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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문디 Apr 25. 2022

첫 대통령 선거

재외국민의 신분으로

수업이 끝나고 두 번 환승하여 찾아간 멜버른의 한 호텔에서 인주가 번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몇 가지 염원을 담아 꾹 눌러 찍은 투표용지를 후후 불어 말렸다. 왕복 두 시간 반, 한국에서 참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는데 여유로운 이곳에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어떻게 보면 투표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 


호주에서는 시드니와 멜버른 단 두 곳에만 투표소가 설치되었고 투표를 하기 위해 브리즈번에서 시드니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투표소를 빠져나오는 길에 왠지 모를 허탈함이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사회적으로 어른이라 인정받는 나이가 되었다. 신분증만 있으면 술을 살 수 있고 내 동의 없이 부모님께서 나의 은행계좌를 만드실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내 목소리를 직접 낼 수 있으며 이제 그에 대한 대가는 오롯이 나의 몫이다. 내 인생 첫 대통령 선거는 그렇게 타국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다. 불의를 타개하고자 노력한 적도 없지만 본다 해도 주로 방관하는 편이었다. 내가 관심을 가지면 그곳에 내가 얼마나 깊숙이 빠져버릴지 알기에 나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아직은 힘없는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외면했다. 정말 이기적 이게도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내 눈앞에 닥친 문제들만 해결하기 위해 급급했다. 옳은 것을 옳다고, 틀린 것을 틀리다고 말한 적 없이 나는 그냥 사람들 틈에 섞여 휩쓸리듯 앞만 보며 살아왔다. 참 비겁했다.  


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진짜 어른으로서 이제는 그만 외면하고 직시해야 할 때이다. 이 한 표를 시작으로 이제부터는 우리 사회의 아픈 곳을 똑바로 바라보기로 한다. 부조리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기로 한다.


현재의 행복을 꿈꿀 수 있는 나라가 되길,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길, 아픈 역사가 참 많지만 언제나 그랬듯 꿋꿋이 버티고 이겨 나갈 수 있기를.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참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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