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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희 Feb 15. 2022

촌스럽게 자라렴

나에게 만약 아이가 있다면

나랑 생일이 같은 김태리. 내가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어쩐지 내가 낳은 아이처럼 마음이 요동치는 귀여운 아기. 내 친구 태리 엄마는 아이를 시골에서 키우고 싶어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귀촌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머지않아 뒤따라가겠다는 귀여운 엄포를 내려놓기도 하는 중이다.


친구와 나는 아이의 성장관에 있어 비슷한 생각의 결을 가지고 있다. 나는 태리가 촌스럽게 자랐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강아지에 발이 묶여 지각도 해보고, 소똥을 밟아 풀에 신발을 쓸어보기도 하면서. 먼 훗날 어떤 곳 어떤 모습으로 있든 한 여름날의 우렁찬 풀벌레 소리와 비가 내린 후 녹진한 풀냄새를 떠올릴 줄 아는 그런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 치열한 학업 경쟁 속에 사느니 그냥 배짱이가 되었으면 좋겠고, 직위의 욕망보다는 적당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친구의 아이도 이토록 사랑스러운데 내 속에서 길러낸 아이는 얼마나 이쁠까. 어쩐지 내가 여태껏 경험한 행복의 총량을 거뜬히 넘어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현재 아이를 가질 마음은 없다. 허나 딩크족은 절대 아니다.


"남편을 쏙 빼닮은 아이가 나오면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울 것 같아요." 딱 이 정도까지의 마음이 한계점, 그 이상의 어떤 마음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 나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는 어쩐지 아이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 말인즉슨 이러한 환경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 마음 또한 변할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 귀촌을 결심한 여러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야만 내 아이를 가지고 싶은 확신 또한 거뜬히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자연과 함께 할 때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치들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니 이 환경을 구축하는 것에 정말이지 열심히 노력할 예정이다.


남편의 경우 '기꺼이 행복하게 희생하는 부모의 삶'을 경험하고 싶어 아이를 원하고 있다. 사실 아이를 갖고 말고의 문제는 100% 우리 의지만으로는 채워낼 수 없는, 여러 변수가 개입되는 난제라 딱 이 정도 생각까지만 하는 중인데, 어찌 됐건 임신과 출산의 영역은 내 선택에 온전히 따라주기로 했으니 우리가 부모가 될는지 말는지는 두고 볼일이다. 여하튼 만약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는 무진장 촌스럽게 자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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