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의 평범한 가계부_2. 지출항목과 금액
몇 해 전 제가 휴직 중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저의 외출은 대부분 아이 등학교와 학원 픽업이었습니다. 제 옷장 안에는 10년 넘은 직장 생활을 반영하듯이 블라우스, 정장 치마, 코트 일색이었이죠. 동네에서 편하게 입고 다닐 수도 있고, 복직하면 회사에도 입고 다닐 수 있는 무릎 길이의 따뜻한 패딩이 한 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자에게 무릎까지 오는 패딩 한 벌 사야겠다고 얘기하니, 배우자는 진지한 표정을 말합니다. "그래, 따뜻한 패딩 한 벌 사. 곧 복직하는데 회사에도 입고 다닐 수 있는 올바른 것으로 사야지. 내가 봐 줄까?"
저는 쇼핑이 피곤한 사람이라 배우자가 쇼핑해 준다고 하면 덥썩 맡깁니다. 그는 결의에 가득찬 표정으로 저의 '올바른 패딩'을 알아봐 주기로 했고, 다음 날 저에게 몽클레르, 버버리, 프라다 롱 패딩을 제안하더군요. 예상 가격은 150만원에서 300만원. 매장에서 입어보고 사는 것 아니고 병행수입 제품들인데도요. 그의 '올바른 패딩'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울렛에서 50만원 정도로 구매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얼마 후 아이가 전부터 배우고 싶어하던 스키 강습 이야기를 배우자에게 건넸습니다. 스키장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강습은 (아이의 뛰어나지 않은 운동신경을 고려하여) 1:1로 등록하면 2시간 30만 원 이상 이고, 장비 렌털과 리프트권은 별도이니 3번 정도 강습 받으면 100만원 이상 들겠다는 설명과 함께요. 갑자기 그가 다시 한 번 진지해지며 그 비싼 돈을 주고 지금 꼭 스키를 가르쳐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본인도 어렸을 때 한두 번 해 봤는데 무섭고 재미도 없었다며, 지금 아니더라도 대학 가면 친구들과 넘어지며 알아서 배울 거라고 말입니다.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저는 아이가 배우고 싶어하고, 처음에는 비용이 들지만 지금 배워두면 커서 오히려 친구랑 안전하게 탈 수 있으며, 본인이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에게도 배울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비싸서 그러는 거라면, 제가 패딩을 사지 않고 그 돈으로 아이 스키 강습을 등록하겠다고 하면서요. 그러자 그는 그건 안된다며, 저의 올바른 패딩도 사고 아이 스키도 가르치자고 했습니다.
결국 그 해 겨울의 소비는 그의 기준에 맞는 올바른 패딩보다 조금 더 저렴한 패딩을 사고, 스키장 공식 강습보다 조금 더 저렴한 사설 강습을 등록하면서 마무리 되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패딩 때문에, 그의 기준에서는 스키 강습 때문에, 서로 예상보다 지출이 커졌다고 생각했지만요.
저는 배움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사치는 새로운 배움과 특별한 경험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해보고 싶은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다른 아이들 다 하는 피아노 말고 특별해 보이는 바이올린이나 플룻도 배워보고 싶었고, 테니스도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책에서 읽은 나라들에도 직접 가보고 싶었고요. 외벌이 직장인에 아이 셋 키우는 부모님께서 모두 해주시기는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스스로 욕망을 해결했습니다.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시간을 내어 그림도 그리고, 가구도 만들고, 댄스도 배웠습니다. 취직하기 전에는 아르바이트로 돈 벌어 일본과 유럽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취직하고 나서는 혼자서 일주일 동안 제주도에도 다녀왔고요. 지금으로부터 15년도 더 전에 말이에요.
배우자는 일상의 편안함과 만족감을 중시합니다. 그의 사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히 쉴 수 있는 시간, 몸에 잘 맞는 옷과 신발, 미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맛있는 음식입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우미 이모님이 오셔서 화장실을 비롯한 집안의 큰 청소와 빨래, 다림질을 해주셨습니다. 주로 배우자가 맡은 집안일었는데, 이모님 덕분에 주말 가사노동에서 해방된 그는 "이모님 비용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했습니다. 바람쐬러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주로 아울렛입니다.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고, 맛이 평균은 하는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모여있으니까요.
둘의 성향이 이렇다 보니, 저희 가정은 새로운 배움과 경험, 일상의 편안함과 만족감을 위한 지출이 상당합니다. 같이 가정을 꾸리는 입장이다 보니 하고 싶은 만큼은 못 하고, 각자 욕망의 최대치와 상대의 허용치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 중간 지점에서 타협도 합니다. 그는 백화점에서 신상 몽클레르 패딩을 사고 싶지만, 제 눈치가 보여 아울렛에서 조금 더 저렴한 브랜드의 패딩 중에서도 이월상품을 집어듭니다. 저는 휴직한 김에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기 위해 아이와 호주로 한 달 살기 여행을 다녀오고 싶지만, 그의 눈치가 보여 말도 못 하고 일주일짜리 동남아 여행을 예약합니다.
이제는 소비활동에 아이의 취향까지 가세합니다. 아이는 당연하게도 저와 배우자의 취향을 반반씩 닯았습니다. 주말에는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식당에 가고 싶고,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음식으로 축하하고 싶어해요. (공부 빼고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주말이면 색다른 활동들을 하고 싶어 합니다. 외식을 하자고 하면 그가 반색하고, 놀러 가자고 하면 제가 반색합니다. 아이 외투가 필요하면 그는 고급까지는 아니지만 제 기준에서는 약간 비싼 옷을 구입하고요, 저는 틈틈히 아이가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운동이나 활동을 찾아봅니다. 배우자는 뭐 그런 것까지 가르치냐고 반문하지요.
어떻게 하고 싶고 걸 다 할 수 있냐는 의견도 있고, 하고 싶은 건 해야지 하는 의견도 있을 겁니다. 저는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으면 하는 게 좋다는 편입니다, 단 경제적으로 무리가 없는 수준 안에서라면요. 무언가 하고 싶고 사고 싶을 때 가계부를 보면 감당할 수 있는 지출인지 판단이 됩니다. 저와 배우자의 소비 취향과 적정 금액에 대한 기준은 많이 다르지만,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하면 제 기준에서 터무니없는 소비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적극적 동의라기 보다는 '알아서 해' 정도의 수용이지만요. 가계부를 쓰면서 감당 가능한 지출 정도를 먼저 파악하니 배우자에게 자꾸 쓸데없는 데 돈 쓴다고 화내지 않고 그의 소비 취향을 존중할 수 있게 됩니다. 저의 소비 취향에 대해서 배우자는 별 말 하지 않습니다. 가계부는 저만 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