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리끼리 유유상종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다. 이건 정말 국적 상관없이 해당되는 말이다. 네 명이 모였는데 네 명 모두 맥주 반 병에 얼굴이 새빨개질 만큼 술에 약하고 키도 비슷해 눈높이도 잘 맞았다.
멜버른에 도착한 지 일주일, 유학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다. G368 강의실에 앉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친구들이 있는 듯했고 나는 어디에도 낄 수 없었다. 점심시간에 혼자 밥을 먹으며 내가 과연 이곳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친구는 사귈 수 있을지 한참 생각했다. 그냥 철판 깔고 아무에게나 말을 걸어볼까, 친한 척해볼까,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할까 생각하는 사이 밥을 다 먹어 버렸고 나는 혼자 배회했다.
밥 먹고 어디로 오라고 했던 것 같던데 어디 더라. 그 많던 유학생들은 어디로 가고 나는 혼자 방황하고 있는 것인지 아무리 둘러봐도 모르겠어서 발만 동동 굴렀다. 모이라고 했던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냥 처음 마주치는 사람에게 말을 걸자 라는 생각으로 사람들 틈으로 다가갔고 그 아이들은 내 첫 친구가 되어주었다. 렌과 모모코였다.
오래 이어지는 친구 관계를 위해 어쩌면 속으로 처음 마주치는 사람이 동양인이길 바랐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전공과 나이가 같았고 나는 일본에, 이 친구들은 한국에 관심이 있었기에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서로에 대해 물으며 모이라고 했던 장소로 도착했을 때 누군가 내게 한국인이시죠? 라며 말을 걸었다. 하루나였다.
한국인이라고 해도 깜빡 속았을 만큼 하루나의 한국어 발음은 정확했다. 나중에 친하게 지내다 보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하루나는 한국문화에도, 한국어에도 정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레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한 학기 동안 나는 이 세 명에게 정말 많이 의지했다. 영어공부를 하러 호주에 온 것이기에 일본어로 대화를 시도해볼 수 있었지만 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고 내가 일본에 가게 되면, 이 친구들이 한국에 오게 되면 그때 한국어와 일본어로 대화해보기로 했다.
문법을 다 틀려도,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도 눈짓 한번, 손짓 한 번에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괜히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정말 심심해서 사실 매일매일 놀러 가자고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되나 싶어 눈치를 보며 1~2주에 한 번씩 시내로 놀러 나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이 친구들도 서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한식, 일식을 먹으러 다니고 같은 과목을 수강하고, 유학생으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복잡한 감정들을 공유하고 함께 여행도 했다. 이 친구들 덕에 나는 조금이라도 영어를 사용할 기회를 얻었고 언젠가 많이 그리워하게 될 추억들도 잔뜩 만들었다. 함께 대화하다 보면 고등학교 시절이 불쑥 떠오르며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백만 배쯤 불어났다.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 존중하며 이질감 없이 대할 수 있었고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틀려도 자신 있게 영어를 내뱉을 수 있었다. 한국인 친구는 한 명도 만나지 못했지만 덜 외로웠고 편안했고 많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