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Disabled 09화

죽음을 사유하다

Disabled 09

by 소안키친

하루는 병원에서 성대필러 주입 시술을 하더라도 음성치료를 계속 병행하는 경우도 많고, 시술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나는 상황이 나아질거라는 지나친 희망과 끝이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해온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평생 예전처럼은 못살겠구나 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그리고 급격히 좌절했다.


그 다음 아주 이성적으로, 아주 단순하게 의식의 흐름이 변해갔다. 최대한 병이 낫는다고 해도 원래 목소리를 찾지 못하겠구나. 슬프거나 기쁠 때 노래 한 자락도 못 부르겠구나. 이렇게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영원히 가질 수 없는 행복을 갈망하며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게 나는 죽음을 사유하기 시작했다. 오래 걸릴것도 없이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그런 생각에 이르렀다. 일상을 보내며, 아이들을 바쁘게 케어하며 밥을 차리면서도 자꾸만 죽음이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스스로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다그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떠올렸다.


평소 뉴스 등을 통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 난

“주변사람들이 왜 몰랐을까? 미리 알고 도움을 줬다면 죽지 않았을텐데…” 하며

안타까워 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알 것 같다. 나 또한 죽음이 떠오를 때 그 단어를 차마 입밖에 낼 수 없었다. 가까운 이들은 분명 무턱대고 걱정부터 하면서 심각해 질 것이고, 가깝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둠의 그림자를 나누어 주는 게 민폐 같았다. 내 문제는 누군가가 걱정을 해준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대신 자주 찾는 동네 도서관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책들을 골라 찾아봤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원초적인 호기심도 생겼던 것 같다.

김완 작가의 <죽은자의 집청소>는 특수청소부라는 직업을 가진 저자가 죽은자들의 집을 치우며 경험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자살이나 오랜 투병 끝에 떠나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그들의 삶을 유추하며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그렸다. 젊은 취업준비생의 집에서 오히려 간절한 희망을 노래하는 책들을 발견하곤 가슴 아팠던 일화나, 죽기 전에 직접 견적을 문의한 고객의 이야기 등 절절한 사연들이 많았다.


‘그대가 현자라면 언제나 심각한 사람이 손해라는 것쯤은 깨달았으리라’

이 문장을 읽고 나도 너무 심각해지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서울대 암병원 전문의 김범석교수의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는 여느 대학병원 의사들 같지만 어딘가 진솔하고 겸손하며 감성적인 저자의 마인드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스윗한 의사쌤은 아니지만 환자의 처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소위 ‘낭만닥터’인 것 같았다.이런 의사쌤을 만나는 것도 복일 것이다.


저자는 의료현장에서 수많은 죽음과 죽는 것 보다 못한 삶을 목도하면서 때론 가슴아팠고 때론 겸허해졌다고 한다.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틈날 때마다 기록했다고.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고, 적어놓기라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 나 또한 차마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글로 써보고 싶어졌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이 글을 본다면 조금의 위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어느 날은 멋진 제주도의 풍경이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안에 소개된 맛집과 감성 숙소를 보면서 생각했다. 어느 날은 맛있다고 소문난 도너츠를 먹으며 생각했다.

”세상에 너무 멋진 곳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네. 지금 죽기엔 아깝네” 그렇게 또 단순하게 한 계단씩 빠져있던 우울에서 걸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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