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일산까지 워킹맘 해방일지
너 해방일지에 나오는 '김지원' 같애
아침 7시 15분 일산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종종 무지막지 뛰어야 하는 상황이 매우 유감스럽지만, 한대를 놓치면 또 지각을 면치 못하기에 오늘도 기를 쓰고 뛰었다.
새벽 5시 40분 알람소리에 부시시 잠에서 깨어나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출근준비를 한다. 오래된 전기포트의 굉음이 이른 새벽 거실의 적막을 깨우고, 이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려 잠에서 깨어난다.워킹맘의 출근준비는 로봇처럼 빠르게 해야하기에 각성용 커피한잔은 필수다.
전날 저녁 아이들 등교룩과 생수물을 새걸로 바꾸는 일은 해놓고 자서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다.
간단하지만 매일 달라져야 하는 아침메뉴를 빛의 속도로 준비한다. 부엌에서 욕실로, 아이방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소주 들이키듯 커피를 탈탈 털어넣는다.
6시 30분 적당히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를 마시며 나서는 출근길, 컬러TV처럼 선명한 새벽풍경은 여름의 축복중 하나다.
불과 한달 전만해도 강남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던 시절엔 상상할 수 없었던 아침 루틴이다. 서울 강남 끄트머리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왕복 4시간이 넘는 출퇴근을 하게 되다니. 뒤늦게 나의 해방일지를 보고 나니 언니가 왜 김지원이랑 비슷하다고 했는지 알게 됐다. 의도치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드라마 속 설정같은 삶을 살고 있다.
8시 30분 드디어 회사에 도착했다.
사옥이 드디어 매각됐다. 회사는 예정대로 5월에 ㅇㅇ시로 이전한다. 아, 생각보다 퇴사할 시점이 빨리 왔다. 아직 지원한 곳들은 연락도 없는데
내 또래의 연차를 가지고 한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특히 급여생활을 하는 워킹맘이라면 비슷한 고민들을 많이 할 것이다. 더이상 올라가자니 피터지게 싸워야 하고 그만 두자니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황. 일은 계속 해야겠는데 무슨일을 어떻게 해야할까,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자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결혼 전인 스물 아홉살에 입사해서 16년을 다닌 직장이 사옥을 이전한다는 소식은 3년전부터 무성했다. 올 봄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때 쯤 이미 이전했으리라는 상상도 수없이 했다. 직장인들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서울의 강남 한복판에 있는 회사가 얼마나 감사한 건지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건물이 매각되고 이전일자가 나올 즈음 우연히 지원한 곳중 한 군데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망설임 없이 퇴사를 결심했다.
다소 늦어지긴 했지만 전직장은 최근 ㅇㅇ시로 사옥을 이전했다. 집에서 다녔으면 두시간 남짓한 거리로. 사실 출퇴근 거리가 감당이 안된다는 것도 이유중에 하나였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지금 이직한 곳이 하필 비슷하게 먼 바람에 더더욱 그렇다고 주장하긴 힘들다.
한 직장에서 16년을 다녔는데 그만둘 때 고민
많이 하셨겠어요.
가만 생각해보면 그냥 다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오래 다닌 직장과 늘 봐오던 사람들, 장시간 쌓아온 커리어 등등 그동안 이루어 놓은 것들을 계속 지켜나갈 의지가 없었다. 더이상 내가 가는 길에서 비전이 안보였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만들어온 벽을 깨 부수고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스스로 다른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자의와 약해져버린 목소리로는 비슷한 업을 하는 경쟁자들을 이기기 힘들다는 타의도 작용했던 것 같다. 예전의 내 목소리를 알던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 적어도 구구절절 설명하는 시간이 절반정도로 줄어들 거니까. 주위 사람들의 걱정반 호기심 반의 단골멘트들은 예상대로 스트레스가 됐다. 아는사람은 "어머, 목소리 아직 안돌아왔어? 어떻게...!" 모르는 사람은 "목소리가 왜 그렇게 쉬셨어요?" 그리고 나의 대답은 고장난 테이프처럼 무한반복이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성장하니 걱정이 줄어든 것도 한몫했다. 10년 넘게 아들육아에 지치다 보니 멀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작용한 건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10년 넘게 키우다 보니 내린 결론이 있다. 엄마가 잘되고 보자, 내가 먼저 행복하자는 것. 그래서 우선순위를 아이들에서 나로 바꾸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거리가 좀 멀어도 고생을 사서 할 수도 있겠다 마음먹은 거다.
그렇게 나의 이직은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로 부터의 해방이 됐다. 오래 몸담았던 직장으로부터의 해방, 알고 지내던 사람들로부터의 해방, 육아로부터의 해방, 마지막으로 짠하지만 어느정도 받았던 월급으로부터의 해방까지. 월급은 비자발적인 해방이긴 하다.
중간에 휴직기가 있었지만 16년을 거의 꽉채워 다닌 직장을 옮길 때 망설임이 없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오셨나봐요?”
“네?..아 네..”
이직을 한다면 동일 업계로 갈 생각은 원래부터 없었다. 개인적인 수명 면에서도 길게 볼 수 없을 뿐더러 더이상 브랜드 마케팅이 곧 즉각적인 영업성과로 이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업계에서는 벗어나고 싶었다. 동종업계로 이직하면 일은 비슷하겠지만 이상한 사람들이 괜한 텃세를 부리지나 않을까 갈등이 앞섰다. 차라리 전망이 밝은 다른 분야를 찾자고 생각했다.
먼 거리를 불사하고 지금의 직장을 지원했던 결정적 이유는 개인적으로 경험해보고 싶었던 사회 복지 계열의 업무였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다른 분야의 전혀 다른 조직으로 간다는 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행인 건 전부 다 버린건 아니고 홍보업무 경력은 살릴 수 있었다는 거다.
1차 서류가 통과하고 일산에서의 면접이 잡혔다. 되던 안되던 일단 가보자고 마음먹었다. 좀 멀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면접날은 차를 가지고 갔는데도 만만치 않게 오래 걸렸다. 잔뜩 긴장한 나머지 오는길에 막히는 도로위에서 브레이크를 밟은 발에 쥐가 나는 해프닝도 있었다.
우리 동네는 강남에 속하지만 완전 끄트머리라 쇼핑할 때나 여가를 즐길 때 경기도를 드나드는 일이 많다. 그래서 나는 구지 경기도와 서울을 구분지어 생각하지 않는다. 일산에서 면접을 보던 날은 좀 색다른 경험을 했다. 들어가는 입구에 계신 경비실 소장님은 내가 면접보러 왔다는 말을 하고 주차에 대해 물으니 "어디에서 오셨어요?"하고 물었다. 내가 습관적으로 동이름만을 말하자, 잠시 혼돈스러워 하더니 "서울 ㅇㅇ동이요? 아휴, 멀리서 오셨구만"하신다. 먼거는 맞지만 왠지 서울 사람과 경기도 사람을 구분짓는 듯한 말투였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함께 면접을 봤던 분이 내게 단 한마디를 건넸다.
“서울에서 오셨나봐요?"
"네? 아 네..."
나는 그 질문이 어색하고 신기했다. 우리 집에서는 멀지만 어디까지나 서울 옆 경기도인데.다 수도권인데 뭘 그렇게까지...
<나의 해방일지>에서 첫째 기정(이엘 분)이 퇴근후 술을 마시며 ‘전철’이라는 단어를 쓰니까 한 동료가 ‘지하철이지 왜 맨날 전철이라고 하냐’고 타박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기정은 경기도에서는 전철이 지상으로만 다녀 그런다고 당당하게 이유를 설명한다. 나도 2시간 남짓한 출근시간이 따지고 보면 서울에서 2/3, 경기도에서 1/3의 시간을 가는데 경기도 가는 전철을 타고나서는 내내 지상으로 간다. 서울 한강이 보이는 곳에서 출발해 너른 들판과 논밭이 보이는 시골도 지나고 다시 아파트촌이 즐비한 신도시까지 가는동안 시원스러운 풍경이 보이는 덕에 기차여행을 하는 것 같아 좋다.
사십년 넘게 서울에서만 살았지만 지하철과 전철을 분리해서 생각해 보지 않았거늘, 서울에서도 지상 전철 코스는 많은데, 참 얄궂은 대사라는 생각이 든다.
괜찮아요. 우린 예전 목소리는 알지 못하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이직한 직장에서 내가 수술후유증으로 목소리 컴플렉스가 생긴 사연을 고백하자, 직속 상사는 내게 이렇게 말해줬다.
불행중 다행으로 나의 계산이 조금은 맞아떨어진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눈치 없이 호기심만 많은 어떤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훅 질문을 던지기도 해 당황스럽다. 며칠 전 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타부서 어느 분이 갑자기 질문을 투척했다. "근데, 목소리는 왜 그렇게 쉬셨어요?" "아 네..." 다섯걸음 정도 더 같이 가다 헤어질 사이에게 무슨말부터 해야할지 잠시 막막했다. "목 수술을 한 적이 있어요"라고 말한뒤 홀로 걸어가는 길, 또 한번 한숨이 새어나왔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많이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다가도 한번씩 이렇게 무고한 사람들이 날리는 훅에 휘청거리는 나.
그래도 이제는 절망이라는 감정이 다가오면 시크하게 저글링 해버리는 요령이 생겼다. 아직까지는 투포환처럼 날려서 없애버리지는 못한다.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걸 알면서 멀리멀리 "저글링"으로 날려보내는 정도.
인간은 모두 허수아비 같애.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온 미정(김지원 분)의 대사 중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드라마 초반부터 '사내동호회'에 들기 싫어하는 3명이 등장한다. '사내동호회'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 놀기 좋아하고 사교적이고 밝은 캐릭터의 외향인들의 집합체이고, 내향적인 3명은 동호회에 속하고 싶어하지 않아 부적응자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외향인들의 집단에도 100% 외향인들만이 존재하는 건 아닐거다. 그 중 절반정도는 외향인인 척 하거나 되고싶다는 의지로 함께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도 결혼 전까지는 그런 부류에 속했던 거 같다.
드라마 속 해방클럽을 만든 3명의 주인공들은 그런 형식적인 관계에서 해방되고 싶어한다. 남들의 기준에 맞추려고 행복한척, 센척, 능력있는 척 하는 관계가 아니라 진짜 자기를 알고 문제점을 고치고 행복을 찾으려고 애쓴다. 찾다가 못찾으면 못찾은대로 살면 그만이다. 행복한 척도 불행한 척도 안한다. 불행해도 하루 5분만 숨통이 트이면 살수 있다고 말하는 주인공이 영혼이 없는 허수아비보다 훨씬 더 인간답게 보였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열차 위에서
인생 5부가 시작됐다
설령 전 직장이 멀리 이전하지 않았다 해도 내가 과감하게 이직을 감행했을까? 솔직히 망설임이 조금 더 있었을 것 같긴하다. 하지만 난 결국 이직을 했을 것 같다.
전직장에서는 나 또한 매너리즘에 빠졌었고, 내가 갈길도 불투명한 상태였으니까. 할 수 있는 일도 해보고 싶은 일도 더이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괜찮은 척 하며 허수아비처럼 회사를 다닌다는 건 불합리 하다고 생각했다.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자발적인 방황을 선택해야 했다.
이직한지 한달, 40대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업종에서 일을 한다는 게, 지위도 월급도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게 강남과 일산을 오가며 퇴근 후 살림을 하며 살벌하게
산다는 게 맞는 길인지 아직은 모르겠다.
출퇴근 길이 고되지만 대신 혼자만의 시간은 많아져서 좋다. 워킹맘으로 10년 넘게 살며 그토록 갖고싶어 했던 혼자만의 시간을 하루 4시간이나 가진 셈이다.
그동안 사색하고 독서하고 공부하며 다음 스텝을 찾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몸은 고되지만 정신적으로는 점점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나의 인생드라마 5부의 시작은 일단 청신호로 출발했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열차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