 깨달음이 아닌 내 삶 속에서 다른 사람과 사물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사물과 사람을 사랑하고 그것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깨달음.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특히 좋았던 장면 중 한 가지는, 아버지가 된 싯다르타의 마음이었다. 


싯다르타는 어렸을 때,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서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는 사문 생활을 시작한다. 아들일 때의 싯다르타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그 마음을 몰라주는 아버지에게 강경한 태도로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싯다르타는 그렇게 집 밖을 나와 수행을 하다가, 어떤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들까지 생기게 되는데, 그 아들을 아주 나중에서야 만나게 된다. 아들을 만나게 된 싯다르타는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아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지만, 아들은 그동안 몰랐던 사람과 함께하는 삶이 불편하기만 하다. 아들은 온갖 불평불만을 하고 집을 나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싯다르타도 아들을 내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아들이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그 진실을 싯다르타는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수많은 수행을 하고, 아주 많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너무 사랑해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 수많은 수행과 깨달음은 의미가 없어졌다. 인간에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고통과 번뇌가 자신의 아들에게만큼은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대단한 깨달음도 아무 의미 없게 되는, 싯다르타도 어느 평범한 아버지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강력한 사랑이었다.



*

'당신이 어린 아들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그 아이에게는 번뇌와 고통과 환멸이 면제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기 때문에, 당신 아들에게는 그 길이 면제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믿고 있는 겁니까? 그렇지만 설령 당신이 아들 대신 열 번을 죽어준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 아이의 운명을 눈곱만큼이라도 덜어 줄 수는 없을 겁니다.'




*

'그는 이 사랑이, 자기 아들에 대한 이 맹목적인 사랑이, 일종의 번뇌요, 매우 인간적인 어떤 것이라는 사실과, 또한 이 사랑이 윤회요, 흐릿한 슬픔의 원천이요, 시커먼 강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동시에, 그 사랑이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랑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자신의 본질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느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문들은 사치나 향락, 사랑을 경험해보지 않으면서 이론으로 또 수행으로 그것이 왜 나쁜지 깨닫고자 한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직접 부딪혀본다. 어는 누군가의 깨달음을 따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고자 한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이론으로, 생각으로만 깨달음을 얻을 순 없다. 직접 경험해 보고, 부딪혀 보면 덧없는 것이 무엇인지, 진리란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다는 싯다르타의 말 한마디가 이 책을 관통하고 있었다.




*

'이처럼 무엇인가를 추구함 없이, 이처럼 단순소박하게 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니,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다.



이 책에서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고자 여러 힘든 시간을 거친다. 그 이후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고자 힘든 수행을 잠시 멈추고 도시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싯다르타의 시선의 변화를 나타내는 문장이었다.


집도 없이 수행을 하다 보니 배도 고프고 몸도 아프고 힘들었던 그 과정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세상을 냉소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집착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였지만 남이 얻은 깨달음을 똑같이 얻고자 하는 그 마음 자체가 집착이었던 것이다. 




*

'사실상 사람 사는 실정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군요. 누구나 서로 주고받는 것,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요.'


*

'자기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있었으니, 언제나 가장 현명한 자였고, 언제나 최고의 열성파였으며, 언제나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으며, 언제나 학자이자 사상가였으며, 이런 교만한 마음속으로, 이런 정신적 성향 속으로 자기의 자아가 살며시 파고들어 와서는 거기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고 앉아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동안, 자기는 단식과 참회로써 그 자아를 죽이려고 하였던 것이다'


*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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