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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양조장 May 08. 2020

[월간 주방장 2020] 4월호

코로나 시대의 한국술 탐닉

누군들 알았을까요? 코로나19가 우한 폐렴이라고 불리던 그 시점부터 우리의 일상이 송두리째 달라질 것이란 걸. 그토록 당연했던 보통의 일상들이 제한되고, 매일을 불안함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 것이란 걸. 예상했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었을 텐데 무방비 상태로 맞이한 바이러스의 공포는 모두의 삶을 꽁꽁 잠가버렸습니다. 주방장양조장을 시작한 지 한 달만에 맞이한 코로나는 정말 예상치도 못한 변수이자 위기였습니다. 양조장 겸 비스트로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장사하면 별에 별일이 다 생길 거고 쉽지 않을 것이란 조언들을 수도 없이 들었고 물론 어느 정도 예상도 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 일이 코로나일 줄이야!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극복할 수도 없고 힘낸다고 이겨낼 수도 없는 전염병일 줄이야!


3월 초 대전에 확진자가 점점 생겨날 즈음 2주간 임시휴업 기간을 갖고 조심스럽게 양조장 문을 열었어요. 걱정과 염려로 하루를 시작하고 소독과 위생 관리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 채 하루 영업을 마무리하고요. 가장 아쉬웠던 점은 3월부터 시작하려고 했던 양조 클래스는 잠정 연기되었고, 기획했던 와인 시음회마저 무기한 미뤄진 점이었습니다. 그래도 모두 함께 조심하고 외부 활동을 줄여야 하는 시기였기에 최소한의 접촉으로 거리두기에 만전을 기했습니다. 물론 초반에 맞닥뜨린 위기였지만, 일상을 더 단단하게 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어요. 출시될 술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고, 한국술과 어울리는 메뉴들을 더 정비하며 주방장양조장의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고 조용히 맞이한 4월은 너무나 따스했고, 모두가 고생하고 조심해준 덕에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시대에 살게 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물리적 거리는 두었어도, 심리적인 거리는 가까이하고 싶었어요. 힘든 시기일수록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고, 통하고 있다는 느낌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만나 술과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느슨한 연결'을 추구하며 한국술 살롱 [주주총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酒방장양조장에서 한국술(酒)을 아우르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모임, 酒酒총회는 격주 화요일 밤마다 열리는 양조장 살롱입니다. 문토 [술빚는밤]으로 한국술 모임을 시작하면서 꼭 내 공간이 생기면 양조장 살롱을 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바람을 감사한 주주분들과 함께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모집 이틀만에 마감된 주주총회 시즌1


매달마다 그 달에 마신 한국술을 공유하는 '월간주방장' 이번 4월호에서는 주방장양조장에서 열렸던 주주총회 1회차에 즐긴 술을 소개합니다. 아직은 코로나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지만,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조심스럽게 연결감을 찾아보았어요. 물론 한국술들과 함께요.

첫 안건은 한국술 모임, 양조장 살롱인 만큼 전국의 한국술 탐닉이었습니다.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전라, 경상, 제주까지. 각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술들을 선정했어요. 앞으로 함께 즐겨볼 한국술들이 정말 많지만, 그중에서도 첫인상이 좋게 남을 수 있는 술로 골랐어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 있다는 건 참 멋진 문화라고 생각하는 게 그 지역의 색깔과 추구하는 느낌을 오롯이 담고 있어서에요. 또 각 집집마다 달라서 매력 있었던 가양주 특징이 지역에 아직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이번 주주총회 첫 만남에서 마신 술들을 마신 순서대로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충청지역의 한국술은 두견주에서 백련misty로 교체되었습니다.)



주주총회 1회차, 한국술 탐닉의 주인공들


1. 백련misty_충청

백련 misty를 첫 시작주로 마신 이유, 튀지 않는 은은함 때문입니다. 당진에 위치한 신평양조장의 백련막걸리는 연잎을 이용해 빚은 막걸리로 부드럽고 가벼우며 둥글둥글한 매력이 특징입니다. 어디 하나 부담스럽거나 날카롭지 않아서 아주 보드라운 탁주의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었어요. 충청도를 대표한 백련 misty를 마시며 주주들이 연잎 향을 열심히 느껴보려고 했지만, 그 누구도 찾지 못했다는 사실...!




2. 나루생막걸리_서울

"이 막걸리는 생긴 것도 서울처럼 생겼어요"

도시의 세련됨이 심플하고 감각적인 라벨에서 뿜어 나오는 이 막걸리는 서울 술 맞습니다. 한강에서 연결점 역할을 하던 나루처럼 전통과 현대를 잇는 한강주조의 나루생막걸리는 백련 다음에 마셔서 그런지 더 달게 느껴졌습니다. 서울 경복궁쌀로 빚는 6도의 나루생막걸리는 신선한 가벼움과 향취를 자랑합니다. 전통주 플레이버휠을 참고해서 시음했는데, 자연스럽게 과일향에서도 특히 바나나가 연상되었고요.




3. 해창막걸리_전라

바다의 창고라는 뜻을 가진 양조장 해창주조의 대표작 해창막걸리 6도를 이어서 마셨어요. 주방장양조장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로 꼽히기도 한 이 막걸리는 전라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생산됩니다. 가게에서 이 술을 추천해드리면 종종 해남에 놀러 가셨다가 한 잔씩 드시고 오신 분들도 참 많더라구요. 그만큼 해남을 넘어 전라를 대표하는 탁주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에 마신 탁주들보다는 밀도감이 있고 쌀과 누룩의 촘촘한 느낌을 선사하는 이 술은 호불호 없을 탁주라고 생각해요. 주주총회를 위해 두 달 숙성한 해창도 마셨는데, 오히려 더 신선하고 가볍게 달라진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숙성의 신기함을 몸소 맛봤습니다!




4. 홍천강탁주_강원

휘몰아치는 빨간 라벨이 홍천강을 나타내는 멋스런 막걸리, 강원도 홍천 예술주조의 홍천강탁주도 마셔봤습니다. 멋진 라벨과 병을 보고 주주총회 멤버들 모두 와인같이 고급스러움에 처음 놀라고, 굉장히 매트한 탁주의 묵직함에 두 번 놀랐습니다. 예술주조에서 손수 빚는 밀누룩에서 전해지는 구수함과 콤콤함, 그리고 진득한 쌀의 느낌이 예스럽고 신묘한 맛을 자아냈어요. 부드럽고 둥글한 맛의 탁주들을 먼저 맛본 터라 더 강렬하게 뇌리에 남았던 홍천강탁주! 멤버들이 점점 한국술 맛과 향 표현에 익숙해지면서 '상황버섯'이 느껴진다는 감상도 나눴고, '흙향'이 진하게 느껴진다는 분도 있었어요. 같은 술을 마셨지만 다른 평가, 재밌습니다!




5. 봇뜰탁주_경기

멤버 중 한 분이 최애(최고로 애정 하는) 술로 꼽는 봇뜰탁주로 산미의 재미를 이어갔습니다. 봇뜰탁주는 '모 아니면 도' 반응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탁주입니다.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것만 한 막걸리가 없다고 하시지만, 낯선 분들은 톡 올라오는 산미에 흠칫 놀라기 때문이죠. 탁주에서 산미는 호불호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고급스러운 요소 중 하나라고 봅니다. 입맛을 돋우며 다음 술을 자연스럽게 부르는 산미는 양조에서 다양한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잘 발현되는 맛인 만큼 봇뜰양조장의 이 막걸리는 정말 애정 할 수밖에 없네요.




6. 오메기술_제주

오메기떡은 전 국민이 알아도, 그래서 그 오메기가 뭔지 묻는다면?! 당황하기 십상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메기가 뭔가 하면, '차조'의 제주 방언입니다. 학창시절 급식 먹을 때 자주 나오던 밥에 알알히 박혀 있던 그 노란색 곡식입니다. 지형적으로 쌀농사가 어려운 제주에서 쌀 대신 흔히 자라는 오메기로 빚은 약주 오메기술은 깔끔함과 청량함이 특징입니다. 누룩향이 진한 약주들과는 달리 가볍게 스치는 곡향과 가벼움 때문에 시원하게 마시면 매력이 돋보이는 술이기도 합니다. 도수는 13도지만 알콜향이 세게 올라오지 않아 약주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도 입문주로 추천드리는 오메기술이었습니다.




7. 명인 안동소주 45_경상

끝판왕은 마지막에 등장하듯, 가장 고도수의 술을 마지막으로 아껴두었습니다.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 45도는 유려한 백자 호리병에 담겨있어서 술을 따를 때마다 사극의 한 장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아요. 병목을 잡고 '나으리 한 잔 받으시옵서서' 같은 사극톤 대사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보리가 위스키를 만들고, 과일이 브랜디를 만든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쌀로 소주를 탄생시킵니다. 안동에 총 7곳의 안동소주 양조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명인으로 지정받은 안동소주는 조옥화명인과 박재서명인 안동소주 단 두 곳입니다. 둘 다 다른 매력을 지녔지만 박재서 명인의 안동소주 45도는 정말 깔끔해서 '고급스런 백색의 맛'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주 한 잔을 마시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찐한 향기를 먼저 느낄 수 있고, 이어서 따듯하게 올라오는 향을 두 번 느낄 수 있는 안동소주. 고량주 좋아하시는 멤버분은 소맥이 아닌 고량주+맥주 조합을 알려주셨는데 나중에 안동소주와 맥주를 섞어본다면... 상상만으로도 향과 맛이 엄청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코로나시대에 한국술들을 탐닉해 본 주주총회 첫 번째 이야기를 글로 전합니다. 처음엔 우울하게 글 운을 띄웠지만, 함께 나누었던 술들을 떠올리며 정리하다 보니 남은 날들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아집니다. 각자의 일상에서 주의하며 웅크리고 있는 나날이지만 마음으로, 취향으로, 관심으로 연결됨을 느끼면서 서로의 방식으로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이 시간에도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애써주시는 모든 분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전하며 노력이 헛되지 않게 조심하고 또 배려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가 가장 보통의 삶을 찾길 바라면서 이번 달 월간주방장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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