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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쌤 May 05. 2024

엄마놈

엄마놈이 아니라 엄마로 부를 날이 오기를

대구에서는 가족공감 1160 운동이라고 해서 일주일(1)에 한 번(1) 60분(60) 이상 가족과 함께 운동을 하자는 운동을 매년 초에 계획을 세워 안내하도록 되어 있다. 매년 하던 것처럼 올해도 계획을 세우고 기록지를 만들어서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가족공감 1160 운동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런 와중에 내 귀에 이상한 말들이 들렸다.

"엄마놈이 이런 걸 할 리가 없지. 엄마놈이 엄마놈..."

잘못 들었나 싶어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니 남학생 B가 계속 엄마에 대해 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B의 이름을 부른 뒤 B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B야. 선생님 아들이 만약에 너처럼 말하는 걸 내가 들었다면 나는 진짜 마음이 아플 것 같아.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애가 아빠놈 이라고 말하면서 욕을 한다면 그게 참 듣기 어려운 말일 것 같은데, 그만해줄 수 있겠니?"

그러자 B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B의 말을 멈추게 한 후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최근 며칠 동안 내용을 기록지에 기록하게 했다. 그런 후 다시 B의 근처에 가서 말을 걸었다. 

"엄마가 같이 운동을 하자고 해도 안 해주니?

B는 아까보단 사그라들었지만 그래도 불만에 가득 찬 말투로 대답했다.

"네! 우리 엄마는 절대 이런 거 같이 안 해요."

"왜? 일이 힘드시거나 피곤하셔서 그런 건 아니고?"

"아니에요. 엄마는 그냥 자기 마음대로만 해요. 자기 좋을 대로만, 자기 편한 대로만 한다고요. 제 말은 안 들어줘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왜 B가 엄마 욕을 그렇게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B의 말만 듣고 모든 걸 다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B는 엄마가 B보다 자기 자신만 더 신경 쓰고 B의 말은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올해 6학년 아이들은 학교에서 제일 좋은 학년이라고 쭉 소문이 난 학년이었다. 엄청 거친 아이들도 없고 대체적으로 순한 아이들이 모여있어서 참 괜찮다고 말이 나오던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그나마 문제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아이가 바로 B였다. 괜히 아이들에게 발차기를 하거나 건드리고, 갑자기 소리를 '악!' 하고 질러대면서 시끄럽게 해서 아이들은 B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같은 남자아이들도 모둠활동을 하라고 하면 B와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B와 작년에 체육 수업을 1년 동안 같이 하면서 나름 정도 주고 문제를 일으켜도 혼내지 않고 타일러가며 수업을 했었다. 그랬더니 올해는 B가 나를 보면 하이파이브를 하자거나 안아달라고 말하는 등 애정 표현을 많이 했다. 그런 B의 말과 행동을 돌이켜 보면 사실 B는 사랑이 많이 고팠던 건 아니었나 싶다. 자기 마음대로만 하는 엄마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결핍으로 이어져, 자신을 드러내고 관심을 받으려고 그런 문제행동들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상담 선생님과 B에 대한 얘기를 종종 나눈다. 가족 사이의 관계를 학교에서 본질적으로 다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하자고 이야길 나눴다. 상담 선생님은 수시로 B와 이야길 나누고, 나는 수업 시간, 그리고 스포츠클럽 활동을 하면서 B가 운동으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엄마놈으로부터 쌓인 상처가 학교에서 조금이나마 치유되고, B가 엄마를 엄마놈이 아닌 엄마로 부를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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