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Disabled 08화

간절한 환자를 대하는 슬기로운 의사들

Disabled 08

by 소안키친

퇴원 3개월 뒤 수술한 대학병원에 첫 외래를 갔다. 수술부위가 잘 아물었는지 CT촬영 결과를 보고 합병증에 대해서도 물어볼 게 많았다.


목소리는 수술 직후에 비해 성량이 조금 더 커졌지만, 기대에는 한참 못미쳤다. 의사가 말한 6개월이 무턱대고 길게 잡은 게 아니었나 보다. 답답한 목소리 때문에 3개월이 3년같이 느껴졌다.


체감상으로는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아도 병원 외래에서 내시경으로 성대를 촬영해보면 변화가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컸다.


3개월만에 만난 담당교수는 여전했다. 수술 부위 촬영 결과는 좋고, 종양의 재발가능성도 낮다고 했다. 목소리에 대해 질문하자 교수는 비관적인 말을 했다.


“6개월 뒤에도 안 나을지도 모릅니다. 정 불편하시면 성대 필러 주입술을 하세요”

“선생님, 저는 목소리 때문에 회사도 휴직하고 일상생활도 너무 힘듭니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고요. 아직도 매운 음식은 입에 넣으면 바로 사레와 기침이 심해서 먹지도 못하니 입맛도 없습니다.”

“매운 음식이요? 그런건 상관 없는데?! 그냥 심리적인 거 때문일거에요”

“아니요. 그래도 수술 후에 제가 그렇게 된건데요?!!!(무슨말을 그런식으로 하세요!)”


부글부글 속에서 부화가 치밀어 올랐다. 6개월 기다려보자고 했던 사람이 3개월이 지나고 차도가 없으니 또 말을 바꾼 것이다.

내가 수술 합병증으로 음식을 못 먹는다는데 성대마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로 딱잘라 말하는 의사가 얄미웠다. 그런 태도에 빈정이 상해, 질문이 더 남았지만, 더이상 말이 안 나왔다.


성대필러 주입술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놓고 싶었기에 자연회복을 좀 더 기다려보겠노라 말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아무런 소득 없이 기분만 상해서 나오다가 내시경 상으로는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봐야 겠다는 생각에 다시 진료실로 돌아갔다.

‘내가 3개월을 어떤 심정으로 기다렸는데…’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물었다.


“선생님, 내시경 상으로는 왼쪽 성대 변화가 전혀 안보이나요?”

“네 없어요”

의사는 짧은 외마디로 답했다.

다시 진료실로 들어간 게 성가시다는 듯 모니터만 바라보면서.


조금이라도 찾고 싶던 희망도 소득도 없이 빈손으로 터덜터덜 병원을 나왔다.


“아무래도 다른 병원을 몇 군데 더 가봐야겠어. 담당교수도 영 마음에 안들고…”

진료과정을 지켜본 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논현동에 이비인후과 전문병원과 분당의 한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논현동 이비인후과에서는 수술합병증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증상과 원인, 해결방법은 a,b,c가 있다며 일사천리로 자세한 설명을 해줬다. 마치 내가 무슨말을 할지 알고 있는 것처럼 알아서 예상 질문과 대답을 술술 풀어서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결국

이 병원에서도 성대필러 주입술을 권유받았지만, 좀 더 나중에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신 음성재활치료를 받아보기로 했다. 최대한 인공물질 없이 스스로 회복할 때 까지 노력하고 싶었다.


병원을 나오면서 역시 전문병원과 대학병원 의사들의 애티튜드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다. 하루에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짧은 시간 안에 봐야하는 대학병원보다는 적은 수의 환자를 보다 자세하게 보고 소통해주는 전문병원이 환자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물론, 원래 병원과 의사의 존재이유는 병을 고치는 일이니 대학병원을 탓할 수 없다는 건 안다.

이비인후과 전문병원 의사 또한 전체적 맥락과 결론은 수술한 의사의 말과 다르지 않았다. 단지 좀 많이 풀어서 길게 말해줬을 뿐이다. 성대마비 상태이며, 더 이상 고생할 거 없이 필러시술을 권하지만, 환자가 원한다면 우선 재활치료 후에 보자는 식이다.


혹시나 다른 병원에 가면 다른 방법도 있지 않을까, 하는 괜한 기대를 걸었지만 남편도 나도 이제는 포기할 건 포기하고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

다.


음성치료는 마비된 왼쪽성대의 움직임 없이도 더 큰 목소리를 안정적으로 낼 수 있게 하는 호흡법과 발성법으로 성대 주변 근육을 강화시키는 훈련이었다. 단기간에 효과를

낼 수는 없고 훈련이 성공적으로 된다고 해도 드라마틱한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다시 한번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점차 6개월을 향해가는 동안 목소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남몰래 간절히 바랐다.

하루는 꿈 속에서 목소리가 돌아와 기뻐한 적이 있었다. 잠에서 깼을 때 난 내 목소리를 단 한번만이라도 다시 들었으면 좋겠다고 처절하게 염원했다.


목상태는 크게 호전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량은 조금씩 커졌고 오래 말할 때 호흡이 모자라 숨이 차는 증상도 조금씩 개선됐다. 주위에서도 목소리가 전보다 낫다는 말을 해줄때면 더 기운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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