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5 존으로의 이사
최근 이사를 했다. 코로나 당시 대폭 하락했던 런던의 월세가, 코로나 이후로 많은 회사들이 사무실 출근을 하나둘씩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런던에 사람이 몰렸고 월세가 미친 듯이 올랐다. 아침에 매물이 올라오면 그날 오후에 바로 나가는 미친듯한 경쟁에, 심지어 사람들은 이미 비싼 월세에 더 높은 월세를 내겠다고 가격경쟁(Bidding war)을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런던에 홀로 이민 온 후 4년간 낯선 이와의 계속된 하우스 쉐어에 지쳐있던 나는 이번에 홀로 살 집을 알아보았다. 집을 알아볼 때 내 수입의 몇 %만 월세로 쓰겠다는 나만의 마지노선이 있었다. 그 예산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튜브 (런던 지하철) 이 아닌 기차역이 있는 런던 5 존으로 이사를 했다.
나는 내가 대도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나의 니즈는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섬세한 것이었다. 나는 평일엔 출근은 런던 중심에 위치한 회사에서, 그리고 주말엔 런던의 여러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으면서도, 집에 돌아와서는 완벽히 조용하고 편안한 나만의 보금자리를 원했다. 그리고 산책을 자주 즐기는 내 특성상 집 주변에 자연이나 공원이 많았으면 했다.
그런 나에게 런던 5 존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내 니즈가 변한 것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으며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가게 된 것이지 모르겠으나, 지금 나는 내가 현재 원하는 삶의 방식과 주거 형식에 딱 맞는 생활을 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
런던 교외 특성상 이곳은 가족이 많이 사는 마당이 딸린 분리형 주택 (Detached house) 이 많다. 그러다 보니 아침 8시 30분경에는 창문 밖으로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학부모들의 행렬을 보기도 하고, 할로윈에는 아이들을 위해 간식거리들을 준비해 놓고 호박과 여러 소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집들을 본다. 저녁에는 이 동네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길에 개미 한 마리도 없다고 느낄 수준이다. 집에서 각자 오순도순 모여 저녁을 먹는 가정집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유럽 특유의 주광색 불빛이 스며 나오는 집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절로 따뜻해진다.
서울에 살았을 땐 나는 철저한 비혼과 비출산을 다짐했다. 전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이 고집 센 가치관이 런던 생활 4년 만에 바뀌는 것을 느낀다. 비록 가진 것 없이 홀로 정착한 이민 1세대지만, 이곳에서 20대 중 후반을 보내고, 이미 집을 사고, 가족을 이루기 시작했거나 가족을 이미 이룬 친구들을 보면서 작년부터인가 나도 가족을 이루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하는 것은 영국의 부모들도 가장 힘겨워하고 어려워하는 일이지만, 업무가 끝나면 적어도 오후 6시 전에는 집에 와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 삶이 보편화돼있는 이곳,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어떻게든 타협하지 않으려는 이곳 사람들과 일하고 지내다 보니 나도 여기서 가족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들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가능한 현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이방인인 내가 런던을 '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일 지도. (물론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이방인의 삶
인터넷에서 이방인으로 해외에 사는 삶의 고독함에 대해 적은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워낙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향적인 성격에 타인은 타인이고 나는 나라는 독립적인 성향도 강해서 이곳에 살면서 사무치게 외로움을 느껴본 적은 딱히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 기간 완전히 영국에서 고립이 되면서, 언제든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영국인들과, 비행기로 16시간을 가야 집에 도착할 수 있는 나의 처지가 가슴으로 주먹을 친 듯 훅-하고 들어왔다. 엄마가 보낸 국제소포가 최소 1주일 반에서 2주는 지나야 도착한다는 그 물리적인 거리감과 여러 크고 작은 삶의 불편함들이 내 모든 피부와 감각으로 와닿을 때, 내게 있어서 이곳에서 내가 맺는 관계들은 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 이후로 친구관계를 넓히고, 내 행복의 원천을 단순히 한 곳에만 몰빵 하지 않는 나름의 전략(?)을 쓰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정신적으로 많이 안정되고 편안해지며 삶의 질이 많이 올라갔다. 하지만 30대 초-중반을 지나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나니 결국 삶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가 본인이 가꾼 가정으로 향하는 시기를 겪는다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내가 지금 갖고 있는 풍족하고 넓은 친구관계도 평생 지속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어야만 의미가 있는 관계 (연인이나 가족)에서 행복을 찾는다. 친구관계나 직장은 연인이나 가족같이 배타적이지 않고 대부분 대체가 가능하다. 그래서 다들 나이가 들면 원 가족을 떠나 새로운 자신만의 가족을 이루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 생기면 그 외의 직장이나 친구의 모든 관계는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삶을 길게 봤을 때 친구가 중요한 시기, 가족이 중요한 시기 등등이 있지 않나 싶다. 중년의 아주머니들이 아이들 다 키우고 사우나에서 수다 떨듯이 가족을 다 키우고 나면 친구들을 다시 찾는 시기가 오듯.
새롭게 시작하는 연애
2년 반 정도의 싱글 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가족을 이룰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고개를 들이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앞으로 이 사람과 평생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거라는 너무 먼 미래의 가능성이나 계획은 하지 않는다. 이 사람의 마음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는 통제 불가능한 것이고 나는 통제불가능한 것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생각을 쓰려하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행복하냐고 물으면 그렇다, 하지만 홀로 2년 반동안 런던에서 싱글로 지냈던 시간이 불행하고 외로웠냐고 한다면 단연코 아니다. 나는 내가 건강한 연애를 하게 된 이유가 내가 싱글로 지냈던 기간 동안 이미 충분히 높은 삶의 질과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연인을 만나기 전에 내가 거절했거나 마음/또는 기회가 맞지 않았던 몇 명의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들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연애 없이도 충분히 건강한 삶을 살고 있고, 연애 아니면 인생이 외롭고 쓸쓸하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지 않아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가치관이나 성격이 맞지 않거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이들을 예의 바르지만 단호하게 끊어낼 수 있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에도 우리 둘 다 연애 없이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연애에 절박한 사람들은 아무리 말로는 쿨한 척을 해도 그게 행동으로 어떻게든 다 티가 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연애를 죽도록 하고 싶었지만 아닌 척 쿨한 척하던 나의 20대 초반의 모습이 어떻게 보였을지 살짝 반성도..)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과 같이 있을 땐 너무나 편안하지만 떨어져 있어도 그것이 불안하지 않다.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보다 내 기준이 아니면 차라리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컸기에, 나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만났던 그 어떤 사람들 중에서도 "이 사람이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하고 생각하면 꺼림칙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만나는 사람이 (만약, 그리고 멀고 먼 미래에) 내 아이의 아빠가 된다면 굉장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미래의 일은 앞으로 알 수 없다. 그리고 지금 만나는 이 사람의 본모습이 미래에도 내가 생각할 그 본모습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건 이 사람과 헤어져도 나는 이미 안정된 친구 관계, 직장 등 다양한 행복의 원천 시스템을 이 먼 타국 영국에서도 구축해 놨기 때문에 잠시 힘들지언정 내 인생의 전부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좋은 사람과 또 다른 의미 있는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인생에 한 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형태로 다양한 시기에 존재할 수 있으니까.
또 다른 4년 후에 나는 내가 런던에서 만든 가족들과 저녁을 보내고 있을까? 아니면 현재의 연인 또는 친구들과 보내고 있을까 아니면 혼자 보내고 있을까? 어찌 됐든 분명한 것은 어떤 삶의 형태가 됐든 그 안에서 나는 또 나만의 행복을 찾아갈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난 4년간의 좌충우돌과 여러 깨닮음으로 인해. 참 힘들고 다사다난했던 이민 정착 초기였지만 그 힘듦이 지금 내 성장의 밑거름이었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가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