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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네 Feb 15. 2021

부산 기러기 첫날

오지 않았으면 하는 오늘이 왔어요.

부산으로 발령받아 두 딸과 헤어져야 하는 오늘, 결국 왔어요.

복직하기 전부터 혹시 원거리 발령 나면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았지만, 고민한다고 아이들 케어를 어떻게 할지 무슨 방법이 생각나지도 않고, 마음이 답답해 와서 원거리 발령 안 나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닥치면 고민하자 생각했죠. 정작 닥쳤는데 해결책이 안 나옵니다.


출근은 해야 하니 정리되지 않은 마음과 아이들 케어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집을 나섰습니다.

부산 오는 내내 마음이 그저 아릴 뿐입니다.

나오는 눈물을 여러 번 눌러가며 마음을 다져봅니다.

왔으니,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자, 이 시간 헛되이 보내지 말자, 씩씩하게 보내자 생각하고 생각했건만, 무거운 캐리어에 발이 찍히고, 환승하는 전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큰 캐리어와 가방 3개를 들고 낑낑 계단을 올라 전철을 타니, 마음이 더 먹먹해졌습니다.

합숙소가 있는 전철역에 도착했는데, 나가는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비가 많이 오지만, 차라리 엘리베이터 있는 출구로 가서 우산 쓰고 걷는 게 낫겠다 싶어 엘리베이터 있는 출구로 올라갔습니다. 힘겹게 우산을 펴고, 한 손으로 물 웅덩이 위로 캐리어를 끌고 교차로에 이르렀는데, 횡단보도가 안보입니다. 비를 맞고 사방을 둘러봐도 안 보입니다.

결국 다시 지하로 내려가 계단을 올랐습니다.

또 잘 못 길을 들어섰군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울퉁불퉁한 길을 왔다 갔다, 비 다 맞았습니다.

드디어 합숙소 입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알려준 비밀번호가 잘 못됐는지, 합숙소 공동현관문이 안 열립니다.

10번을 넘게 시도하다 결국 경비실에 도움을 청해 올라갔습니다.



출발 전 연락하여 함께 쓰게 될 2명의 직원이 이미 와 있는 것을 알았기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아무도 없는 캄캄한 거실을 보니 당황스러웠습니다. 비에 젖어 혼미해진 정신으로 우두커니 현관에 서있었더니 한 참 뒤 한 명의 직원이 나옵니다.  방 3개 중 남은 방, 현관문 바로 앞 방을 쓰면 된다고 합니다.

바닥은 찢어져 있고 더럽습니다.

핸드폰도 제 마음처럼 배터리가 다 되었네요. 핸드폰이라도 챙기고자 가방에서 충전기를 찾아 꽂으니, 전기도 안 들어옵니다.

닦아도 닦아도 더러워, 닦기를 그만뒀습니다.

여기 과연 얼마나 있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소독제를 뿌리고, 집에서 가져온 침대 시트를 깔고, 오기 전 아이들이 덮었던 이불에 코를 박았습니다. 일단 내일이 빨리 오기를 바랐는데,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왜 여기 있는 거지?

여기 있어야만 하는 건가?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지?

아이들이 그립습니다.

매일 뽀뽀하던 보드라운 아이들 볼, 손, 발가락이 아른거립니다.


아이들에게 전화했습니다.

5일 밤만 자면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세어봅니다.

보내야 하는 밤이 5일 밤이 맞네요.

원망스러운 마음에 새려는 눈물을 참고자 이를 앙물어봅니다.


아이들 옆에 있으면 안 되는 일인가요?

왜 무조건 순환 근무를 해야 하죠?

혼자 육아를 하는 건 억울하지 않았습니다.

연세 많은 부모님께 폐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 낳아서 승진 못한다는 말을 하는 회사보다 저를  통해 이 세상에 온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중요했기에, 5년 휴직을 했습니다. ‘나’의 욕심이 아닌 ‘엄마’로서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다짐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 있는 거죠?


아이들을 보기 위해 5일을 보내야 합니다.

그리움, 원망으로 잠 못 이루는 길고 긴 첫날밤입니다. 오늘, 꿈이었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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