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서울 관악구의 우리집에서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어머니의 60번째 생신 파티와 곧 정년을 앞둔 아버지의 은퇴식을 겸해 작은 파티가 열린 것이다. 사정이 있어 귀향하지 못한 우리 부부를 배려해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누나, 매형이 친히 서울로 올라오셨다.
두 분의 건강을 기원하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는 기쁘고 행복한 자리였다.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고 동네산책도 하고 부모님께 감사패를 전달하는 시간도 가졌다. 집과 식당, 길 곳곳에서 우리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모두의 얼굴에는 진한미소가묻어났다.
하지만 미소 뒤 내 마음 안에서는 들뜨지 않고 조금은 가라앉은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티는 안 내려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나만의 착각일지도), 내 안 감정의 추는다소 무거운 쪽으로 기울어진 듯했다.
저녁 자리에서 아버지와 들이킨 소주가 많아 마음이 약간 싱숭생숭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 마음 한 편에 쌓여있는 부모님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수면 위로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진 것 같았다.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분이 한 가정을 꾸리고 일구며 40년 가까이를 살아온 이야기를 대략 밖에 알지 못했다. 몰랐다는 표현보다는 이해하고 알려고 애쓴 적이 없어 아는 게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긴 하겠다.
두 분의 밑에서 자라는 동안 난 두 분의 삶에 대해 이따금 이야기를 듣거나 부분 부분 목격하며 살았을 뿐 두 분의 삶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했던 적이 거의없었다. 부모님에게는 부모님의 삶이, 내게는 내 삶이 있을 뿐 두 것이 크게 닮지는 않았다고 난 여기는 편이었다. 애초부터 다르기에 난 부모님의 삶을 이해할 필요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 스스로가 이제는 어른이 됐다고 느낄 무렵부터 이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각자가 지나 온 시대는 달랐지만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온 방식과 내용이 보다 이후의 내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됐다.두 분이 만나 가정을 일궈 온 것도, 고된 사회생활로 밥벌이를 해 온 것도, 때론 좌절했지만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발버둥 치며 고민해 온 것도 내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미래 역시 두 분의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 닮아 비슷해질 것이라는 점도 확신하게 됐다.어쩌면 태초부터, 부모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들과 자식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문명의 발전 등 대외 요소를 제외하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제서야 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한때는 다소 이해 가지 않았던 부모님의 말과 행동이 어떤 맥락에서 비롯된 것인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어렴풋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해가 된 만큼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꿋꿋이 살아온(혹은 버텨온)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여우면서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부모님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는 말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하기 시작한 때에는 부모님은 이미 나이를 충분히 드셔서 자식과 보낼 앞으로의 시간이 많이 줄어든 상태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자식들에게 긴 시간이 허락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년 6월 3일 어른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