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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비 Oct 21. 2022

나를 따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보다 글로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 입학 자기소개서 같은 류의 글을 쓸 때도, 고등학생이긴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글로 보여주는 것에는 꽤 자신이 있었다.


자기소개서를 의도하진 않았지만 1년을 거쳐 준비했다. 워낙 내 내면세계를 탐구하고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내 자기소개서는 여러 번의 탈고를 거쳐 고등학생 치고는 꽤 완성도가 높은 글이 되었고 내 자기소개서를 읽어본 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꽤 감명을 받아 눈물을 흘린 사람들까지 있었다. (펑펑 운 것 까진 아니고 찔끔 정도^^;;)


대학 입학 후 나는 모 미술학원에 시간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시 시즌이 되니 수험생들이 자기소개서를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미술로 유명한 H 대학은 당시 미술 실기를 보지 않고 입학사정관제로 자기소개와 미술활동보고서 등을 제출해야 했다. 


미술학원이야 당연히 미술 실기를 가르쳐주는 곳이니 자기소개서를 봐주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나와 친하게 지내던 재수생 A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나는 순수하게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으로 여러 팁을 공유해주면서 입학 당시 내 자기소개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A가 너무 도움이 되었다며 자신의 자기소개서를 다시 한번 봐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A의 글을 읽어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자기소개서를 완전히 베꼈기 때문이었다. 


형식을 따라한 것이 아니라 아예 내 자기소개서의 주제와 내용을 베껴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써낸 수험생 A의 글을 보고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아니 이렇게 대놓고 나에게 보여주기 까기 한다고? 나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주변 선생님들께 피드백을 받은 적은 있지만 베끼거나 대필을 한 적은 결코 없었기에 A의 글이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A는 지금 수험생이 아닌가. A는 게다가 재수생에 굉장히 절박한 상황이었다. 내 대학 입학 후 자기소개서는 어차피 다시 쓰일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A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


그리고 A는 그 자기소개서로 H대학에 수시합격을 했다. 




물론 합격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단순히 A가 오로지 자기소개서 하나 때문에 합격을 했을 것이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H 대학은 내신성적도 굉장히 중요하다. A가 합격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한 노력이 있을 것인데 자기소개서가 그중에 한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7년이 넘어가는 그 옛날 일이 아직도 생각나는 이유는, 나는 인생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더 나답게 살고 나만의 방식을 추구할까를 자주 생각해왔던 스타일인데 그와는 반대되는 A의 방식에 충격을 받아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도 있었다. 




대학교 졸업전시 시즌은 누구나 예민한 시기이다. 게다가 내가 졸업전시를 같이 한 동기들은 워낙 열심히 하고 재능도 있는 아이들이라 보이지 않는 경쟁과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다. 졸업전시 오픈 1-2달 전이 되면 보통 디자인은 마무리가 되고 자신의 프로젝트를 갈아엎거나 하는 일은 잘 벌어지지 않는다. 나 또한 내 프로젝트들을 거의 완성해가는 시점이었고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이미 진작에 나온 상태였다. 


그러나 나와 친하게 지내던 동기 B가 갑자기 졸업전시 2달 전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꿨다. 그런데 비주얼이 나와 너무나 겹쳤다. 주제는 달랐지만 프로젝트의 타입, 프로토타입이 구동되는 방식과 시나리오, 전체적인 비주얼 느낌이 너무 비슷했다. 그런데 전시 배치 자리도 바로 나의 옆자리로 배정이 되었다.


"아니 이건 다 같이 죽자는 건가?" 


마음이 찜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험생 A와 비슷하게 동기 B도 나와 굉장히 친했다. 그리고 동기 B는 내 프로젝트에 관해 평소 굉장히 칭찬을 많이 하고 몇 번이나 감명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 상태였다. 게다가 동기 B는 한동안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상태이기도 했다. 이미 오픈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가뜩이나 서로 예민한 마당에 쓸데없는 감정싸움을 하기 싫었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동기 B에게 고치라고 해서 그 친구가 설령 고친다 해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친하게 지내면서 봐온 수험생 A와 동기 B의 인성을 봤을 때, 악의를 가지고 누군가를 따라 하는 사람 같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이 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나를 따라 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도 않고 그렇기에 그 일에 따로 언급도 하지 않은 채 그 사건들은 잊혀갔다. 




지금 회사를 다닐 때도 그런 일들은 있었다. 새롭게 들어온 신입 디자이너 C가 내가 일하는 방식, 프로세스, 내가 스스로 창조해낸 나만의 발표 포맷과 구조, 심지어 오피스를 가는 날까지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갑자기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C도 그 주제를 하겠다고 나섰고 내가 다음 주에 딱히 일과는 상관없는 툴 세미나를 하겠다고 하면 그 친구도 다다음주에 자기도 툴 세미나를 하겠다고 나섰다. 


한동안은 이런 사람들이 너무 신경이 쓰였다. 나는 누군가를 따라 해서 그 사람의 second best 한 버전이 되기보다 사람들 모두가 본인이 가진 고유한 장, 단점을 잘 개발해서 '가장 나다운 모습'이 되는 것이 가장 성공하는 방식이라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 또한 정말 살면서 그 어느 누구도 따라 하지 않고 고고하고 항상 original 하게 살아왔나? 하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내가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롤모델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들의 자주 하는 행동이나 특징들을 나도 모르게 비슷하게 모방한 적이 있었다. 일이나 디자인 작업의 경우는 의식해서 그리 하지 않으려 했지만 생활습관이나 보고 따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모습을 나도 보고 따라 하긴 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내가 그렇게 따라 했던 이유는 뭘까? 그 본질을 생각해보니 이러했다. 



그게 좋아 보여서


좋아 보이니까 따라 하는 것이다. 그 의도가 나빴든 좋았든 간에, 나를 따라 한다는 것은 내가 하는 무언가가 좋아 보였기 때문에 따라 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따라 하는 이들을 일일이 신경 쓰고 기분 나빠하기보다 이제는 그것이 '내가 잘하고 있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을 바꿔먹기 시작했다. 나는 워낙에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 것이나 모임의 주인공에 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인기가 많아질수록 피곤하고 감정싸움도 많아진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타인에게 영향을 주는 소셜미디어 (SNS) 인플루언서들의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내가 인플루언서까지의 위치는 아니더라도 이들이 원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이 결국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것. 내 모습을 따라 하고 싶다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 아닌가. 그걸 원하고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어떤 목표나 성공을 위해 노력을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찌꺼기가 나온다는 유튜브 영상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항상 반듯한 포장도로를 달리는 것 같이 느껴졌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의도치 않는 충돌이 생기기도 하고, 이렇게 나를 따라 하는 이들을 겪기도 하고, 오해를 받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건 굉장히 사소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기분 나빠하고 누군가와 논쟁을 벌일 시간에 나의 모습을 발전시키는 것에 더 노력하는 편이 낫다. 나를 악의적으로 따라 했던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해봤자 그것을 인정하거나 스스럼없이 사과하려고 하지도 않을 확률이 높을 것이고, 설사 악의가 없었다고 한들 누군가를 줄곧 따라 하는 방법은 성장에 있어서 기초 초석을 닦는 방법일 뿐 그것이 평생 지속 가능한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멋있고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의도하지 않게 따라 하고 살지 않나. 그런 것들을 일일이 지적하기엔 삶이 즐길 것이 너무나 많고 내 시간은 소중한 것이다. 


나는 내 갈길을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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