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Disabled 02화

그 흔한 라식 수술도 안했는데

Disabled 02

by 소안키친

지난한 육아휴직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을 즈음,

10개월 즈음 지날 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팀에 결원이 생겼으니 조기 복직을 해줄 수 있겠냐고.


겉으로는 “생각을 좀 해볼게요”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던 것 같다.

끝이 보인다는 해방감에, 기분이 180도로 변했다.


원래는 1월까지 육아휴직을 하는 계획이어서 목수술 날짜를 12월 말일로 잡았었는데, 회사의 전화로 수술날짜를 또 한번 미루게 됐다. 의자를 빼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급한 수술은 아니니까 좀 나중에 하자고, 코로나19도 여전히 심각한 상황이기도 하니… 여러가지 명분을 혼자서 만들어냈다.


복직을 한 1월부터는 아이들 케어를 근처에 사시는 친정부모님께 부탁했다. 아이들이 하교 후에는 할머니 댁에 가서 저녁까지 먹고 있으면, 내가 퇴근길에 아이들을 데려오는 스케줄이었다.


4학년이 되는 첫째는 중간중간 학원스케줄을 소화하며 동생을 챙기고 숙제도 미리 해 놓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11개월의 휴직이 코로나로 인해 더 힘들었지만, 아이들과의 유대가 어느 정도는 형성되었다고 믿고 싶었고, 이제 엄마 없이도 엄마가 말하는 대로 잘 해내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큰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낯설어서인지 코로나 공백 이후 1년만의 등교가 힘들어서인지 말 안듣는 것은 기본이고, 버릇 없게 하기 일쑤였고, 동생은 좀 나았지만 중간중간 형을 따라하며 미운 형제의 진상 퍼포먼스를 부렸다.

처음으로 말 안듣는 두 손주를 단독 케어하신 노년의 부모님들은 남자아이들의 실체를 알게 됐다. 딸부잣집으로 딸만 키우던 두분에게 본의 아니게 신세계를 경험시켜드렸던 3개월이다.


뭐니뭐니 해도 손주보다는 내 자식이 우선인게 인지상정인 법. 말썽쟁이들을 직접 케어하시던 부모님들은 혀를 내두르며 본인들이 힘든 거보다도 내 걱정을 먼저 하셨다.

이런 놈들을 그동안 어떻게 키운거냐고. 자식은 걱정되고 손주들은 미운게 솔직한 심정이셨을 거다. 나 또한 아이들이 밉고 부모님께는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친다는 것이 걱정을 하는 것만큼 힘든 것이라는 걸 처음 깨닫게 됐다. 결과적으로 나는 수술이후 걱정을 더 끼치는 존재가 되었고, 일종의 열패감에 시달리게 됐다.


그렇게 다시 돌아간 회사 생활 또한 전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코로나 여파로 인한 매출하락으로 직원들이 많이 줄었고, 그럼에도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해야할 일들은 많았다.


12월에 하려던 목수술을 무작정 미루자니 마음에 찜찜했던 나는 용기를 내서 4월로 수술날짜를 다시 잡았다. 괜히 무서워서 그냥 놔뒀다가 합병증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동안 계속 미뤄오던 수술을 이윽고 하겠다고 말하니 의사는 수술 합병증에 대해 거침없이 말했다.

의사가 설명한 수술계획은 목을 절개하고 종양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다만, 신경이 아주 많은 부분이라 열었을 때 신경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며 합병증에 대한 경고를 했다.


합병증에 걸리면 발성 또는 삼킴 또는 어깨 움직임 또는 혀 움직임 등 종양부위의 미주신경이 관여하는 신체기능이 정상적으로 안돼 불편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밖에도 목이나 귀 피부에 마비가 올 수 있으며, 수술중에 지혈이 되지 않아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내용을 듣고 있자니 무서웠지만, 그냥 하는 소리겠지 하며 두려움을 떨치려고 애썼다.


살면서 몸에 칼을 대는 일은 없었는데, 그게 싫어서 남들 하는 쌍커풀도 라식수술도 안했고 출산할 때도 저승문을 두드려가며 자연분만으로 해냈는데, 하필 목에 칼을 대야 하고 흉터도 남는다는 건 너무도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항상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법. 흉터 따윈 문제가 아니었다.용기 내서 감행한 수술로 인해 도리어 나는 합병증을 안고 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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