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왕국 - 인도
놓아라!!! 김중배의 다이아 반지가 그렇게 좋더냐? 김중배의 재력에 마음이 변심한 심순애가 이수일의 바지 끝자락을 붙잡을 때 이수일이 이를 뿌리치며 외친 말입니다. 1913년 대한매일신보에 연재한 조중환 작가의 장한몽의 일부 장면입니다. 장한몽은 일본 소설인 ‘금색야차’(金色夜叉)를 번안한 작품으로 개화기 신파극의 대명사였습니다. 라디오나 TV에서 검은 망토를 입은 이수일과 검정 치마저고리를 입은 심순애, 그리고 말끔한 신사복을 입은 고리대금업자인 김중배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랑보다 재물을 선택하는 심순애의 변심과 이수일이 마음을 독하게 먹고 고리대금업자가 되어 사랑을 되찾는 장면이 그 당시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이아 반지가 여자의 마음을 돌리기도 하고, 사랑의 마음도 움직인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인도가 바로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다이아몬드의 최대 수출국이자 다이아몬드 산업의 메카라는 사실입니다. 인도 뭄바이에서 북쪽으로 20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수랏(Surat)이라는 불리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도시가 있습니다. 1만 개 이상의 가공소에서 인도 전체 90%의 물량을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 다이아몬드 산업의 비중은 14% 정도이고, 2023회계 연도(2022년 2월까지) 보석 및 주얼리의 전체 수출액은 미화 348억 5천만 달러에 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수랏의 다이아몬드 거래소(SDB:Surat Diamond Bourse) 빌딩을 짓고 있는데 15층 규모의 빌딩 9개로 된 이 빌딩이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규모의 오피스 빌딩에 등극했다고 합니다. 총면적 710만 ㎡로, 미국 펜타곤(660만 ㎡)을 훨씬 넘어선다고 합니다. 4,700개에 이르는 모든 사무실과 공방 분양이 준공 전에 마감되었고, 모든 사무실이 정문에서 7분 이내 거리로 접근이 가능할 정도로 효율적인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SDB는 23년 12월 경에 오픈할 예정입니다. 수랏은 지금도 다이아몬드를 만들고 다이아몬드가 만들어 가는 도시로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도의 다이아몬드 역사는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의 골콘다(Golconda) 광산은 기원전 800년 무렵 발견된 역사상 최초의 다이아몬드 산지로 알려졌습니다. 골콘다 광산에서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프란츠 대공 다이아몬드가 나왔습니다. 영국 왕관에 세팅된 코이누어(Kohinoor) 다이아몬드(인도 군투르의 코루루 광산에서 채굴), 미국 국립 박물관인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색 다이아몬드인 호프(Hope) 다이아몬드(인도 군투르의 코루루 광산에서 채굴), 프랑스 국립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샌시(Sancy) 다이아몬드(인도 무굴제국 소유)등 세계의 유명한 다이아몬드 대부분이 인도에서 생산된 다이아몬드입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인도가 서서히 채굴량이 적어지고 1880년대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 다이아몬드 광산이 개발되면서 원조국의 지위를 잃게 됩니다. 원석이 아프리카에서 생산되고 벨기에와 이스라엘 등지에서 보석 가공업이 발전하면서 인도는 점점 잊히게 됩니다. 실제 인도는 판나(Panna)라는 마을에 기계화 광산이 하나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쇠락하는 인도 다이아몬드 산업이 다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00년경 수랏 출신의 진취적인 마브지반왈라 형제(Gandabhai Kuberdas, Shri Rangeeldas Kuberdas)의 노력과 열정 덕분이라고 합니다. 벨기에 안티워프에서 다이아몬드 가공 사업을 하다가 자기들의 고향인 수랏의 저렴하고 우수한 노동력을 이용하면서 사업이 활력을 띠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 커팅 비용의 10% 수준으로 가공이 가능하고, 값싼 노동력뿐만 아니라 1캐럿 미만의 다이아몬드(쓰부, 멜리) 다이아몬드의 가공 기술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인도는 세계의 다이아몬드 연마 총량인 1억 8천5백만 캐럿 가운데 1억 2천만 캐럿을 연마하여 약 6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도에는 약 150만 명의 다이아몬드 연마공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9,400여 명, 벨기에 약 3,000명, 미국 뉴욕에 약 400명, 태국 8,200명, 러시아 7,000명 등의 연마공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 숫자입니다. 뛰어난 품질, 정교함, 흠잡을 데 없는 장인정신, 비교할 수 있는 가격, 최고 품질의 천연 다이아몬드를 바로 구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수랏은 다이아몬드 주얼리 제조 허브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그리스어로 ‘정복할 수 없는(Adamas)’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광물보다도 경도(Hardness)가 높기 때문입니다. 15세기까지는 힘, 용기, 불가침성의 상징으로 왕과 귀족들만이 지닐 수 있었고, 1477년 오스트리아 막시밀리안 대공이 프랑스 버건디 왕국의 공주에게 청혼하는 의미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면서 다이아몬드는 ‘사랑의 증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영국의 드비어스 사는 남아프리카 원석의 80%를 채굴하여 귀족들에게 판매하는 명실상부한 최대의 귀금속 회사로 성장하다가 1920년 미국의 대공황을 맞이하여 심각한 경영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때 드비어스 사는 귀족 등 상류층 대상의 소수 마케팅에서 일반 대중에게 대량으로 판매하는 새로운 전략과 광고를 앞세워 불황을 타개하게 됩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협찬,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을 알렸고, 1947년에는 세계 최고의 광고라는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diamond is forever)이라는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시리즈의 광고에 성공하여 전 세계 사람들이 애용하는 결혼 예물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드비어스 사는 재기에 성공하면서 점유율을 90% 이상 확보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업은 계속 번창하지 못했습니다. 다이아몬드 수익이 전쟁 자금을 들어가는 블러드(blood) 다이아몬드의 오명 등 사업에 치명타를 입어 지금은 시장의 절반도 되지 않는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드비어스사의 판매 전략과 광고에 호응을 입어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세상에 알려져서 장한곡의 주제로 나오게 되고, 인도의 수출 효자 상품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지난 23.6월 인도 모디 총리가 미국 국빈 방문 시 미국 영부인에게 줄 선물로 선택한 것으로 다름 아닌 인도 수랏 지역에서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진 7.5캐럿 랩 그로운 다이아몬드(Lab Grown Diamond)였습니다. 천연 다이아몬드의 단점을 보완해서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LGD도 인도가 선도하고 있습니다. 천연 다이아몬드 채굴을 위해서 3∼4㎞ 깊이로 땅을 파야 하고 흙을 씻어내기 위하여 토양 오염도 심하고 용수도 많이 들어갑니다. 보통 1캐럿의 천연 다이아몬드를 채굴하는 데 500L(리터)의 물이 필요합니다. 또한 원석이 일부 지역에만 한정적으로 묻혀있다는 한계로 과학자들은 인공 다이아몬드 제조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일명 LGD라 불리는 다이아몬드는 고온의 플라스마를 이용하여 진공 상태로 만든 용기 안에 메탄과 수소 가스를 넣은 뒤 온도를 1000도 이상으로 높이면 기체에서 탄소가 분리됩니다. 탄소가 바닥에 막을 형성하면서 겹겹이 쌓여 처음 용기에 넣었던 아주 작은 씨앗 다이아몬드가 점점 커지는 원리입니다. 실제 인공 다이아몬드를 1캐럿을 제조하는 데 겨우 18리터 정도의 물만 필요하다고 합니다. LGD는 천연 다이아몬드와 성분과 경도(광물의 단단한 정도), 굴절률(빛이 휘는 정도) 등은 완전히 똑같아서, 첨단 장비를 통해서만 이 두 다이아몬드의 구분이 가능합니다. 같은 품질에 가격도 저렴하고 윤리적인 문제도 없어서 젊은 층을 대상으로 인기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인도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FY23년 LGD 전체 수출액 18억 달러에 이르고 있고, 보석뿐 아니라 절삭 도구, 전자기기, 의료기기로 다양하게 활용되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타지마할과 아잔타 석굴의 정교함을 보면 인도가 다이아몬드 왕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리석을 깎고 무늬를 새겨 넣는 공정과 커다란 암반을 뚫고 그 속에 석상을 만들고 불상을 조각하는 장인 정신을 감안하면 다이아몬드 가공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봅니다. 다이아몬드 채굴의 원조였다가, 가공의 원조국가로 변화와 성장하면서 경제를 부흥시킨 인도 사람들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합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도의 다이아몬드 가공 공장들이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산 원석의 유통이 제한되다 보니 이보다 비싼 아프리카산을 사용하면서 원가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지나가는 순간일 뿐, 인도 사람들의 열정과 저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끝
2023년 9월, 인도에서 소전(素田) 드림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