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투어
한인 투어를 예약한 덕에 나는 지금까지 봤던 한국인보다 더 많은 한국인들을 이틀에 걸쳐 만날 수 있었다. 세 그룹으로 나누어져 각각 버스에 탄 후 우리는 아침 일찍 투어 장소로 향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참 길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이라는 별칭에 맞게 길고 긴 바닷길과 울창한 숲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하늘은 맑았고 작은 버스에서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졸다가 조잘대다가 창 밖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점심 도시락을 싸왔지만 그래도 호주까지 오셨는데 엄마가 피시 앤 칩스를 한 번 맛보셨으면 했다. 10달러에 주문한 피시 앤 칩스는 시드니, 호바트에서 먹었던 것보다 맛이 별로 였고 너무 속상했다. 그 마음을 아시는지 엄마는 괜찮다고, 맛있다고 해주셨다.
인간이 감히 이름을 붙일 수 없을 만큼 아름답기에 성경에 나오는 열두 제 자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12 사도는 정말 웅장했다. 2005년 침식으로 인해 이 커다란 바위 중 하나가 무너졌다고 설명하며 가이드 아저씨께서는 역사의 한 순간을 우리가 보고 있다고,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 하더라도 같은 모습은 아닐 거라고 말씀하셨다. 벅차게 만드는 아저씨의 말솜씨에 우리가 정말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황당하게도 그렇게 맑던 하늘은 우리가 12 사도에 도착하자 세찬 비를 뿌렸지만 오히려 그 비바람 덕에 대자연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이 너무 세서 우산은 계속 뒤집히고 핸드폰을 들고 있기조차 힘들었는데 엄마와 아주머니는 비를 맞으시면서도 열심히 사진을 찍으셨다.
이 날 찍은 사진 속 우리의 몰골은 너무나 처참했지만 언제 또 우리가 이렇게 비를 맞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밤 10시 가까이 되어 시티에 도착했고 사진을 한 참 들여다보다 잠이 들었다.
다시 투어. 퍼핑빌리에서 일하시는 기관사, 안내하시는 분들은 모두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다. 석탄 연료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창 밖을 바라보는 내내 우리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주었고 창틀에 매달려 25분쯤 달렸을 때 우리는 멘지스 그릭 역에 도착했다.
50분의 점심시간 동안 작은 카페에 들어가 애플 크런치 머핀과 카푸치노, 플랫화이트, 롱 블랙을 주문하고 몸을 녹였다. 머핀 한 입, 카푸치노 한 모금에 무장해제. 이 맛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렇게 빠져버릴 정도인데 이 맛을 기억하는 한 내가 한국에 돌아가서 커피를 마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필립아일랜드로 가기 전 우리는 동물원에 들렀다. 나는 동물원과 농장에 몇 번 갔었기에 엄마와 아주머니만 다녀오시라고 했으나 결국 두 분의 손에 이끌려 동물원에 들어갔다.
15달러 너무 비싼데 하는 마음으로 발을 디뎠는데 와, 안 들어왔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알비노 캥거루, 딩고, 알파카까지 나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동물들을 다 보았고 엄마보다 더 신나서 사진을 찍어댔다. 45분은 훌쩍 지나갔고 아쉬운 마음에 동물원에서 나왔을 때 난생처음으로 쌍무지개를 보았다. 그리고 그날 밤, 필립아일랜드에서 우리는 함께 은하수를 보았다.
내 팔뚝보다 작은 펭귄들이 아장거리며 집을 찾아 들어가는 것도 감동이었는데 여기에 은하수까지. 앞으로 행운만 가득하라고 좋은 일만 있으라고 우리 앞에 잠깐 나타난 선물인가 보다. 앞으로 남은 날들은 이 추억을 붙잡고 버틸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