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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비 Oct 17. 2021

X까 라는 마음으로 살기

나만큼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출처: James Braund / GettyImages

여기, 금요일 저녁 6시에 홀로 Gym (헬스장)을 가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을 보고 각자 생각하는 바는 다를 것이다.


"어머, 금요일 밤에 파티도 안 가고 친구가 없나 봐."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다들 술 마시고 흥청망청 놀 시간에 운동을 하러 가다니 대단한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이건 어떨까?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외국인 노동자 역할의 '알리'를 보고 어떤 이는 


출처: 넷플릭스 Netflix


음 한국어 발음이 좀 어색하네, 노력을 더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머나먼 타국에서 다른 나라 언어로 배우를 하다니 정말 대단하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같은 사건/상황/인물에 대해 사람들의 평가는 제각각이다. '금요일 저녁 6시에 운동을 하러 간다.' 또는 '외국인 배우가 한국의 넷플릭스 드라마에 출연했다.'라는 객관적인 사실들은 각자의 사람들이 쓰는 색안경에 의해 평가가 입혀진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명의 생각이 있듯 이들의 평가는 사실이 아니라 굉장히 주관적인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그러니 타인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타인의 평가에 나를 맞추다 보면 이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맞춰야 하는지 굉장히 혼란스럽다. 설령 맞춰준다고 해도 그 틀에 맞춰진 내가 정말 행복한지, 이것이 정말 나인지 더 자괴감만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정도는 우리 모두가 다 안다. 남의 평가에 매달려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이론적으로는 참 쉽다. 문제는 이렇게 나를 평가하는 대상이 나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일 때다. 




나는 취업비자를 받은 외국인이다이 말인즉슨 회사에서 나의 취업비자를 스폰서 해주지 않는 순간 나는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국 회사는 3개월에서 6개월간의 수습기간 (Probation) 이 있다. 보통 정직원을 해고하려면 한 달의 유예기간을 줘야 하지만 수습기간 중인 직원은 당장 내일부터 해고하는 것이 가능하다. 뭐 다들 정말 바보가 아닌 이상 수습기간은 누구나 통과한다고 하지만, 회사마다 수습 통과의 기준이 달라서 수습기간에 해고를 당하는 사람도 드물긴 하지만 존재하긴 한다. 

 

 회사에 취업을 하고 취업비자를 받기 수습기간 동안 나는 매니저의 평가에  정신을 기울였다. 한 달에 한번 꼴로 나의 성과가 좋은지, 지난번 피드백받았던 부분에서 정말로 발전을 했는지 물어봤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내가 정말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수습기간도 통과하고 비자도 지원받은 지금, 예전보다 조금은 여유도 생기고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회사에 갓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주니어라면 매니저의 서포트와 지원이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현 회사에 다닌 지 1년이 넘어간 기점이 되자 '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초반에 비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피드백을 물어보는 시간이 너무 두렵고 피하고 싶은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좀 더 자신감이 생긴 나는 다시 한번 피드백 시간을 갖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피드백을 받은 지 오래되기도 했고 이제는 내가 잘하는 점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발전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팀원들은 내가 납득할 만한 피드백을 주었다. 그중에는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음속 깊이 공감하고 나 스스로 실감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를 지난 1년 동안 전폭적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줬던 나의 직속 매니저가 (나를 수습기간도 통과시키고 취업비자까지 지원해줬던) 준 피드백은 그날 나의 머릿속을 완전히 헤집어 놓았다.


"X가 아닌 Y를 해라. Y를 하면 좀 더 커리어 성장에 더 효과적이고 빠르다." 
"말할 때 ~~ 한 표현을 조심해라. 그런 표현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항상 모든 미팅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고 적극적으로 끼어들어라." 
"미팅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모든 상황을 통제해라."
.. 등등


거의 10가지가 넘는 다양한 주문이었다. 한 시간 내내 쏟아진 이 피드백을 가만히 경청하던 내가 매니저에게, 내가 발전했다고 느끼는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 피드백할 것은 없는지 물어봤다. 그러나 매니저는 "너 정말 모든 면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라고 한마디로 일축하고는 또 다른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매니저의 피드백을 열심히 받아 적었고 내 나름의 노트에 그것들을 정리했다. 그러자...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꽉 막혀오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집에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머리가 캄캄했다. "도대체 이 많은 걸 언제 다 이루지..?"


다음날 아침 업무 시작 전 나는 그 전날 밤에 정리했던 피드백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매니저가 알려준 그 '커리어 팁'이라는 것을 적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미팅이 시작되었고 매니저가 알려준 온갖 '프레젠테이션 스킬들'을 적용했다. 그리고 결과는...? 최악이었다. 항상 자신감 있게 미팅을 하던 어제의 나는 어디로 가고 불안하고 떨리고 긴장되는 내가 있었다. 매니저가 해준 그 온갖 법칙들을 내가 잘 적용하고 있는지 내가 말하면서도 스스로가 너무 신경 쓰였고 타인이 말하는 것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매니저가 그 미팅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내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어떻게 판단하고 반응할지가 신경 쓰여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나는 우리 매니저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많은 신경을 써주는 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일 외에도 우리는 함께 친구로서 우정을 쌓은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부모님도 그 표현 방식 때문에 오해를 사지 않는가? 내 매니저가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알지만 그 방식이 내게 맞지 않았다.


내 매니저는 자신의 본래 성향을 긍정하면서 장점을 극대화하며 성장한 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단점을 없애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면서 성장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조언을 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그런 방식의 커리어 성장이 먹혔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 안에서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조언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방법은 누군가에게 맞는 방법일 수도 있으나 나에게 안 맞을 수도 있다. 왜? 나와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100명의 성공한 이들이 있다면 이들이 성공한 방법과 경험은 각자 다르다. 


아, 내가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피드백을 받을 때 모든 피드백을 다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를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을 시기의 나는 모든 피드백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주니어 디자이너도 아니고 나도 나름 나에게 맞는 커리어 성장이 뭔지 수도 없이 고민하고 매일 생각하고 있다. 나보다 더 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 나에게 무엇이 맞고 최선인지는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회사 내/외의 피드백, 커리어 조언 등등은 참고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맞고 틀린지는 자기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나는 피드백을 받을 때 나 스스로의 틀과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그 모든 조언이 여과장치 없이 100% 스며들여서 나에게 타격을 주고, 나를 더 지치게 하고 힘들게 했던 것이다. 


맞고 틀리고는 내가 정한다. 나에 대한 평가도 내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받아들인다. 아 이러면 너무 버릇없이 이기적인 사람이 되는 거 아닌가?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사람의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그걸 다 맞출 수도 없고 다 맞추다가는 나 자신을 잃어버린다. 나의 고유한 장점까지 잃어버릴 수가 있다. 


나는 나의 단점을 없애면서 성장하기보다, 나의 강점을 극대화하면서 성장하고 싶다.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타이밍이 아닌데 단순히 미팅을 장악하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네트워킹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승진을 위해, 내가 같이 있으면 불편한 사람과 '네트워킹'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모든 동료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원치 않는 술자리를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니까 나와 친해지는 직장동료들은 네트워킹이라는 술수 따위로 친해지는 겉친함이 아니라 내가 진짜 좋아해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인 것이다. 나한테는 워라밸이 나에게 정말 행복을 주는 요소이고 그러니까 매일 밤새서 일하는 것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방식대로 커리어 성장을 할 것이다. 성공하고 승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항상 인정받기 위해 타인 흉내를 내야 하는 것처럼 슬프고 서러운 것도 없다. 




삶을 살 때는 약간 'X까'라는 마음이 필요하다. "당신의 피드백은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당신은 그런 삶을 살아오셨군요. 이러한 점은 저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이러한 점은 저에게 맞지 않는 것 같네요. 그러니 저는 제가 맞다고 생각하는 제 방식대로 할게요.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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