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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니 Nov 25. 2023

90년대의 흔적이 곳곳에! 여의도 구옥 아파트 생활

우리 아파트 사진은 아니고, 근처 동네 사진! 분위기가 레트로한 것이 예뻐서 첫 사진으로 올려본다. 

 지금 내가 생활하고 있는 여의도 시범 아파트는 71년에 건축되어 52년간 많은 사람들의 주거 공간으로 자리해 왔다. 오랜 시간을 보낸 건축물이다 보니 건축 시점인 70년대의 흔적은 물론이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90년대의 모습도 곳곳에 남아있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이다.  


 이사 온 이후 가장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던 아이템은 바로 엘리베이터 안 발받침이었다. 

지금이야 엘리베이터마다 낮은 높이에서도 누를 수 있는 별도의 층수 버튼이 구비되어 있지만, 우리 어린 시절 엘리베이터에는 세로형으로 길게 늘어진 층수 버튼밖에 없었다. 그래서 늘 키가 작은 어린아이들은 발받침에 올라가 층수를 누르곤 했다. 나 역시 그랬고. 


어떤 날은 발받침이 흔들리는 것 같아 무서워하면서 버튼을 누르기도 했고, 어떤 날은 발받침에 올라가지 않아도 층수 버튼을 누를 수 있을 거 같아 키가 컸나 기뻐하기도 했던 순간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시범아파트에는 그 발받침이 여전히 존재한다. 특유의 장판 무늬를 덮은 채로. 이제 나는 쓰지 않지만, 지금도 이 아파트에 사는 여러 어린이들이 밟고 있을 발받침.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발을 받쳐주고 그들의 시간을 지켜보았을지 새삼 연륜이 쌓인 큰 어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동 입구마다 아주 작은 경비실이 마련되어 있다. 경비원 어르신들이 딱 의자 하나를 두고 앉아계실 정도의 작은 공간. 경비실 안에 자리하고 계실 때면 꼭 인사를 드리고 있는데, 인사를 받아주시기는 하지만 정말 우리를 '기억하실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기억하시더라도 그저 얼굴 정도만 익숙해하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경비원 어르신께 참 감사했던 날이 있었다. 


  내 앞으로 등기 우편이 온 날이었는데, 마침 우체부가 도착했을 때 집에 아무도 없어 경비실에 맡기고 가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개인적인 일을 다 마친 후, 아파트에 돌아왔을 때 나는 등기 우편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마침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경비원 어르신이 처음으로 말을 걸어오셨다. 


"00호지? 0000에서 뭐 왔던데" 

"아차차, 맞아요. 등기!" 


 그때, 경비원 어르신이 함께 계신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지난 15년간은 경비원이 있지만 없는 듯한 집에 살았기 때문에 이런 경험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그저 오가며 인사를 드린 것이 전부인데, 몇 호에 사는 부부인지 다 기억하고 계시는! 출입 기계로는 대체할 수 없는 따스함이랄까. 



 90년대 나 어릴 적이 생각나는 또 다른 이유는 아파트 단지를 안팎으로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은행나무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란 은행잎이 수두룩하게 떨어져 낙엽 밟는 재미가 있었다. 물론 은행열매는 밟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지! 은행 터지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얼마나 조심해서 걸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은행 열매가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지상 주차장도 얼마만인지!  


 강남으로 출근하고 나면 하루 종일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돌아오는 나에게 시범아파트는 아파트 밖에서부터 잠시 나를 어린 시절로 돌려놓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이 집을 보시러 오셨을 때, 우리가 사는 층의 복도에 서서 차에서 막 내리는 엄마를 향해 큰 소리로 '엄마, 여기!' 외쳐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쌓은 곳은 아니지만 그때의 추억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곳이 바로 이곳, 시범아파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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