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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arling Nov 04. 2021

삶과 예술을 함께하는 부부 아티스트

#011 열한 번째 이야기

보통 운전은 남편한테서 절대 배우면 안 된다는 말과 부부가 함께 일하면 이혼할 확률이 더 높다란 말이 있다. 이런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예술인 부부가 있으니, 나이 스무살도 안되어 만나서 30년을 함께 해온 라 치카 La Chica (Francesca)와 안드레히 Andreji 부부이다. 이렇게 젊은 시절에 만나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한 것도 모자라, 플라멩코 공연과 워크숍을 함께 기획, 제작하며 세계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예술가 부부이다.


 라 치카 La Chica와 안드레히 Andreji 부부


말따 Malta 출신의 플라멩코 댄서인 라 치카 La Chica (Francesca)는 170cm이 훨씬 넘는 훨칠한 키에 팔다리가 시원시원한 긴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구불구불한 검은 머리카락과 커다란 눈에 검은 피부는 감히 그녀를 집시라고 착각하게끔 한다. 오랜 세월을 세비야에서 지내서일까? 그녀는 이미 집시 같았다. 세르비아 Serbia 출신인 안드레히 Andreji는 단순한 타악기 연주자 Percucionista,  카호니스타 Cajonista가 아니다. 180cm가 훨씬 넘는 키에 외모, 몸매, 머리, 매너, 유머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무대 예술을 전공한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그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에서 아무 지식도 없는 무대 조명을 똥 배짱으로 밀고가, 무대 조명 감독으로 2년간 일을 하기도 했었었다.(하루하루를 전투를 치르듯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플라멩코를 접했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유럽으로 돌아와 세비야에서 플라멩코의 삶을 개척해나갔다.

 

안드레히 Andreji (왼쪽)와 라 치카 La Chica (Francesca) (오른쪽)


이 부부는 개인적으로 각자 댄서로써, Percussionista 로써 세비야의 여러 따블라오 Tablao에서 일을 하면서,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팀을 만들어 공연을 기획하여 세계 여러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여러 공연과 워크숍들을 연다. 그들이 몸 담고 있는 그룹으로 Puerto Flamenco와 Entick를 들 수 있다.


Puerto Flamenco는 정통적 플라멩코와 현대적 플라멩코 두 형태 모두를 끼고 있다. 매년 자체 기획하는 그들의 공연은 언제나 새롭고 획기적이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었던 공연들을 예를 들어 보자면, 말따 Malta에서 열었었던 공연들이다. 2012년 "링 Ring" 이란 이름으로 공연을 기획하였었다. 권투의 링을 모티브로 가지고 와 공연을 1,2 3, 라운드 식으로 나누었다. 또한 원형극장을 이용하여 공연 내내 아주 조금씩 무대가 돌아가, 360도로 모든 관객들이 보는 것을 감안한 연출을 기획하였다. 첫 라운드에서는 라 치카 La Chica와 안드레히 Andreji가 소림사에서나 입을 듯한 의상을 걸치고 무대에 나와 대결을 하듯 발소리와 카혼 소리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치덕거린다. 그녀의 긴팔과 긴 다리, 큰 키는 시원시원한 플라멩코 안무들을 보여준다. 단순한 그녀의 팔 동작은 그냥 단순한 하나의 동작으로 보이지 않고, 공간의 이동성과 시간이 잠깐 멈추는 듯한 기이성을 자아낸다. 안드레히 Andreji의 길고 커다란 손으로 치는 카혼은 엉덩이를 들썩들썩하게끔 만들고, 리드미컬하고 격렬한 리듬은 심장을 제멋대로 쿵쾅쿵쾅 거리게 했다. 이들 중간에 심판처럼 나와서 중제하는 색소폰 올리버 Oliver Miguel의 제치있는 연주.... 2라운드에서는 그 유명한 Maria Pajes(MP)의 수석 기타리스트인 피티 Fyty와 에드와르도 Eduardo Trassierra가 대결하듯 서로 마주 앉아서 연주를 했다. 하물며, 3라운드에서는 깐떼인 앤까르니따 아닐요 Encarnita Anillo가 나왔다! 세비야에서 우연히 그들의 연습실에서 그녀를 우연히 보고 얼마나 열광했었었는지! 한국에서부터 익히 들어왔었던 그녀의 목소리! 정말 화려한 캐스팅이었다! 이들은 원형 무대의 성격을 잘 살려 연주자들을 한켠에 배치했고 댄서인 라 치카 La Chica의 하얀 바따 데 꼴라 bata de cola가 잘도 휘날리며 빨간 무대를 장악했다. 이렇게 각 라운드마다의 배치와 아티스트들 각자의 수준 높은 연주 실력, 그녀의 춤 공연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관객들을 휘어잡았다. 그들의 공연은 플라멩코를 잘 아는 이들에게는 새롭고 신선한 컨셉의 플라멩코를 선사해 주었고, 플라멩코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플라멩코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게 만드는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MLWuaPhHGk

 "링 Ring" 공연


공연 "Isla"는 첫 장면부터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처음 라 치카 La Chica와 안드레히 Andreji가 내게 이 공연을 위한 의상 제작을 제안했었을 때부터 무척이나 이 공연을 기대했었다. 이 부부가 내게 제작해 달라고 한 의상은 족히 2m 50cm나 되는 길이에 넓이가 360도가 되어야 하는, 바따 데 꼴라 bata de cola (꼬리가 길어 바닥에 끌리는 치마) 보다도 더 긴치마였다. 이런 치마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공연에서 연출될지 꽤 궁금했었다. 무대 조명이 켜지자, 무대 한가운데에 그녀가 공연의 제목처럼 "섬"처럼 홀로 서있었고, 양쪽으로 연주자가 사다리처럼 높은 의자에 앉아서 연주를 시작한다. 그로테스크한 연주에 맞춰 그녀는 팔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금씩 움직임이 빨라지고 격정적이 되자 어느 순간 그녀는 그 길고 무거운 치마를 망토마냥 휘어잡고 휘둘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첫 장면은 가슴에 확 인장을 찍고 나갔다. 멋진 시작이었다. 공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검은 페인트로 현대 인간사를 과감하게 그려나가는 페인팅 아티스트 파트리코 Patrico Hidalgo가 무대 배경에 이미지를 조금씩 채워나갔다. 이들의 공연을 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섬이 있다"라고 하던 장 그르니에의 시, "섬"이 떠올랐다. 이 모든 움직임들이,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을 위한 우리들의 몸부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그리운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물어본다. 스스로를 고립하는 게 진정 나를 위한 일이고 남을 위한 일인지.... 라 치카 La Chica와 안드레히 Andreji 가 관객들에게 얘기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었을까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이를 종용하는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Bt00JdRGHBc

공연  "Isla "

 

Etnika는 그들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말따 출신의 아티스트 친구들과 함께 기획하여 만든 팀으로, 말따 Malta의 잊혀져가는 전통 음악을 살리는 동시에 각자 아티스트들의 장르들을 융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기획하였다. 이로써, 말따 Malta 자국의 뿌리를 이어가며 현대적 감각이 가미된 독특한 예술 작업을 창출해냈고, 이는 자국 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나라의 페스티벌 Festival에서도 콜 신청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플라멩코 댄서인 La Chica (Francesca)는 플라멩코 슈즈의 앞, 뒤에 박힌 금속을 이용해서 내는 발소리로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 냈고, 플라멩코에서 자주 사용하는 망토 manton와 부채 abanico를 나름 재미있게 풀어나가, 플라멩코의 경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Etnika 공식 사진, 자랑 좀 하자면, 내가 제작한 의상을 걸친 라 치카 La Chica가 맨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WGUvRqgNF0


라 치카 La Chica (Francesca)와 안드레히 Andreji 부부의 공연 사진들을 보면 스타 star 처럼 빛나고 화려하다. 이런 화려하고 눈부신 이면에는 그들의 피땀나는 강도 높은 꾸준한 연습과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열려있는 사고를 고수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공연을 보고, 전시를 보고, 영화를 보고, 여러 사람들과 많은 생각들을 주고 받는 삶의 현장에서 살아간다. 대량생산,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들의 몸값을 깍아 내리려는 시스템에도 굴하지 않고 어려워도 외길을 묵묵히 걸어나가는 이들 부부를 가슴깊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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