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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부디

by 박선희

새해 첫날엔 일출을 보러 산에 갔다. 알람 소리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데 아주 이른 시간도 아닌데 밖이 캄캄했다. 산 입구부터 사람들이 많았다. 꽤 한참을 올라가는데 올라가는 동안 왼쪽 하늘이 점점 붉어지길래 저기가 동쪽인가 보다 했다.

제일 꼭대기에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숙였다가 발끝을 세웠다가 기웃거리며 해를 기다렸다. 일출 예보 시간인 일곱 시 사십팔 분이 지나도 해가 나오지 않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래도 유독 붉게 물든 산등성이는 있었다. 백 명도 넘을 것 같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섰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모두가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산등성이가 붉어지고 붉어질수록 기다리는 마음이 점점 부푸는 게 느껴졌다.

마침내 해가 머리를 살짝 내보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 모두 한목소리로 ‘우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너무 동시에 뱉어서 거짓말 같은 ‘우와’가 산꼭대기에 울려퍼졌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렇게 쉽게 하나가 된다.

어렸을 때는 큰 사고 소식에도 무감했던 것 같다. 큰 사고일수록 수천 수백 년 전의 전쟁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졌다.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딴 세상의 일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완전한 남 같지 않아서 괴로움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해를 기다리는 동안 두 대의 비행기가 지나갔는데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무안 공항에 도착하기 전의 비행기도 저렇게 하늘을 날았었겠지. 무리지어 가는 새들의 날개짓에 슬픔이 겹쳤다. 누군가에게는 비행기도 새도 오랫동안 괴로움이겠구나,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조차 괴로웁겠구나. 비행기도 새도 괴로움의 이름이 되어 버리다니 세계는 역시 무자비하다.

해는 구름에 가려 제 모습을 다 내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서둘러 돌아갔다. 나는 기다리고 싶었다. 구름을 걷고 올라오는 붉고 둥근 해를 보고 싶었다. 기다리며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는데 해는 구름 속에서도 제 할일을 해내서 하늘이 시시각각 달라졌다. 몇 번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넓은 하늘은 새롭게 아름다워 갔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새도 어쩔 수 없이 아름다웠다. 산등성이도 도시의 건물도 아득히 먼데 새들만이 가까이서 빈 하늘을 가르며 훨훨 날았다. 너도 너대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구나, 하루를 살아가는구나. 천천히 펄럭이는 그 날개짓이 애틋해서 울컥했다. 무자비함과 아름다움이 이토록 함께라니 너무나 세계답다고 생각했다.

돌아와 누웠는데 슬픔에 잠긴 마음들이 떠올랐다. 그 마음 깊숙한 곳에 비록 구름에 가려졌지만 빛나기를 멈추지 않은 그날의 해를 하나씩 하나씩 옮겨 주고 싶었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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