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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비니 Jul 24. 2020

난임 치료, 기다림의 연속 간절함의 연속

시험관 아기 시술 2번의 실패기

아기 콩이의 토끼 인형 친구 '젤토'. 잠 잘 때 가장 가까이 콩이를 지키는 인형이다.

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를 '기다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험 성적 발표를 기다리는 일, 메일 답장을 기다리는 일처럼, 어떤 결과(또는 소식)를 확인할 수 있는 바로 그때가 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서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나는 몹시 버티기 힘들어한다. 특히 특정 결과가 나오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상황이라면 기다리는 일은 더욱이 어렵다.


돌이켜 생각하면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도 많은 부분이 기다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나와 아내는 매 시술 단계마다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할 일이 많았다. 배아를 이식한 이후 1차 피검사를 받기 전까지, 우리 부부가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할 수 있었던 일도 조마조마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차라리 수능시험 같은 것이었다면 시험 성적(결과)이 발표되기 전 가채점 숫자를 근거로 입시 전략을 세우거나 재수학원을 알아보는 등 다음 과정을 위한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었을 텐데, 시험관 아기 치료는 배아 이식 후 할 수 있는 일이 안정을 취하는 것 말고는 거의 없었다. 아내는 배아 이식 후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당부한 것처럼 무리하지 않고 최대한 안정을 취하려고 노력했다. 외출은 삼갔고 집에서는 되도록 침대나 소파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와 아내는 임신이 되는, 그리고 임신이 되지 않는 두 가지 결과를 상상하며 행복한 미래를 그려보기도, 슬픈 미래를 염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결과가 너무나 극과 극이어서 '결과 이후'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일은 아무래도 어려웠다.


1차 피검사 후  아닌 해방감


기다리는 일을 잠시 외면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오랜만의 외출에 기분이 들떴던 탓일까. 나와 아내는 일주일 만에 병원을 찾아 1차 피검사를 마쳤을 때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우리는 이 묘한 자유로운 감정을 만끽하고 싶어서 한 가지 결정을 다. 결과를 기다리는 일로 서둘러 복귀하는 대신 순간을 잠시 즐겨보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이미 주사위를 던졌으니(피검사는 받았으니), 오후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잠시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도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나와 아내는 피검사를 마친 뒤 곧장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근사한 음식점에 가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나는 이렇게 결정하며 두 가지 각기 다른 생각을 했다. 결과가 좋게 나올 경우에는 잠시 여유를 가진 이 시간이 더욱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다음 2차 피검사를 준비하고 이후 다시 결과를 기다려야 할 상황이 됐을 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을 때에는 우울감을 덜어 내기 위해 데이트를 계속 이어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때는 임신 준비로 한동안 못 마셨던 맥주를 아내와 실컷 마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았.


나와 아내는 데이트를 하러 서울 종로구 익선동 한옥마을을 찾았다. 충무로 제일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다가 소위 '핫플레이스'로 통하는 곳이어서 나는 이전부터 이곳을 가고 싶다고 여러 차례 아내에게 얘기했다. 이곳에서 우리는 예쁜 음식점에서 돈가스를 먹고 특색 있는 골목 풍경을 구경하다가, 더욱 추억을 쌓고 싶어져 주변에 있는 종묘를 함께 둘러보기로 했다.


물론 데이트 중간중간에 아내 체력이 떨어질까 걱정이 다. 오랜만의 외출로 무리가 가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럴 때는 중간중간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걸었다. 훗날 아내는 이때를 회상하며 체력적으로 조금 버거웠다고 내게 고백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미처 몰랐던 나는 이 정도 활동은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마냥 생각했다.


참 예뻤던 가을 단풍 탓에 그날 우리의 데이트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1차 피검사 결과를 알려주기로 했던 병원의 연락이 예상보다 늦어져 데이트가 더 길어진 면도 있었다. 우리는 밖에서 시간을 지나치게 보내고 다는 생각을 이내 하게 되었고, 서둘러 집을 향해 돌아갔다. 절반쯤 집을 향해 갔을까 기다리던 간호사 선생님의 전화가 아내의 스마트폰을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피검사를 통해 확인하려고 한 것은 '사람 융모성 성선자극호르몬(hCG)'이라는 것의 수치였다. 이 호르몬은 태반의 영양막 세포에서 만들어지는데, 착상 시기에 피검사를 통해 검출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hCG는 임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피검사보다는 조금 늦지만 hCG는 소변으로도 검출할 수 있는데, 이 특성을 활용해 소변 속 hCG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임신테스트기이다.


1차 피검사에서 아내의 hCG 수치는 25.5mIU/mL(이하는 단위 생략)로 나왔다. 간호사 선생님은 임신 반응이 있는 수치라며 이틀 뒤 2차 피검사를 하러 병원에 오라고 했다. 아내는 전화를 끊기 전 간호사 선생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안정적인 수치인가요?"라고 물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즉답 대신에 2차 피검사 결과를 봐야 할 것 같다고 짧게 답했다. 그는 임신 반응은 있으니 미리 염려할 필요는 없다며, 안정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 부부는 임신 반응이 있었다는 사실에 잠시 기쁘기도 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소위 '안정권'이라고 부르는 hCG 수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난임부부 카페에서는 병원에서 들었다며 1차 피검사의 안정권이 100 이상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1차 피검사 결과 자체보다는 hCG가 늘어나는 경향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런 의견들은 hCG 수치가 당장은 낮더라도 이틀 간격으로 2배 정도 꾸준히 오르면 안정적인 임신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런 의견들이 가장 강조한 것 역시 안정을 취하것이었다. 난 이런 의견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내와 데이트를 한 일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임신테스트기의 희미한 두 줄


1차 피검사 다음 날이자 2차 피검사 하루 전날이었던 날 아침, 여전히 꿈나라였던 나와 달리 아내는 일찍 일어나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하루 차이일 뿐이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던 아내는 임신테스트기로 임신 유지 여부를 확인하려고 했다. 아침 일찍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한 이유는 hCG 농도가 아침 첫 소변에 가장 높아 검사 결과가 정확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잠에서 깨어난 후로도 한참 뒤에야 일어난 나는 아침 인사를 하며 아내의 몸 상태를 살폈다. 아내는 왜인지 안색이 좋지 않았는데 내가 "무슨 일 있어?"라고 묻자 아내는 "임신테스트기 결과가 좋지 않다"라고 힘 없이 말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선명한 두 줄과는 거리가 먼 희미한 두 줄이 임신테스트기에 그려졌던 것이다. 아내는 혹시 소변을 임신테스트기에 잘못 묻힌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 다른 테스트기로도 확인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나는 실망스러워하는 아내에게 하루 뒤 있을 2차 피검사를 잘 준비하자며 신경 쓰지 말고 안정을 취하자고 다독였다. 임신테스트기보다는 피검사가 더욱 정확하게 hCG를 확인할 테니 미리 낙담하기에는 이르다고 난 생각했다. 물론 좋은 결과만을 선뜻 기대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2차 피검사 과정은 1차 피검사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아내는 병원에 가서 피를 뽑았고 우리는 다시 수치를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내와 나는 1차 때와는 달리 마음이 조심스러워져서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우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피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전화를 받았다. 2차 hCG 수치는 51.9로 나왔다. 1차 때와 비교해서 이틀 사이 2배 이상 수치가 높아진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안정권'인 100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다며 이번에는 일주일 뒤 3차 피검사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우린 일주일 동안 기다림의 시간을 더 보내야 했다.


일주일 뒤 진행한 3차 피검사 결과 hCG 수치는 완벽한 0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을 의학적으로 '화학적 유산'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화학적 검사상 유산이 됐다'라는 의미로, 화학적 검사로 임신 반응을 확인했지만 실제 안정적인 임신으로는 이어지지 않은 경우였다. 물론 우리 부부는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2차 피검사 이후 거의 매일 사용했던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 진해지기는커녕 옅어지고 희미해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임신 반응이, 그리고 우리의 2세가 될 수 있었던 배아가 아예 사라졌다고 생각하자 그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난 그때까지 한 번도 자식을 가져보지 않은 입장이었지만, 이 상실감만으로 자식을 잃는 슬픔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임을 감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난자 채취부터 배아 이식, 그리고 결과 확인까지 일련의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을 처음 겪은 뒤 나는 새삼 '생명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으며,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교하게 통제가 가능하며 인풋(in-put)이 있으면 아웃풋(out-put)이 있는 명확한 기계와 달리 생명의 일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나는  수 있었다.


시험관 아기 시술 실패 후 나는 한동안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 했을 걸' 따위의 말을 달고 살았다. 더욱 조심하며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도 모자를 수 있는데, 들뜬 마음에 아내 몸에 무리를 주었던 내가 싫었다. 난 깊이 후회하며 기필코 다음에는 아내를 더욱 잘 보살펴겠다고, 그래서 꼭 우리의 2세를 만나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첫 실패 후 두 달 뒤 2019년 초에 진행된 우리의 두 번째 시험관 아기 시술은 1차 피검사에서 시술 과정이 조기에 끝났다. 첫 피검사부터 바로 hCG 수치가 0으로 측정돼 다음 단계로 진행 자체가 불가능했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도 어려웠다. 첫 번째 시도 때보다 나름 더 조심하며 생활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사람 몸은 기계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또 한 번 내 머리를 때렸다.


내가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을 경험하는 동안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라고 생각이유는 또 다. 사람 몸에서 진행되는 시험관 아기 시술전체 과정에서 많은 것을 고려해야 , 필요한 자원만 준비해 투입하면 결과가 나오기 마련인 기계와는 큰 차이를 보였. 사람의 몸은 한 번의 난임 치료를 위해 최적의 상태를 준비해야 고, 준비 과정에서 변화하는 신체에 맞춰 최적의 타이밍에 시술을 진행해야 한다. 또 안정을 취하며 작은 변수도 조심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난임 치료는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처럼 즉각적으로, 그리고 수시로 반복할 수 없다.  설사 준비 과정 등이 모두 완벽하더라도 사람의 몸은 원하는 결과를 일정 확률로 보장하지도 않는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2번 실패하면서 난 삶에 대해 조금은  겸손한 자세를 갖게 됐다. 간절히 바라지만 내 뜻대로 될 수 없는 일이 분명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덜 후회하며 살기 위해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만큼은 반드시 잘 해내야겠다고 난 굳게 다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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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편 - 우리의 첫 시험관 아기 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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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 홈페이지

제일병원 아이소망센터 홈페이지

앙쥬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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