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없이 이사를 하리라는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친정 엄마마저 이삿날 골프 여행을 갔다. 골프 약속은 본인상이 아니고서야 절대 취소할 수가 없다나. 신경전을 벌이다가 불참 벌금을 니가 내줄 것이냐는 대목에서 울컥했다. “오지 마, 나 혼자 할 거야!” 그렇지만 남편 없이 이사했다는 여자들은 더러 봤어도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이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전세대란 속에 눈 빠지게 인터넷 창을 들여다보고 회사 점심시간마다 짬짬이 발품 팔아 구한 집이다. 이사 한 달 전부터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지만 막상 준비한 것은 별로 없었고 그저 싹 다 내다 버리기만 했다. 2주 남기고 더듬더듬 이삿짐센터를 정했다. 인기팀은 예약이 어려웠다. 일할 사람을 한 명 더 배정해주겠다는 곳으로 했다.
나의 첫 신혼집은 오전에 텅텅 비었다. 그러나 짐을 다 빼도록 오지 않는 부동산 중개업자 때문에 시간표가 뒤틀려버렸다. 늦게 나타난 중개업자는 관리비·가스비를 정산한 날짜가 이틀 전이라며 트집을 잡는다. 쓸데없이 너무 부지런을 떨었다. 이틀 동안 가스 한번 쓰지 않았건만, 쓰다 남은 종량제 쓰레기봉투 한 뭉치로 퉁치자고 협상했다. 그제야 중개업자는 집주인에게 잔금 입금해달라고 연락을 취한다.
이사 갈 집에 잔금 치르기로 한 시간이 12시, 이쪽 집주인은 약속한 11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아직이다. 호랑이처럼 무서운 두 집주인 사이에서 내 발만 동동이다. 새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완납 전에 이삿짐은 한 톨도 내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둔 터라 모두 그저 대기하고만 있어야 했다. 잔금이 가장 떨렸던 순간이다. 어찌나 긴장되던지 0을 몇 번이나 세어봤다. 확정일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렁이에게 부동산에선 현금으로 준비해 간 복비에 살포시 부가세를 붙여 받는다. 이래저래 이사 한 번에 길바닥에 사라지는 돈이 가히 천문학적이다.
기업 총수가 된 양 진종일 분주하다. 통신 기사, 도시가스 기사, 도어록 설치 기사 등이 제각기 자기 일을 하러 왔다 갔다. 덩치 큰 아저씨들 모두가 나의 지시와 확인을 기다리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이사가 일상인 사람들 사이에서 총수는 점점 작아진다. 시끌벅적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더니 모두가 돌아가고 혼자 남게 되자 헛헛하고 허전하다. 스마트폰은 내 머리만큼이나 뜨끈뜨끈해졌다.
혼자 하더라도 이사 절차는 지켜야 한다. 저녁 7시, 자장면을 시켜 먹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경비 아저씨에게 중국집 전화번호를 묻는 김에 아저씨 몫으로 짬뽕 한 그릇을 더 시켰다. 어쨌거나 누구와 자장면을 나누었으니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나 오늘 여기서 혼자 자? 그날 나는 낯선 집에서 누울 자리를 찾지 못하다가 스르르 그대로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주말에 온 남편은 혼자 이사하게 해 미안하다며 꽃다발을 건넸다. 다음날 골프여행에서 돌아온 엄마는 가구 배치가 왜 이러냐며 잔소리 방출. 그 입 다무시라, 난 이제 정말 뭐든지 혼자 할 수 있는 여자야! 이 집에서 아이도 갖고 돈도 많이 모아야지. 아뿔싸, 전입신고를 아직도 안 했다. 내 이사의 끝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