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황작물 Jan 15. 2024

새해 첫날 도쿄의 평화로움, 가슴이 아팠다

인파가 몰린 도쿄 센소지에서 떠올린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수용되기를

어쩌다 보니 새해를 도쿄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붐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평소와 다르게 보내는 것이 여행의 맛이겠다 싶어 도쿄의 가장 오래된 절이라는 센소지로 향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새해 첫 참배를 하며 복을 기원하고 한해 운을 점친다고 들었다.


그러니 붐빌 것을 예상하고 왔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센소지로 가는 길부터 사람으로 장관을 이뤄 지도도 필요 없었다. 도로는 전면 통제되었고 엄청난 수의 경찰들을 볼 수 있었다. 도쿄에서 살다 온 지인에 따르면 이 지역에 원래 사람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도로를 통제하거나 경찰이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 한다. 새해 첫날이기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인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음에도 한없이 평화롭고 심지어 고요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뜻하지 않게 부딪치고 인상을 찌푸릴 법도 한데 그런 일이 없으니 소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요하게 느껴진 듯하다. 내 생애 그렇게 많은 군중 속에 있던 것은 처음일 텐데 스트레스가 없었다. 기묘한 경험이었다. 


그 평화로움과 고요함은 일본인의 특성일까. 개인의 특성보다 우선시 되는 국민성이라는 것이 실재하는지 잘 모르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오직 그것 때문은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센소지에 모인 수많은 인파는 다양한 국적으로 이뤄져 있었으니까. 내가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당시 내가 느낀 평화로움과 안정감은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던 통제 덕분이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의 지시에 따라 길을 걷고 또 멈추길 반복하며 주변을 둘러보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야 했던 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에.


예상할 수 있었고, 막을 수 있었던 그 일 

센소지, 경찰의 통제에 따라 움직이던 사람들


그날을 좀처럼 잊을 수 없다. 몸이 좋지 않아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녘 아빠의 전화로 잠에서 깼다. 아빠는 다급하게 물었다.


“너 어디야? 집이야?”


나는 그렇다고 답하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아빠는 ‘이태원 때문에’ 놀라서 전화했다는 말만 남기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아빠에게 급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님을 파악했으므로 다시 자려고 했지만 잠은 달아나버렸다. 침대에 누운 채 이태원을 검색했고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깊이 자고 있던 남편이 여전히 잠에 취한 채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온전한 문장을 만들지 못하고 되는대로 단어들을 나열했다. “이태원에서, 죽었대, 사람이, 다치고, 많이.” 내 말을 들은 남편은 또 물었다.


“설마, 압사야?”

나는 그런 것 같다며 침통해했고 우리는 큰일이 아니기를 기원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서야 내가 압사인 줄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을 때 남편은 무슨 소리냐며 어리둥절해했다. 잠에 취해 있던 그는 지난밤 우리의 대화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잠결의 그는 분명히 콕 짚어 물었다. 압사냐고. 


다시 말해 이태원 그 좁은 골목골목에 사람이 많이 몰리면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는 것은, 비전문가도 잠결에서조차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상 가능하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라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다. 충분히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날, 참사가 벌어졌다. 


그 후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 단위로 보고서를 만들고 원인을 규명해도 모자랄 판에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시에 따랐을 말단 공무원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것은 오히려 진실을 덮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야당 단독으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로 인해 국론이 분열될 거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159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한 사건을 조사하는데 대체 국론이 왜 분열된다는 건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사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은 무책임한 말과 행동으로 일관했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탄핵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결국 탄핵이 기각되었다 해도 당시 정부의 무능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전 문화일보 기자 정혜승은 이태원 참사에 관해 세세하게 기록했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정부가 없다>. 


언론은 이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나는 반드시 이 법이 수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부디 밝혀달라. 그날, 정부는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보여주길 바란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건재한다는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