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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쌤 May 09. 2024

혼내는 것을 넘어서

혼내지 않아도, 화내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며칠 전 남학생 B가 수업 시작하고 나서 10분 뒤에야 교실에 들어왔다. 그 전에 B의 학부모님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긴 했었다. 본인이 늦잠을 자서 애를 늦게 깨우는 바람에 이제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쉬는 시간에 여학생 C가 와서 나한테 이야길 했다.

"선생님, B가 지각을 했잖아요. 근데 선생님이 화도 안 내시고 혼내시지 않으셔서 저는 좀 많이 놀랐어요. 늦었다고 혼내실 줄 알았는데."

"지각할 수도 있지. 그리고 지각을 해서 수업을 못 들은 건 B잖니. 지각하고 싶어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수업을 못 들어서 손해를 본 건데 거기에다가 혼까지 내면 어떻겠어. 게다가 혼내지 않아도 지각을 하지 말자고 말해주면 그걸로 충분할거야."

B는 아마 평소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부모가 깨워주어야 일어나는 편이었을거라 짐작된다. 그런데 부모가 늦잠을 같이 자서 학교에 지각한 것이라면 B로서는 혼났을 때 나름 억울하지 않아했을까 생각해본다. 다행히 그 다음날 B는 다시 제 시간에 학교에 왔다.

B가 만약에 계속 반복해서 지각을 한다면 그땐 B를 불러서 어떻게 하면 부모님 도움 없이 혼자서 일찍 일어날 수 있는지, 또는 부모님이 늦잠을 자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혼내거나 화내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C의 반응은 사실 일반적인 아이들의 반응이기도 하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혼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어른들로부터 그렇게 대우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혼나는 것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 혼내지 않아도 된다. 조용하고 단호하게,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함께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방식의 훈육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많이 혼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나쁜 의도를 갖고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라 생각해서 혼낸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을 보고 배운다. 그리고 자신에게 잘못한 친구들에게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배운 대로 행동한다. 자기가 잘못했을 때 자신을 혼내는 어른들처럼, 자신도 자신에게 잘못한 친구를 혼내고자 한다. 나에게 실수한 친구도 나쁜 의도를 갖고 나한테 나쁜 짓을 한 거라 믿고, 어른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도 친구를 혼내려고 한다. 똑같이 나쁜 말로 혼내거나, 짜증을 내며 혼내거나, 또는 때려주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는 문제가 더 커지기만 할 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힘이 세니 혼내면 아이들은 힘이 센 어른이 두려워서 말을 듣게 된다. 그렇지만 친구가 혼내는 것은 두렵지 않다. 나와 비슷한 애가 화내는 것이 뭐가 두렵겠는가. 그러니 실수든 일부러든 잘못을 저지른 친구는 그렇게 돌아오는 친구의 반응에 반성하기는 커녕 도리어 더 화가 나서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서로 화난 상태로 말이나 행동을 주고받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커져 버린다. 보통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다툼은 이런 양상이 대부분이다.



오늘 체육 시간에 줄을 서다가 여학생 D가 손으로 남학생 E의 허리 쪽을 실수로 쳤다. D는 실수라고 말을 했지만 E는 그 말을 믿지 않고 D를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 내가 가서 바로 E를 제지하니까 E는 억울하다는 듯 말을 했다.

"선생님, 저는 D한테 아무 것도 안 했는데 왜 저를 일부러 때렸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화가 나요. 억울해요."

"일단 진정해보자. D가 너를 일부러 때린 것 같아?"

"실수 아니에요. 제가 분명히 봤어요. 일부러 한거에요."

이미 자신에게 잘못한 D에 대해 E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일단 E에게 좀 더 이야길 길게 나누면서 시간을 끌었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맞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일부러 때린 것처럼 보였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선생님도 네 마음을 이해해. 그렇지만 D가 일부러 널 때릴 이유가 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그리고 D가 일부러 친구들을 자주 때리고 다니는 아이니? 그게 아닌 것도 알고 있지? 그렇다면 네가 할 수 있는건 두 가지야. D의 말을 믿어주는 것. 일부러 때리지 않았고 실수라고 믿어주는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D의 말을 믿지 않고 일부러 때렸다고 믿는 것. 어느 쪽이 네 마음이 더 편할까? 어느 쪽이 네가 D의 행동을 용서해주기 쉬울까? 네가 믿는 쪽이 진실이 될 거라 생각해.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해보렴. 그리고 체육 수업 끝나고 이야기 더 해보자."


그렇게 말해주고 E를 체육 수업에 보냈다. 다행히 체육 수업 동안 E는 D와의 일을 잊어버렸는지 더 이상 힘들하거나 그 일에 대해 문제삼진 않았다.


D와 E의 일을 해결하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알려주고, 보여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화내고 혼내지 않더라도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갈수 있음을 보여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을 혼내는 어른을 내가 바꾸긴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모습을 보는 아이들만큼은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올바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씩이나마 변할 수 있지 않을까. 10년을 넘게 아이들이 겪어왔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행동 방식을 한 순간에 바꿀 순 없을 테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 새로운 방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안내해주는 것 정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202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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