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기대감과 절교하기로 했다
깊게 생각해 봐도 세상 사는 건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 더 잘 살아 보겠다고 아등바등 해본들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건 어느 선까지일 뿐일지 모른다.
그 선을 넘을 수 있는 건 쉽지 않다.
'특출나다' 믿고 싶겠지만 그렇게 특출나다는 행운은 여기 저기 뿌려지는 것이 아니다.
소설책의 주인공처럼, 드라마 속의 주연 같은 삶을 살고 싶다 하여도 그건 시청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로 만들어진 꾸밈이다. 신데렐라에 빠져들 왕자님은 고전소설 속에나 존재할 뿐이라 인생역전을 꿈꾼다 해도 불가능하다.
매번 밥 안치겠다고 쌀들을 비비적거린다. 썩은 쌀알을 골래낸다.
괜히 썩은 쌀알 옆에 있다가 딸려서 버려지는 쌀알이 있다. 그냥 운이 없다. 그 말을 대신할 말은 없다.
인생은 그렇다. 짜인 각본이란 게 없다는 게 살아가면서 너무나 잘 알게 된다.
불행 끝에도 행복은 있고 또 그 행복이란 게 유지되는 것도 아님을...
쌀알은 말한다. "왜 나야. 이 많은 수백 개의 쌀알 중에 왜 아무 잘못 없는 나를 버리냐.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우연히 썩은 쌀알 옆에 있다가 그 쌀알과 함께 손에 짚어진 것뿐이야.
나는 썩은 쌀알이 아니야. 나를 다시 봐봐. "
이렇게 저렇게 불행을 토로한다고 해도 나아질 건 없다. 멀쩡한 쌀알이래도 어쩔 수 없다. 싱크대에 내던져진 그 쌀알을 주워 담을 생각은 전혀 없다.
따뜻한 밥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렸겠는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겠는가.
하지만 쌀알이 다 거기서 거기라 그중에 예쁜 쌀알을 골라낼 일도 멋진 쌀부터 순차적으로 줄지어 세울 일도 없다.
살포대의 그 많은 수천 개의 쌀알 중에 그냥 그런 쌀알일 뿐이다.
아무리 남들보다 특출나게 맛있어 지려고 해봤자 니가 포도 맛이 나는것도 달달한 체리향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쌀알일 뿐이다. 구태여 다 똑같은 쌀알들과 니가 옳은지 내가 옳은지 다툴 필요도 비교할 필요도 없다.
단지 맛있는 밥 한 그릇이 되기 위해 다 같이 맛있게 익어가면 그만이다.
나는 수천 개의 쌀알 중에 그런 쌀알일 뿐이다.
어느 날은 내가 진주가 되어 보고자 했다. 사막에 있더라도 반짝이는 진주는 사람들이 분명 발견해 줄 거야.
하지만 사막 모래알은 진주보다 더 반짝이고 고와서 진주알을 아래로 아래로 더 깊숙이 빠져들 뿐이다.
'나 진주야' 라고 어필해 가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나 자신을 어필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가 알아봐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무모하다.
본인의 주제도 모르고 진주가 아닌 것들이 '내가 최고의 진주야' 라고 어필한다면 사람들은 그 말을 믿을까?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도 한발 떨어져서 보면 전문가라도 된냥 상황들이 잘 보인다.
'이러면 좋았을껄? 저러면 좋았을껄? ' 장사꾼들은 갖은 조언을 많이 듣는다.
'그렇게 잘 알면 본인이 하지?' 그런 의미에서 남에 일에 참견하는 사람들도 많다.
혼자서 안 보이는것이 많으니 제 3자의 눈이 잘 보인다고 해서 남들의 의견을 듣는다. 하지만 설왕설래 하거나 부화뇌동 하는 사람이라면 남의 말을 듣는 것보다 그냥 자신의 입장을 남인 양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썩은 쌀 날인지 아니면 그냥 그런 쌀알인지.
특출나게 맛있는 쌀알이라 하여도 한 밥그릇에 담길 쌀알들을 뿐이다.
평범한 나는 오늘도 현실직시 해본다. 너무 낭만적인 꿈과 상상은 건강에 좋지 않다.
나는 모든 기대감과 절교하기로 했다.
상큼한 체리가 될수 없다면 쌀알처럼 고소한 삶을 살아보기로 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