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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Nov 26. 2023

두 번째 복싱대회에서 두 개의 트로피를 받았습니다

[후기] 5회 성북구청장배 생활체육대회

더파이팅 복싱짐에서 복싱을 수련한 지 8개월이 됐다. 두 번째 생활체육대회에 출전했다. 첫 번째 대회에서는 아쉽게 판정패했다. 절치부심의 마음으로 두 번째 대회를 준비했다. 주 2-3회 스파링을 했다. 프로 선수들도 스파링 상대가 되어주었다.


처음에는 나와 비슷하거나 잘하는 상대와 스파링을 했는데, 거의 매일 나와 복싱을 수련하다 보니 나보다 실력이 부족한 상대와 스파링을 하게 되는 날도 있었다. 어느새 왕초보 티는 조금씩 벗겨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미련하게도 근육통과 인대 통증을 달고 살았다. "몸까지 망가뜨리며 운동하냐"라는 환청이 들리기도 했지만, 퇴근 후에는 마치 무엇에 홀린 듯 마음과 몸이 모두 체육관으로 향했다.


따져보면 꼭 몸이 망가졌다고 할 수도 없으나 운동이 꼭 건강만을 위함이겠는가. 내게 복싱은 놀이에 가깝다. 복싱장 문을 여는 순간은 RPG게임에서 순간이동을 하듯 또 다른 세계에 풍덩 빠져버리는 순간이다. 복싱장 안에 몸을 담가 한껏 헤엄치다 보면 시간을 잊게 된다. 몸에 있던 힘과 땀이 모두 빠져나가면 그때서야 비로소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놀이처럼 즐기는 마음이 8이라면 의무감과 성실함 이 2 정도 되겠다. 일주일에 4회가량 복싱장에 출석했다. 퇴근후술한잔이 아닌 퇴근후복싱한판.


두번째 생활복싱대회 출전


삼십 대가 되어서야 성과지향적인 스스로를 마주하게 된다. 무엇이든 하게 되면 즐기는 마음을 기본으로 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지향한다. 복싱이란 취미도 마찬가지였다. 프로복싱은 너무 먼 일처럼 느껴졌고 1년에 2~3회의 생활체육대회를 나가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드디어 갈고닦은 원투를 선보일 때가 왔다. 바로 제5회 성북구청장배 생활복싱대회가 11월 11일(토) 종암박스파크에서 개최됐다. 100여 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우리 체육관에서는 총 5명이 출전했고, 나는 27번째 경기. 날씨가 부쩍 추워져서 몸이 잘 풀리지도 않았다. 미트를 치면서 몸을 푸는데 관장님이 몸이 아직 안 풀렸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마도 뭉친 근육을 풀어보겠다고 전날에 러닝이랑 쉐도우를 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난 듯했다. 어쩌겠나. 이것 또한 배움이고 과정이다. 다음번에는 컨디셔닝을 더욱 민감하게 준비해야겠다.


생활복싱인들의 축제


생활복싱대회는 그야말로 축제다. 다들 학생, 직장인 등 본업이 있는 복서들이 취미로 즐기는 복싱 실력을 맘껏 뽐내고 즐기는 자리다. 응원 열기도 프로 경기 못지않다. 본인 체육관 선수의 주먹이 상대 선수 얼굴을 스치기라도 하면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똑같은 내용의 경기는 없다. 하지만 생활복싱대회의 경기 양상은 대체로 비슷했다. 1라운드 초반에는 난타전이 이어지고 1라운드 후반부터는 체력이 빠져 서로 간을 보다가 들어가는 양상이다. 내 경기 이전 경기를 관찰하면서 복싱 시합을 즐겼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누가 이길지 예측하는 건 경기를 보는 재미다.


부쩍 추워진 날 때문일까. 몸이 풀리지 않았다. 친구 명훈이 응원을 와줘서 찍어준 쉐도우 영상을 보니 어깨를 비롯한 상체가 매우 뻣뻣해 보였다. '또 패배하는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나를 잠식할 때마다 '스파링 때처럼만 하자'라고 되뇌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명훈은 "진지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진지, 그 자체였다.


복싱시합장은 시설물 배치 특성상 링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각링은 가운데에 있고 지면으로부터 약 1미터 정도 높이 띄워진 링 위에 두 명의 선수와 심판만이 서 있다. 링을 둘러싸고 선수, 코치 등을 비롯해 응원을 온 일반인들이 링을 주목한다. 물론 자유로운 분위기다. 담소를 나누는 사람도 있고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쉐도우 복싱을 연습하는 사람도 있다.


링 위에 올라 전사가 되다


마침내 내 시합이다. 적어도 내게는 이 순간이 오늘의 하이라이트 아니겠는가. 이전 경기를 볼 여유가 없다. 링 아래에서 주먹도 뻗고 어깨와 머리도 움직여보며 만반의 전투 태세를 갖춘다. 전사가 되어 본 적이 없지만, 전사가 된 기분이 이런 걸까. 생활복싱대회라고 하지만 주연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링에 오르면서 반대편 선수를 바라봤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하지만 생활체육은 상대 정보를 알기가 어렵다. 상대를 마주하는 첫 순간이다. 내 체급은 -65kg이다. 키에 제한은 없다. 내 키는 175cm가 조금 넘는데 체급 내에서 키가 작은 편은 아니다. 마른 체형이라는 단점이 있지만 리치가 길다는 장점이 있다.


기분 탓일까. 상대가 더 길어 보이고 커 보인다. 순간 '이러다 오늘도 지는 거 아냐?'라는 어둠의 그림자가 머릿속을 채웠다.


누구나 처맞기 전엔 계획이 있다. 스파링 때 연습한 아웃복싱 위주의 파이팅을 하다가 기회가 보이면 인파이팅을 펼칠 계획이었다. 초반에는 백스텝으로 아웃복싱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거리가 잘 안 잡히면서 상대와 너무 멀거나 가까운 상태에서 주먹을 휘날렸다. 그간 노력으로 만든 강한 펀치가 땀과 함께 허공을 갈랐다.


1라운드 중반부부터는 근거리에서 레프트바디, 라이트 훅을 섞어 쓰기 시작했는데 몇 개가 상대방 안면에 정확히 꽂혔다. 안면부 타격 소리와 함께 관중석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나왔다. 마치 합주 소리처럼 말이다.


사실 시합 중에는 소리나 관중의 시선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시합장 분위기는 영상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야말로 상대와의 시합에 100% 몰입했던 것이다. 링에 오르면 주변 목소리와 시선은 의식되지 않는다. 오직 상대만을 주목한다. 심지어 라운드 종이 울렸는데 코너로 돌아가지 않는 모습이 보일 정도다. 그만큼 여유 없는 초보 티가 팍팍 난 것이다.


2분 2라운드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심판의 양손이 올려졌고 동시에 홍코너 나와 청코너 상대의 손이 높게 올려졌다. 상대 선수와 인사를 나누고 포옹했다. 뜨거운 승부 끝에 포옹. 복싱하기 전에는 감동 포인트였는데 주 2-3회씩 스파링을 하다 보니 익숙해진 것 같다. 감정의 큰 동요 없이 주먹을 섞는달까.


링에서 내려오자 함께 대회에 참석한 회원들과 응원차 방문한 프로선수가 맞아주었다. 첫 시합 때와 마찬가지로 힘을 빼지 못한 게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다. 갈고 닦은 스텝과 원투, 카운터는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흥분된 붕붕훅(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큰 동작의 훅)만 보여줬다. 아쉬움 투성이다. 연습은 실전처럼 한 것 같은데 실전이 연습처럼 안되었으니 아쉬울 수밖에. 무승부라 더욱 아쉬웠지만 첫 번째 시합보다 성장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배우자 인영이와 친구 명훈도 링 아래에서 반겨주었다. 잘했다며 토닥여주었다. 다른 경기랑 다르게 고요한 분위기 속에 집중된 분위기가 있었다며, 진심이 담기면서도 듣기 좋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인영이와 명훈이 촬영한 영상을 보니 시합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뭉클했던 건 영상 속에서 두 사람의 응원의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배우자가 링 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복싱 자체를 즐기고 있는 인영이의 감탄 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실력을 믿었기 때문이라는데 진실은 인영이만이 안다.


시합 외적으로도 선물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첫 번째 순간은 시합을 마친 직후 청코너 상대 분이 내 코너 쪽으로 찾아온 것이다. 인사하며 무승부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나누며 겸손함을 보이셨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관장님은 옆에서 "훈훈합니다~"라는 말씀을 해주시며 기념 촬영을 해주셨다.


무승부라는 결과가 낼 수 있는 귀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승자와 패자가 있었더라면 어떤 위치에서든 상대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게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인사를 해주신 상대의 인성에 놀랐고 배워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되었다. 스스로 '인복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나르시시즘적 생각이 스칠 때쯤 '누군가의 인복이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두 번째 선물 같은 순간은 김남훈 프로레슬링선수를 만난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에 칼럼 하나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는데 복싱시합장에서 보니 신기했다. 이날을 충분히 즐기기 위해 기념사진을 요청했고 흔쾌히 촬영에 동의해 주시며 셀카까지 찍어주셨다.


성실함을 인정받은 행운의 최우수선수상 수상


어느덧 이날 준비된 모든 시합이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최우수체육관, 최우수선수상 등을 시상했다.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 찰나에 "최우수선수상 더파이팅복싱짐 이권우(?).."이 호명되었다. 내 이름은 이현우인데...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트로피를 손에 거머쥐었다.


행운이 따랐다. 솔직히 나보다 훌륭한 실력을 보여준 경기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혼신을 다해 파이팅을 펼쳤던 게 심사위원에게 인상 깊었던 게 아니었을까. 상대도 비슷한 실력이어서 멋진 경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건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생활복싱대회에서는 무승부여도 우승 트로피를 수여한다. 결국 그날 우승 트로피와 최우수선수상 트로피 두 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 유튜버 원지 씨의 표현처럼 "기분 째지네~"가 절로 나왔다.


두 번째 생활복싱대회를 마쳤다. 경기 내용은 아쉬웠지만 시합 자체를 마쳤다는 사실에 후련했다. 그리고 기대되었다. 생활복싱대회가 복싱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라 성장해 가는 일부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최우수선수상 수상이라는 감투 효과는 대단했다. 한 삼일동안은 정말 챔피언이라도 된 듯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니 충분히 즐기자'


동시에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는 트로피 옆이 아니라 지난한 연습을 반복하는 복싱장이라는 걸 상기했다.


트로피는 내려놓고 달리기, 줄넘기, 원투 연습을 해야 한다. 최우수상 수상은 복싱 실력으로 인정받았기보다 그간 흘려온 땀과 시합을 향한 집념이 만들어낸 트로피라고 되뇌었기 때문이다.


수상 이후 관장님께서도 “그동안 성실하게 훈련한 것에 대한 보답 같다”라며 함께 축하해 주셨다. “성실함은 현우의 가장 큰 재능이야”라고 늘 말해주던 인영이의 칭찬도 떠올랐다. 호명되는 순간은 얼떨떨했지만 성실함을 인정받는 순간 같아 울컥하기도 했다.


복싱은 삽질이다



복싱은 삽질과 매우 닮아 있다. 땅은 파면 팔수록 똑같은 양의 흙을 퍼내기엔 힘들어진다. 팔수록 땅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복싱도 몸의 한계에 다다르면 주먹과 다리의 무게가 천근만근이 된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는 상대를 상상하며 원투를 뻗는다. 하지만 몸의 힘과 땀이 한참 빠져나갈 때쯤이면, 상대는 흐려지고 내 한계는 선명해진다.


한계를 마주할 때면 그만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실제로 그만하는 일도 허다하지만, 더욱 강해지기 위해서 조금 더 연습하고 돌아오는 날도 있다. 한계를 직면하고 스스로 뚫고 나가야만 성장한다. 이게 바로 복싱의 매력이다.


꿈같은 주말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퇴근 후 복싱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은 삽질을 얼마나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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