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오늘도 잊지 않고 나를 찾아온다
누군가 아프다 하면 이유를 묻곤 했다.
"아이고, 어쩌다가?"
집요하게 군 적은 없지만 습관처럼 물었다. 빗길의 낙상이나 교통사고면 퍼뜩 납득했고 위염이라면 평소 짜게 먹는 그의 식습관을 염려했고 방광염이라면 면역력이 중요하다는데 어쩌나 걱정했다.
과거가 현재를 만든다는 역사 전공자로서의 알량한 습성인지, 투입한 대로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는 산업주의적 접근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쭉 그래왔다. 별다른 문제의식도 없이.
몇 달 전 일이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뭔가 이상했다. 평소처럼 외다리로 서서 양말을 신으려는데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요통이 몰려왔다. 팬티를 입을 때는 더욱 가관이었다. 양말은 앉아서 신었지만 팬티는 곤란했다. 양말보다 팬티가 입기 더 어렵다는 것은 미처 상상 못한 충격이었다. 노년의 내 존엄을 떠올렸다.
습관대로 물었다. 왜? 어쩌다가? 넘어지거나 자빠진 적도 없고 삐끗한 적도 없다. 디스크나 협착증이나 그 비슷한 것을 앓았던 적도 없다. 운동부족도, 과다도 아니라고 판단한다. 장시간 앉아 있으면 목과 허리가 뻐근하긴 했지만 최근 들어 무리를 한 것도 아니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병원에 가볼까 했지만 가지 않았다. 오진으로 병을 악화시킨 경험과 무릎 통증으로 진료를 받았던 경험을 종합해 보면 환자도 내 몸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른다. 또 가장 좋은 처방은 휴식일 때도 있다. 그래서 몇 달간 통증을 견뎠고 다행히도 서서히, 아주 점진적으로 나아졌다.
그 기간 동안 더 악착같이 운동을 했다. 좋은 해결책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느리게나마 통증이 나아졌으니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싶은데, 무엇보다도 뛰는 동안에는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달리고 또 달렸다. 그 사이에도 어쩌면 그렇게 잘 달리냐는 말을 들었다. 요통으로 팬티조차 입기 힘든 나는 실없이 웃을 뿐이었다.
영원히 젊고 건강하리라 생각한 적은 없다. 아무리 내가 노력하고 조심한다 한들 반드시 늙고 병들리라는 것을 안다. 나는 질병과 죽음을 꽤 자주 떠올리고 가끔은 병적인 것이 아닐까 우려한다.
그럼에도 나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노화와 질병은 시나브로 찾아오는 동시에, 어느 날 갑자기 덮쳐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이유가 있다 해도 언제나 다 파악할 수는 없고 그저 감내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살아 있기 때문에 늙어가고 또 아픈 것이다. 그간 이유를 물었던 나를 반성한다.
3박 4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많이 걷고 마시고 즐겼다. 나는 내 몸을 맘껏 쓰는 여행을 사랑한다. 언젠가 내 여행의 모양은 바뀌게 되겠지만 그건 그때 일. 아직까지는 몸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잘 다녀온 뒤 남편이 말했다. 마지막 날에는 조금 힘들었노라고. 그의 지병인 무릎이 살짝 아팠다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말했다. 왜 말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면 걷지 않았을 거라고. 나는 우리 여행이 바뀔 시점이 생각보다 일찍 도래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결론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그는 말했다. 얼마 기간이 남지 않은 것 같다고. 더 자주, 더 부지런히 다니자고. 걷지 않는 여행은 그거대로 나중에 즐기고 지금 즐길 수 있을 때 더 많이 다니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몸에 대한 배려는 조금씩 늘려야겠지만 그래, 그러자. 한동안 사라졌던 여행 욕구가 다시 샘솟았다. 늙어가는 우리 몸을 보듬으며,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