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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Apr 07. 2024

서울역, 묘하게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민자역사 개발의 후폭풍

서울역은 서울의 얼굴이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방문하는 타지 사람들, 외국인들에게는 서울의 첫인상이다. 서울시민인 나도 처가나 고향집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 서울역을 방문한다. 


서울역사 내에는 쇼핑몰과 마트가 있다. 간혹 들려서 아이쇼핑을 하거나 실제 상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특히 부모님이 고향에서 서울에 올 때면 들르게 되는데, 쇼핑을 좋아하는 엄마 때문이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역 설계, 성공한 도시설계라고 볼 수 있을까?


우리 부부는 어느덧 삼십 대 중후반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뚜벅이다. 아이 없이 딩크(DINK)로 살아가고 있고 대중교통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진 서울에 살다 보니 자가용의 필요성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도시공학을 공부하고 도시를 조금 더 관심 있게 관찰하는 한 시민으로서, 서울역에 갈 때마다 보행자와 교통약자는 뒷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개의 층을 이동해야만 한다. 다른 지역에서 서울로 오는 방문객으로 가정하자. 서울역 플랫폼에서 내리면 2층 콘코스(대합실을 비롯해 역사 출입구와 승강장을 연결하는 공간)로 가야만, 서울역을 벗어날 수 있다. 택시를 타든, 자가용을 타든, 버스나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마찬가지다. 선로가 많은 기차역 구조상 한계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선로의 개수가 적은 곳은 차단기 같은 통제 시스템으로도 단층 설계가 가능하다. 정동진역이 대표적이다. 선로가 많거나 이용객 수가 많으면 규모적으로도 충분치 않고 안전상 이유 때문에라도 콘코스와 승강장의 층을 구분하여 계획한다.


보행자와 교통약자는 뒷전인 서울역


서울역의 문제는 대합실에서 역사 외부로 빠져나갈 때다. 대중교통 이용객에게 매우 불편한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서울역은 4호선과 1호선이 지나가는 환승역이다. 지하철을 타려면 서울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걸어서 한참을 이동해야만 지하철을 탈 수 있다. 


서울역 정문 외부 연결 통로


시내버스를 승차하기 위한 통로는 더욱 가관이다. 계단을 한참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 정류장으로 향한다. 이는 청량리역, 용산역도 마찬가지다. 다른 교통수단으로 환승하기 위해 이렇게 많이 이동해야 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해야만 하는 걸까.


게다가 교통약자에게는 이동통로는 더욱 난관일 수밖에 없다. 에스컬레이터도 운영되지 않을 때가 많아 계단을 오르기 힘든 노약자, 임산부에게는 고행길이다. 휠체어나 유아차 이용자는 서울역 콘코스와 외부 1층 간 경사가 심하다 보니 직선거리로는 경사로가 확보되지 않아 빙글빙글 돌아가야 한다. 또한 경사로 안내표지판이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고 조형물마저 설치되어 있어 더욱 시선을 분산시킨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발간한 철도역사 설계(2019)에 따르면 곳곳에서 교통약자를 배려한 설계 방침을 볼 수 있다. 출입홀을 예시로 들면, 장애인들이 쉽게 출입할 수 있도록 단차를 없애야 하며 회전문 등은 설치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한다. 철도역사 내부는 교통약자를 배려했지만, 외부와의 연결에 있어서 교통약자가 배려되지 않았다는 점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민자역사 문제, 과도한 상업시설... 무엇이 우선인가


두번째는 주변 공공시설과의 연계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구 서울역 역사는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으로 원형을 그대로 복원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했다. 전시, 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의 무대가 되고 있다. 신 역사에서 구 역사로 가려면 상업시설을 통해 가거나 외부 광장으로 나와 이동해야만 한다.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로7017(이하 7017)은 고가도로를 재생한 공원이다. 7017에서 바라보는 서울역 주변 야경도 볼만하다. 차량의 방해 없이 서울역에서 회현역까지 이동할 수 있는 산책로다. 7017도 접근성이 떨어진다. 신역사가 준공된 이후에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신역사를 설계할 당시 고가도로로 이용되던 7017이 신역사로부터 떨어져 있는 건 합리적인 설계안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현재 7017은 신역사에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상업시설의 규모도 문제다. 남진 외(서울시정연구원, 2002)는 민자역사의 문제 중 하나로 사업성 위주의 과도한 상업시설 개발을 꼽는다. 


서울역 대합실은 늘 사람이 붐빈다. 대합실 내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다. 반면 상업시설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재 서울역, 용산역, 청량리역, 수원역 등의 철도역은 역무시설보다 상업시설이 훨씬 넓다.


더구나 민간은 영리를 추구하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공공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코레일 또한 공공성보다는 사업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게 문제다. 서울시정연구원 보고서(본문 176쪽 등)에 따르면, 코레일은 민간으로부터 이익배당금을 받는데, 이게 상업시설의 사업성에 따라 배당되기 때문이다.


서울역 공간 배치, 철도역과 백화점 무엇이 우선인가


도시설계 관점에서 서울역의 문제는 '공공성 결여'라는 다섯 글자로 압축할 수 있다. 대중교통 접근성의 취약함이고, 대합실 규모 부족, 주변 공공시설과 연계성 부족이다. 대한민국 도시설계의 수준이 낮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일까.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건축 기술적인 한계라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경제적인 이유라면 납득할 수 없다.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자면 민자역사 개발의 문제점이지 않을까. 서울역은 민자역사다. 민자역사는 민간 자본이 투입되어 건설된 역사(驛舍)다. 민간 자본이 투입되는 대신 민간은 역의 일부 공간 권리를 지닌다. 70년대 이후 역이용객의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지만 기차역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철도청은 만성적 재정난에 시달렸고 결국 고안해 낸 것이 '민자역사'다.


민자역사는 대규모 상업시설을 동반한다. 경제적 타당성을 확보하여 지속적인 운영을 가능토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역을 보자. 신역사는 남쪽 편에 조성되었다. 구역사 뒤편으로는 마트가 있고 구역사와 신역사 사이에는 쇼핑몰이 자리 잡고 있다. 용산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출입구와 대합실 사이에 민간상업시설이 위치해 있다.


서울역사 확대배치도인데, 주차장으로 써있는 곳도 1층은 주차장이지만 2층부터는 상업시설이다.


이는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전자제품이나 가구 등과 같이 계획적으로 구매하는 상품이 있는 장소로 가는 경로에 의류나 신발 등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상품을 배치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기차라는 이동수단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자들이 상품이 비치된 상업시설을 반드시 지나치도록 공간을 배치한 것이다.


상업시설의 규모를 넓게 계획하더라도 공간 배치만이라도 공공성을 반영했으면 어땠을까. 현재 쇼핑몰과 마트 자리에 신역사를 배치하고 신역사 위치에 쇼핑몰을 자리 잡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대중교통과 신역사 간의 거리도 가까워질 뿐만 아니라 현재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되는 구역사와 신역사의 연계성이 좋아졌을 것이다.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지금보다 더 많은 방문객이 문화예술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7017과의 연계성도 향상될 것이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특별히 주목받는 역은 아니지만 해외여행 중 방문했던 몇 개의 기차역이 떠오른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시즈오카역은 기차역 정문쪽은 시외버스, 후문쪽은 시내버스를 탑승할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스위스 취리히역과 루체른역도 비슷하다. 취리히역은 짧은 횡단보도만 건너면 시내버스와 트램(노면전차)을 탈 수 있고 루체른역도 바로 앞에 버스 승강장과 유람선여객터미널이 있다. 대중교통 간 연계성이 좋아 환승하기가 편하고 휠체어나 유아차 이용자들의 이동도 편리하다.


루체른역 앞 버스승강장


시즈오카역 버스승강장과 택시 정류장

공정한 도시, 살기 좋은 도시가 되려면


철도역 계획 및 설계 시에는 반드시 시민을 고려해야만 한다. 여기에서 시민은 존 롤스가 말하는 '최소 수혜자'에 가깝다. 중부대학교 강현수 교수는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존 롤스의 표현을 빌려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공정하다"라고 말했다. 교통 영역에서는 자차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들, 일반 보행자보다는 노약자, 임산부, 휠체어나 유아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최소 수혜자에 해당된다.


서울역은 다재다능한 도시 공간이다. 철도역이라는 공공시설과 민간상업시설 그리고 도심공원까지 결합하여 복합공간이다. 그러나 서울역사 내 배치나 동선을 살펴보면 공공성보다 경제성의 그림자가 큰 ‘실패사례’로 보인다.


민자역사 개발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공정하고 살기 좋은 도시를 위한 개발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가. 갈 길은 멀지만 최소 수혜자가 살기 좋은 도시에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을 이제라도 고민해봐야 될 때다.


* 참고자료

- 철도역사 설계, 2019, 한국철도시설공단

- 국유철도 민자역사 개발에 대한 서울시 정책대응방안, 2002,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오마이뉴스 게재 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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